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전남도청 뒤켠 지하 25m를 파고 건립된 광주아시아문화전당 내부. 정면의 아시아문화광장을 따라 문화정보원과 문화창조원 시설들이 들어서있다. 연면적 4만8000여평인 국내 최대 문화센터다. 개관 뒤 행정기구인 국립아시아문화전당과 콘텐츠기관인 아시아문화원이 분담해 운영하게 된다. 사진 문화체육관광부 제공
4일 부분개관 전당 가보니
‘세월호 사업’. 문화판에서는 지난해부터 이 거대한 문화시설을 이런 별칭으로 부르기 시작했다.
2005년 당시 노무현 정부는 아시아 문화 발신 기지를 만들겠다며 광주에 국내 최대의 복합문화센터를 착공했다. 광주를 문화수도로 키운다는 대선공약을 실천한다는 뜻이었다. ‘빛의 숲’을 내세운 건축가 우규승씨 설계로 80년 광주항쟁 심장부인 금남로 옛 도청 뒤켠을 파고 들어가 지하도시를 만들었다. 연면적 4만8700여평에 전시, 공연, 아카이브 등이 밀집한 ‘아시아문화전당’의 태동이었다. 이후 10여년간 국비 8000여억원을 쏟아부었고, 지난해 10월 웅장한 지하건축물이 위용을 드러냈다. 그러나 이 전당의 실체가 무엇인지를 사람들은 아직도 잘 모른다. 어떤 콘텐츠를 넣을지, 어떻게 운영할지도 명확하지 않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추진안이 바뀌었고, 앞으로도 어떻게 바뀔지 미지수다. 단군 이래 최대 문화사업이라지만, 2년 전 설문조사에서 다른 지역민의 70% 이상, 광주시민의 20%도 사업을 잘 모른다는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아직도 망치소리…내년 초까지 공사
문화창조원 대부분 전시장 ‘텅텅’
예술극장 실험극은 대중성 놓쳐
10년 동안 애초 취지·구상 바래고
인사 문제 겹치며 ‘초라한 출발’
11월 개관을 앞두고 4일 문화체육관광부가 ‘부분개방’한 아시아문화전당은 계속 공사중이었다. 옛 도청을 끼고 아래 아시아문화광장으로 진입하면 어린이문화원, 문화정보원, 문화창조원, 예술극장이 늘어선 건물군이 보인다. 민주평화교류원이 들어설 옛 도청사는 망치 소리로 시끄러웠다. 8월 끝낼 것이라던 개보수 작업이 내년 초까지 늦춰져 보강공사중이었다. 5월 정신이 깃든 전당의 모태 격이었지만, 구체적인 콘텐츠는 기획중이라고만 했다.
2800여평의 6개 복합전시관에서 아시아 담론을 녹인 전시들을 선보일 문화창조원(감독 정준모) 전시장은 대부분 비어 있고, 3관만 ‘신화와 근대, 비껴서다’란 주제로 아시아 근대의 갈등을 살피는 비엔날레풍 전시(기획자 안젤름 프랑케)를 차렸다. 1, 2, 4, 5관 전시는 1월 이영철 전 창조원 감독 해임 뒤로 준비가 미흡해 11월 개관 때 선보인다는 설명이다. 아시아 시각문화를 수집, 연구하고 대중과 공유하는 아카이브시설인 문화정보원(감독 김선정)은 6500여평 공간을 공항 스타일 구조물 사이에 배치한 한일 전위미술 자료와 싱가포르의 근대 시각문화 자료, 국내 대중음반 아카이브 등으로 채웠다. 외양은 전시박람회에 가까워 정보원 전시와 중첩되는 느낌이다. 뒤이어 4일 저녁 거대한 무대문을 갖춘 예술극장에서는 대만 영화 거장 차이밍량의 연극 <당나라 승려>와 타이의 영화감독·영상작가 아피찻뽕 위라세타쿤의 신작 <열병의 방>이 펼쳐졌다. 수도승으로 분한 배우 주위에 종이를 펼쳐놓고 계속 선만 그리거나(차이밍량), 무대를 빛과 연기로 채운(위라세타쿤) 실험극들은 전문가들의 호평을 받았지만, 대중적 틀거지가 아니어서 극장 흥행 전망을 놓고 우려도 나왔다.
각개약진식의 전당 공연, 전시물들은 정체성 측면에서 아귀가 잘 맞지 않았다. 짐작할만한 배경이 있다. 전당추진단과 기획진 책임자들이 인사 내홍으로 계속 바뀌어온 탓이다. 문체부는 부분개방 한달 전인 지난달 3일 기획자와의 갈등과 직제개편 등으로 추진 일정이 정체되자 김성일 추진단장을 방선규 단장으로 갈아치웠다. 앞서 올해 1월 김종덕 장관의 개입으로 돌연 교체된 이영철 전 창조원 감독은 해임이 부당하다며 소송전을 벌이고 있다. 창조원 전시 일부를 맡았던 미술평론가 성완경씨도 세월호와 국가 책임을 다룬 전시 방향을 놓고 감독과 갈등을 빚다 전시를 철회하고 전시비용 정산과 명예회복을 요구하는 중이다. 5개원 콘텐츠를 총괄해온 아시아문화개발원(아시아문화원으로 개편)은 최종만 원장이 전임 기관에서 뇌물을 수수한 혐의로 1일 사퇴했다. 전당에서 장기간 콘텐츠를 다룬 전문가들이 개관 직전 상당수 떠난 셈이다.
10여년간 전당 사업은 ‘꿈의 향연과 몰락’을 거쳐왔다. 2005년 추진단 출범 당시 콘텐츠 개발을 맡은 문화계 전문가들이 회의와 연구를 거듭하며 다듬었던 구상은 문화교류에 바탕을 둔 지식 생산과 예술 융합을 추구한 것이었다. 이는 2007년 처음 나온 운영총괄계획에 반영됐고, 2012년까지 이런 틀 아래 5개원을 통합연계해 콘텐츠를 내는 쪽으로 존속됐으나, 박근혜 정권으로 바뀌면서 문체부가 예술의전당 같은 5개원 분리운영 및 수익강화, 법인화를 추진하면서 애초 취지를 변질시켰다는 반발을 불렀다. 올해 3월 진통 끝에 5년간 정부가 전당을 직접 운영하는 특별법이 국회를 통과했지만, 5년 뒤 운영주체가 미정이고, 운영인원도 애초 예상한 400명 선에서 146명으로 대폭 축소된 것이 불씨로 남았다. 게다가 방선규 추진단장은 수익성 강화를 내세워 전당에 랜드마크 조형물을 추가하고 문화상품 매장에 치중하는 공공미술사업을 추진한다고 밝혀 콘텐츠 부실을 가리려는 꼼수라는 비난을 샀다. 미술계 한 중견기획자는 “애초 전당의 설립 취지는 실종되고, 추진 과정은 숱한 의혹과 부실로 얼룩졌다. 감사 청구 등으로 진상을 밝히고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광주/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문화창조원 대부분 전시장 ‘텅텅’
예술극장 실험극은 대중성 놓쳐
10년 동안 애초 취지·구상 바래고
인사 문제 겹치며 ‘초라한 출발’
아카이브 기관인 문화정보원의 내부 모습. 사진 문화체육관광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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