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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올여름 분단미술전시 성과와 한계

등록 2015-09-02 19:10

울림과 스밈
한국만큼 과거가 현재를 옥죄는 나라도 드물다. 분단과 전쟁에서 비롯된 남북간 대립은 여전히 우리 삶을 흔드는 거대한 변수인 까닭이다. 광복 70돌인 올해 미술계가 어느 분야보다도 이런 질곡을 의식하는 행보를 보였다는 점은 신기하기까지 하다.

남북관계가 긴장 국면으로 치닫던 7월 즈음해 주요 공공미술관 등에서는 북한과 분단을 소재로 삼은 기획전시들이 잇따라 막을 올렸다. 서울시립미술관의 분단 70년 주제전 ‘북한프로젝트’(7월21일~9월29일)를 시작으로, 국립현대미술관은 서울관의 광복 70주년전 ‘소란스러운, 뜨거운, 넘치는’(7월28일~10월11일)과 덕수궁관의 월북작가 이쾌대(1913~1965) 회고전을 열었다. 아트선재센터는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에서 국내외 작가들의 현장미술전 ‘리얼디엠지(DMZ)프로젝트 2015’(8월13~23일)를 진행했다.

이 유난스러운 북한, 분단 전시들은 한결같이 이념 아닌 시각문화의 관점에서 북한 현실과 분단이 남긴 유무형의 잔재들을 짚어보고 있다. 하나의 민족이자 자아이면서 적과 타자로도 뒤바뀌는 남북의 괴물 같은 정체성을 새롭게 뜯어볼 수 있는 계기도 만들어냈다. 북한의 유화, 포스터 실물과 서구 사진가가 찍은 낯설고도 친숙한 북한 도시 풍경을 대거 선보인 ‘북한프로젝트’전은 일반인들에게 시각적 충격을 주었을 것이다. 분단과 냉전이 남긴 남한 사람들의 고질적인 불안과 혼돈상을 서울관 전시장 위아래를 가득 메운 군집 작품들로 보여준 ‘소란스러운, 뜨거운, 넘치는’전의 형식 파격도 국립미술관에서 전례 없던 시도였다.

‘리얼디엠지’전은 휴전선 후방 소도시로 내려와 분단을 환기시키는 생활미술 실험을 펼쳤다. 70년대 반공미술이나 80년대 참여미술의 이념적 접근과 차별되는 현대미술의 감수성으로 분단과 북한을 호출했다는 사실이 달라진 시대상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기획의 짜임새 면에서 올여름의 분단, 북한 전시는 합격점을 주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북한프로젝트’전의 경우 한국 미술가들의 북한 상상과 외국 사진가들의 북한 기록, 실제 북한미술이라는 세가지 층위의 시선에 따라 기획했다고 미술관은 밝혔지만, 세 영역 출품작들은 사실상 별개의 전시작품들을 단순히 끌어모은 결과물이었다. 북한 유화나 포스터들은 사회주의 리얼리즘이 외부 미술흐름들을 어떻게 배격 혹은 수용하면서 변천해왔는지, 북한 사람들 기층의 의식, 감정은 어떤 것인지를 드러내는 징표인 셈인데, 서구 컬렉션에서 단편적으로 모은 작품들을 심층분석 없이 퍼서 올리는 수준에 머물렀다. 북한과의 직접 교류가 불가능하고, 대여 작품들도 당국의 검열로 일부만 전시하는 분단체제의 힘이 작용한 탓도 있지만, 작품의 내력과 화풍, 조형성에 대한 사전 연구에 소홀했다는 지적을 벗어나기 어렵다.

국립미술관 전시는 기획의 밀도감이 떨어졌다. 앵포르멜, 단색조, 사실주의 등 서로 뒤섞인 시대별 미술사조의 변화나 맥락에 대한 설명을 건너뛰고, 재발견된 민족기록화나 관제 공공미술 등도 의미를 부각시키기보다는 소품처럼 다뤄 전시의 지향점이 보이지 않는다. 한국 대표 미술관의 광복 70돌 기획인데, 도록도 내지 않고, 전시 구성까지 외부 작가에게 맡긴 것은 민망한 일이다.

노형석 기자
노형석 기자
미술이 정치권력의 강력한 도구로 자리잡은 북한과 남북한 시각문화를 기괴하게 굴절시킨 분단은 미술가들에게 매혹적인 소재들이다. 역사적 맥락을 먼저 심층적으로 파악하고, 대중의 눈높이와 미술계 흐름을 함께 고려한 세밀한 기획이 긴요하다는 것을 올여름 분단, 북한 미술전들은 여실히 보여준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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