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도 4호선 안에서 나온 조선 초기 나무쪽 목간들. 대부분의 나무쪽에 배의 출항지와 기항지인 나주와 한양 광흥창이 표기돼 마도 4호선이 조운선임을 실증하는 유물이다. 사진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제공
지난해 충남 태안 마도 바닷속에서 많은 백자들과 함께 발견된 옛날 배 ‘마도 4호선’이 조선 초기 세금으로 낸 곡물을 실었던 조운선(漕運船)으로 밝혀졌다. 그동안 옛 문헌으로만 언급됐던 조선 조운선의 실물이 처음 드러난 것이다.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소장 소재구)는 4월부터 벌여온 마도 4호선 정밀 조사 결과를 26일 발표했다. 연구소 쪽은 바닷속에 있는 이 배의 잔해 안에서 ‘광흥창’(廣興倉)이라고 적힌 목간(나무쪽 문서), ‘내섬’(內贍)이라고 쓰인 분청사기 등의 유물과 선박 구조물 등을 찾아냈으며, 이런 유물들의 양상으로 미뤄 이 배가 조선 초기 조운선으로 보인다는 분석 내용을 내놓았다.
마도 4호선은 국내 연근해에서 발견된 최초의 조선시대 선박이며 유일한 조운선 실물이란 점에서 의미가 큰 유물이다. 이전까지 국내 바닷속에서 확인된 옛 배는 모두 13척. 이 가운데 10척은 고려시대 것이고, 신안선 등 2척이 13~14세기 중국 화물선, 지난해 신라산 황칠을 선적했던 것으로 확인된 ‘영흥도’선이 통일신라 배였고 조선시대 배는 전무했다.
연구소가 마도 4호선을 조선시대 조운선으로 지목한 가장 유력한 근거는 나무쪽 문서인 목간이다. 조운선이 향하는 세곡 창고의 행선지를 표시한 목간들이 배 안에서 대거 인양된 데 따른 것이다. 당대 조운선은 백성들로부터 세금으로 거둬들여 각지의 바닷가, 강가의 창고에 쌓은 조세미를 도읍 한양의 창고인 경창(京倉)으로 실어 나르던 것이 주된 임무였다. 마도 4호선 안에서 나온 60여점의 목간들 대부분에는 출발지인 나주와 종착지인 한양 광흥창을 뜻하는 ‘나주 광흥창’(羅州廣興倉)이란 지명이 적혀 세곡미가 수송된 정황을 뚜렷하게 보여준다. 일부 목간에는 곡물의 양과 종류를 뜻하는 ‘두’(斗)와 ‘맥’(麥) 등이 표기되기도 했다. 이런 목간의 글자 내용들에서 마도 4호선이 전남 나주 영산창(榮山倉)에서 세곡이나 공납품을 거둬 광흥창으로 실어나르던 배임을 알 수 있게 됐다는게 연구소 쪽의 설명이다. 광흥창은 고려와 조선시대 관리들의 급여인 녹봉을 보관, 관리했던 기관이다.
배안에서 나온 15세기 분청사기들. 전형적인 조선초 제작기법으로 만들어진 것들로, 배의 연대를 추정하는데 유력한 근거가 됐다. 사진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 제공
배의 연대와 관련해 배 안에서 출토된 분청사기 대접과 접시 140여점도 눈길을 모은다. 이 분청사기들은 중앙부에 무늬를 성글게 넣고 주위는 국화나 새끼줄 무늬를 빽빽하게 새겨넣는 15세기 초반의 전형적인 제작기법들을 쓰고 있어 마도 4호선이 조선 초기의 배라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근거가 됐다. 특히 이 분청사기들 가운데 3점에서는 조선시대 궁궐 물품을 조달했던 관청인 내섬시(內贍寺)를 뜻하는 ‘내섬’ 글자가 확인된다. 지난해 배 잔해를 처음 발견하면서 주변에서 함께 인양한 18세기 백자 110여점은 훨씬 후대 침몰한 다른 배에서 떠밀려온 것으로 배 안의 분청사기들과는 연관성이 없는 것으로 결론지어졌다.
연구소는 이런 유물 연대와 정황을 바탕으로 “마도 4호선이 1410∼1420년대 나주에서 쌀 등을 싣고 한양의 광흥창으로 향하다 마도 앞바다에서 가라앉은 것”으로 보고 있다. 배 안에서는 이외에도 조선초기의 먹거리, 생활 유물들도 다수 인양됐다. 세금용으로 거둔 벼와 보리 알곡들과 나주의 특산품인 대나무와 숫돌, 조선시대 도량형을 유추할 수 있는 곡물 가마니 등인데, 생소한 조선초기의 생활문화사 복원에 귀중한 사료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연구소가 배 크기를 실측한 결과 마도 4호선은 이 해역에서 과거 발견된 선박들과 비슷한 길이 13m, 폭 5m, 깊이 2m이며, 바닥이 평평한 우리 전통배 고유의 평저선(平底船) 얼개로 파악됐다. 선체는 현재 마도 북동쪽 바닷속 수심 9∼15m의 펄바닥에 파묻혀 있다. 뱃머리를 남동쪽으로 돌린 채 선체는 오른쪽으로 50도 기울어져 있다고 한다. 부재는 밑판 3열과 좌현 외판 4단, 우현 외판 11단, 선수와 선미의 자재 등이 남아있는 상태다. 연구소는 “뱃머리 판재는 고려 배와 조선시대 군선이 세로 축 방향으로 설치한 것과 달리 가로축 방향으로 짜놓고, 좌우 판재를 잇는 나무는 고려시대에 쓰인 원통형 목재보다 튼튼한 횡강력재를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설명했다.
연구소는 “최초의 조선시대 선박 실물로 조운선 구조를 확인했을 뿐 아니라 목간과 분청사기 등의 발굴 유물들은 조선 초기 공납제도와 당시 공물의 운송방식을 처음 알려주는 실증 자료로서도 가치가 크다”며 “해양사, 경제사, 도자사, 선박사, 문화사 등 다양한 분야에 귀중한 연구 자료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마도4호선 발굴조사는 올해 10월 말까지 진행된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