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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풍납토성, 세계유산 등재 이전에 풀어야 할 과제들

등록 2015-07-29 18:47

울림과 스밈
1~4세기 초기백제 도읍 ‘한성’으로 유력시되는 서울 송파구 풍납토성은 왜 세계유산목록에 오르지 못했을까. 지난 4일 충남 공주와 부여, 전북 익산의 5~7세기 백제 후기 유적 12곳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확정되자 많은 이들이 이런 의문을 가졌다.

역사적 가치 면에서 풍납토성은 충분한 세계유산 후보감이다. 인근 방이동, 석촌동 고분군까지 합쳐 규모나 의미 등에서 전혀 뒤지지않는다. 2000년대 이래 성벽과 내부 발굴조사로 연간 수만명이 동원돼 쌓은 동아시아 굴지의 고대토성이었음이 드러났다. 성 안에서 제단으로 추정되는 대형 건물터, 수백여기의 집·창고·우물터와 함께 기와·목기·중국제 도자기, 금속용기, 말뼈 등 단위면적당 최대급인 수만여점 유물들이 쏟아졌다. 토성이 운영된 초중기 백제 시기는 200년 남짓한 후기 백제보다 훨씬 길다.

박원순 서울시장은 지난해 중국 순방 때 풍납토성이 한양도성에 뒤이은 세계유산 추진 대상이라고 공표했다. 올 1월엔 유산등재팀도 신설해 연구를 시작했다. 하지만 충남, 전북과 손잡고 공동등재에 뛰어들지는 않았다.

이유는 대략 두가지다. 20세기 이래 풍납토성이 역사적 전모를 파악하기 어려울만큼 훼손됐고, 지금도 주민과 유적이 극단적 불화를 빚고 있는 탓이다. 1925년 대홍수 때 성벽 윤곽이 드러난 풍납토성은 63년 사적이 됐지만, 70~90년대 토성안팎에 연립주택과 아파트가 조밀하게 들어서면서 성벽과 내부 유적, 유물들이 숱하게 사라졌다. 유적 위 수만평의 땅은 4만8000여명이 사는 거대 주거지다. 97년 아파트신축 공사에서 백제유물이 발견되고, 2000년대 이래 대규모 조사로 풍납토성의 중요성이 널리 알려지자 주민들은 재개발을 접고, 증개축도 뜻대로 못하는 등 제약을 받아왔다. 급기야 2000년 5월 성안의 재개발터 조합원들이 발굴비 갈등으로 유적을 갈아엎는 참극까지 벌어졌다. 이후에도 주거 이전에 따른 보상대책은 수조원의 예산 문제로 제자리 걸음만 했다. 부여, 공주, 익산처럼 백제 유적이 주민의 자긍심이 되지 못하고, 없애버리고 싶은 원성의 대상으로 전락한 것이다.

최근 백제유적이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자 서울시도 다급해졌다. 시 쪽은 지난주 풍납토성과 인근 고분군을 내년 세계유산예비목록에 올리고 2020년까지 확장등재하겠다는 방침을 내비쳤다. 문화재계 전문가들은 고개를 가로젓는다. 유네스코의 핵심 등재조건은 유적의 보편적 가치다. 이를 밝히려면, 유적 시기와 성격을 파악할 수 있는 전면 추가발굴이 필요하다. 앞서 주민들이 떠나야 하는데, 주거 이전 비용은 최소 2조원을 넘는다.

서울시가 정한 등재 일정 안에 이 막대한 돈을 확실히 조달할 방안은 현재 나오지 않았다. 지난 10여년간 다른 지역 대토나 재원조달 방안을 문화재청과 시가 협의했지만 성과가 없었다. 올해 1월에는 재원부담을 줄이려고 문화재청이 성안의 보상권역을 축소하고 일부 재개발을 허용하는 방침을 밝혔으나, 시가 일방적 발표라며 대립하는 상황까지 불거졌다.

국공채, 지방채 발행 얘기도 나오지만,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가 뜻을 맞추지 않으면 현실성이 없다. 당장 주민 반발이 터져나왔다. 풍납동 주민대책위는 “백제 왕궁터가 확실치도 않은 유적을 세계유산으로 추진하면 생활권을 더욱 침해할 것”이라며 소송과 감사를 청구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노형석 기자
노형석 기자
세계유산의 핵심 취지는 내실있는 보존이며, 주민들의 찬성이 있어야 등재가 가능하다는 게 상식이다. 하지만 주민들이 유적을 파괴할 만큼 재산권 민원이 가중되고 있다. 시 쪽은 “세계유산등재야말로 주민과 문화재가 갈등을 풀고 공존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전문가들은 세계유산목록에 얽매이지 말고, 정부와 주민 보상·유적 조사 확대를 위한 실질적인 대안 짜내기에 몰입해야한다고 지적한다. 고고학계의 한 소장학자는 “박원순 시장이 ‘세계유산에 집착하지 않겠다. 풍납토성과 주민이 공생하는 길부터 먼저 찾겠다’고 선언했더라면 더욱 좋았을 것”이라고 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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