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농 김광국의 화첩 <석농화원>에 들어 있던 심사정의 ‘와룡암소집도’(간송미술관 소장). 심사정이 1744년 여름 지인이던 김광국, 김광수와 와룡암에서 놀다 소나기가 지나간 뒤 뜨락 풍경을 보고 그렸다. 40여년 뒤 이 그림을 보며 그 시절 추억을 서글프게 회고한다는 김광국의 발문이 함께 붙어 있다.
‘국민전시회’로 불렸던 서울 성북동 간송미술관의 봄가을 기획전을 지켜본 애호가들이라면, 겸재 정선, 현재 심사정 같은 대가들의 산수, 인물도 소품들이 색다른 형식적 특징을 지녔다는 것을 기억할 터다. 깨알처럼 쓴 감상평이 함께 붙어 있고, 그림 가장자리에 ‘김광국’이란 이름이 붙은 작은 그림들이 그것이다.
간송의 연구자들은 이 그림들을 묶어 ‘해동명화첩’이라고 부른다. 간송 전형필이 18세기 조선 굴지의 서화수집가였던 석농 김광국(1727~1797)의 화첩 <석농화원>에 실렸던 일부 그림 22폭을 일제강점기 사들여 엮으면서 붙인 새 이름이다. 원본인 <석농화원>이 후대 원형을 잃고 수록된 그림들이 흩어지자 어쩔 수 없이 수중에 들어온 것만 모아 다시 화첩을 만든 것이다.
조선시대 회화연구자들 사이에서는 사라진 <석농화원>에 실렸던 작품들의 전모와 정보를 추적해 밝히는 것이 중요한 과제였다. 그런데 2013년 연말 이 <석농화원>의 미스터리를 풀어줄 만한 놀라운 단서가 세상에 나왔다. 김광국과 지인들이 손수 이 명화첩의 전체 작품 목록과 그림평(화평)과 감상소감(화제)을 싣고 풀어 설명한 육필본이 발굴돼 서울 화봉갤러리 고서 경매에 나온 것이다. 개인수장가에게 낙찰된 198쪽짜리 이 육필본에는 고려 공민왕부터 조선시대 김홍도까지 400년간 조선과 중국, 일본, 서양 작품 등 267폭의 작품을 모아 펴낸 화첩의 수록작 목록과 작가 정보, 박지원, 강세황 등 당대 최고 지식인들의 평가와 감상소감 등이 단정한 해서체 글씨로 상세하게 실려 있었다. 안개에 싸였던 화첩의 실체가 200여년 만에 드러난 셈이었다.
이 육필본을 유홍준 명지대 미술사학과 명예교수와 김채식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 연구원이 우리말로 옮기고, 화첩에 소개된 그림 가운데 현재까지 남은 그림 130여폭의 도판까지 넣어 해설한 자료집 <김광국의 석농화원>(눌와·5만5000원·사진)이 출간됐다. 모두 열권으로 이뤄진 <석농화원>의 세부 구성과 그림 목록, 그림평들을 한눈에 볼 수 있다. 632쪽의 분량에 <석농화원> 육필해설본의 회화사적 의의를 설명한 유 교수의 글과 김광국의 생애를 정리한 해제, 본문에 등장하는 화가와 평을 쓴 지식인들에 대한 인적사항을 담은 인명록, 육필본의 원문 영인본까지 두루 들어 있다.
주목되는 건 옮긴이들의 분석을 통해 새롭게 드러난 사실들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해온 화첩 수록작 ‘노승탁족도’는 조영석 작품으로 알려졌으나, 육필본에는 조영석의 그림을 이행유가 베껴 그렸다고 적고 있어 오류를 바로잡게 됐다. 또 ‘자실’이란 이의 작품으로 표기된 전남 영암 도갑사의 15세기 불화 ‘32응신도’의 작가를 둘러싼 의문도 당대 화가 이상좌의 자(字)가 ‘자실’이라는 육필본 기록을 통해 이상좌의 작품으로 가닥을 잡을 수 있게 됐다. 조선시대 그림평을 뜻하는 ‘화론’은 전해지는 것들이 드문 편인데, 육필본 발굴을 통해 당대 지식인들의 수준 높은 화론과 문인의 정취가 넘치는 감상평들을 다수 확인한 점도 중요한 성과라고 할 수 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도판 눌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