츠펑 북쪽의 청동기시대 성터인 삼좌점 석성의 모습. 앞으로 튀어나온 ‘치’ 같은 구조물의 모습이 보인다.
(하) 하가점문화의 실체는 무엇일까
요서~내몽골 일대 고대유적들은
여러 민족이 일군 복합문화 도가니
교류 자취 뚜렷…단정짓기엔 무리
“요서 유적 국내 연구자 육성 절실” 하가점상하층 문화는 60년 츠펑시 하가점촌 유적의 상·하층을 발굴하면서 드러난 청동기 문화로, 고대 요하지역과 고조선의 관계를 푸는 또다른 열쇠다. 고조선 문화의 물증인 비파형동검과 고구려계 성곽·주거지 등과 연결되는 취락, 성터 등이 상당수 나와 국내 주류학계도 관심이 높다. 답사단은 성자산산성이 산 정상부 성곽이며, 돌을 다듬어 축성하는 방식 등에서 후대 요동 고구려 산성과 일부 비슷한 측면이 있다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시기가 2000년 이상 차이 나고, 공간적 거리가 크다는 공백도 있으나, 성에 대한 본격 발굴이 진행된 뒤의 성과를 기약하면서 내려올 수밖에 없었다. 아쉬움이 다소 풀린 건 다음날 진행된 츠펑 북서쪽 일대의 삼좌점(싼쭤뎬) 석성 답사였다. 옆에 저수댐이 자리잡은 이곳 둔덕에는 수백미터의 야트막한 성곽과 고구려산성에 보이는 돌출된 ‘치’(적을 끌어들여 제압하는 옹성 시설) 등이 드러나, 중원의 토성과 구분되고, 우리 고대 성곽과의 유사성도 좀더 분명하게 짐작할 수 있었다. 또 성곽 안의 원형 집터 사이의 바위에는 국내 암각화 특유의 동심원과 마름모꼴 암각화도 보여 답사는 활기를 띠었다. 역시 3000~4000년전 유적이라 국내 암각화·성곽 유적과 시기 공백이 크다는 한계가 있고, 군사용인 고구려 성곽과 달리 주거지를 야수들로부터 지키는 외곽 담장 정도의 구실에 머물렀을 것이란 견해도 있다. 박남수 국사편찬위 편사연구관은 “방어성곽 안에 원형 주거지가 넓게 조성된 만큼 마을 성격이 뚜렷하다. 암각화는 동네 장승 구실을 하지 않았나 싶다”고 했다. 이날 오후 찾은 음하(인하) 강변의 지가영자(츠자잉쯔) 유적은 곳곳이 암각화 문양의 밭이었다. 바위 곳곳에 사슴, 늑대 등의 형상과 함께 태양을 상징한 듯한 동심원 등 기하학 무늬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다. “중앙아시아의 초원 암각문화가 내몽골 지역을 거쳐 한반도 남부까지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보여주는 유적”이라는 게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의 추정이었다. 요서와 내몽골 일대의 고대 유적들은 고대 한민족인 예맥족은 물론, 선비, 거란, 한족 등 여러 민족이 일군 복합문화의 도가니였다. 답사 틈틈이 돌아본 우한치 박물관, 적봉 박물관의 토기류와 비파형동검 유물들이 이를 증거했다. 한반도 신석기문화의 빗살무늬 문양과 비슷한 문양의 토기들도 많지만, 어김없이 중원 계통의 다양한 기하·동물문 채색토기가 섞여 있었다. 고조선의 대명사인 비파형동검도 제조 방식이나 함께 나오는 장신구, 무기류 등은 우리 고대문화 양상과 크게 달랐다. 교류의 자취는 뚜렷하지만, 고조선 강역이라거나 한민족이 주도세력이라고 단정하기는 무리라는 게 답사단의 결론이었다. 조영광 국사편찬위 연구사는 “요서·내몽골 유적 현장 연구자가 국내에 사실상 전무해 중국 쪽 조사결과만 놓고 논의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사실관계부터 파악할 연구인력 육성이 초미의 과제”라고 지적했다. <끝> 츠펑/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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