신주백 교수 팀이 20일 오후 광주 화정동에 있는 옛 일본군 유류 창고 추정 동굴에서 줄자로 동굴의 높이와 길이를 실측하고 있다.
광주 일본군 동굴 실측 현장
“여기가 70여년 전 일본군이 유류 창고로 썼던 동굴입니다.”
신주백 연세대 교수(역사학)가 가리킨 곳 주위는 빨간 산딸기 열매들로 가득했다. 산딸기, 아까시나무 녹음이 울창한 둔덕 풀숲에 철창을 단 동굴이 숨어 있었다.
꽁꽁 묻혔던 역사의 한숨일까. 철문을 따고 굴 속에 들어가려니 서늘한 한기가 흘러나왔다. 들머리 조금 안쪽엔 무너져내린 흙과 돌더미가 통로에 쌓여 있다. 발길을 더듬거리며 흙더미를 넘어갔다. 암흑 속에서 박쥐 떼들이 튀어나와 일행을 쭈뼛하게 했다. 이윽고 조금씩 드러나는 동굴 안은 콘크리트로 말끔하게 덮인 일직선 아치형 얼개다. 천장엔 전등 선을 고정시킨 나무 단자장치들이 일정 간격 아래 설치된 모습도 나타난다. 굴벽 옆구리 한쪽엔 감실 같은 공간을 드문드문 파놓았다. 신 교수는 “용도는 수수께끼”라고 했다. 아마도 소방시설이 있지 않았을까 추정할 뿐이다.
지난 20일 오후 광주 화정동 광주학생독립운동기념관 경내. 기념관과 광주시청소년수련원 사이 구릉에 흩어진 옛 일본군 동굴 3곳에서 신 교수 팀은 한시간여 실측작업을 벌였다. 동굴들을 역사교육장으로 활용하기 위해 광주시교육청 용역으로 벌여온 현장 조사작업의 마지막 일정이다. 기념관 직원들 도움을 받으며 신 교수와 조건 박사(국방사 전공)는 세 동굴의 높이와 길이를 사다리와 줄자를 가지고 일일이 재고 기록했다.
이 동굴들은 1929년부터 1945년까지 인근 치평동에 조성된 비행장의 연료창이었다. 일본 육군관할에서 해군항공대기지로 바뀐 1944~45년께 굴을 판 것으로 보인다. 45년 8월 패전 뒤 일본군이 넘긴 ‘광주항공기지일반도’를 보면, 옛 상무대 자리와 치평동 비행장, 이곳 유류고가 거대한 삼각형 구획을 형성한다. 서울 용산 일본군 기지를 방불케 하는 군사거점이었음을 알 수 있다. 44년께부터 본토 결전용으로 조선인들을 강제 동원해 시설이 개축됐고 일본군 철수 뒤 동굴에서 드럼통들이 많이 나와 기름집에 팔았다는 주민들 증언도 있다. 그간 구전으로만 전해지다 2013년 전문가들에게 알려지면서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이날 실측에 어려움은 없었다. 기념관 공사 때 뒷부분이 잘려나갔지만, 대체로 보존상태가 양호하고 콘크리트시설도 튼튼해 보였다. 1·2·3굴의 길이는 각각 56, 82, 64m에, 높이는 사람키 두배 정도인 3m 내외였다. 국내에 곳곳에 남은 일본군 동굴 벙커들이 대개 자연발파식이며, 일직선형 굴도 찾기 드물어 콘크리트로 공들여 만든 화정동 동굴은 상당한 전략적 가치를 부여한 시설이었다는 평가다. 특히 신 교수가 최근 일본 방위청 문서고에서 찾아낸 1945년 7월 패전 직전의 광주 군사시설물 지도에는 활주로가 하나 더 만들어졌고, 화정동 인근에 다른 군사용 터널들이 숱하게 배치된 것으로 나와 추가조사가 필요한 상황이다. 신 교수는 “조선 징용자들 희생을 외면한 일본 산업시설물의 세계유산 등재를 놓고 비판이 거세지만, 이 땅에도 조선인의 노동력을 희생시켜 만든 군사 유산들이 많다”며 “심층 조사를 통해 일제 군사유산들의 가치를 일깨우는 노력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신 교수 팀은 다음달 초 현장 조사 내용을 정리한 보고서를 펴낼 예정이다.
광주/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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