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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임당동 고분 안 털렸다더니…‘반달리즘’ 키우는 문화재청

등록 2015-10-07 19:20

지난해 1~2월 도굴당한 국가 사적인 경북 경산 임당동 1호분 봉분 경사면에 뚫린 도굴갱. 이번 도굴 사건을 계기로 국가 사적 관리체계의 해이와 부실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진 노형석 기자
지난해 1~2월 도굴당한 국가 사적인 경북 경산 임당동 1호분 봉분 경사면에 뚫린 도굴갱. 이번 도굴 사건을 계기로 국가 사적 관리체계의 해이와 부실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진 노형석 기자
울림과 스밈
“근래 도굴된 적이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구덩이 2개소는 오랜 시일 이전에 뚫린 도굴 구덩이로….”

올해 4월 경북 경산의 국가 사적 임당동 고분군이 무단도굴됐으나 당국이 파악도 못한 채 방치해왔다는 기사가 <한겨레>에 보도된 직후였다. 문화재청은 아리송한 해명 자료를 냈다. 모두 7기가 있는 임당동 고분군은 2~3세기 신라 지방세력 압독국의 후대 유력자들이 묻혔던 것으로 추정되는 유적으로 역사적 가치가 지대하다. 가장 큰 고분인 1호분 양옆으로 도굴갱이 뚫리면서 고분 천장부까지 무너지는 처참한 몰골이 드러났고, 도굴갱 주변에 얼마 전 파낸 흙더미가 눈에 띄는데도, 문화재청은 긴급 현장조사를 벌인 뒤 최근 도굴이 아니라고 딱 잡아뗀 것이다.

6일 경산경찰서가 도굴범 7명을 붙잡았다고 발표했다. 경찰이 밝힌 전모를 보니 문화재청 해명은 엉터리였다. 골동상과 인부 등이 지난해 1~2월 한밤과 새벽에 곡괭이, 삽을 들고 수시로 무덤을 찾아가 갱을 파고 금제 귀걸이, 칼, 허리띠 등을 캐어 갔다고 실토한 것이다. 문화재청이 1년여 전의 도굴 사실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채, 국가 사적 관리에 소홀했다는 책임을 피하려고 종잡을 수 없는 옛적 도굴 흔적을 운운하며 넘어가려 했다는 비난이 일고 있다.

7일 문화재청 종합국감에서도 임당동 고분의 도굴사건을 ‘최근 도굴이 아니’라고 발표한 청의 무능이 입길에 올랐다. 박홍근 의원(새정치민주연합) 등은 긴급현장실사까지 벌이고도 최근 도굴인지도 파악하지 못한 청의 형식적인 행정을 질타했다.

임당동 고분군은 도굴 탓에 국가 사적이 된 흑역사를 갖고 있다. 1982년 2호분 도굴 유물들을 해외 반출하려던 일당이 검거되면서 유적의 가치가 알려졌고 83년 사적 지정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러나 이후에도 고분군은 당국의 무관심 속에 울타리조차 없이 방치되어 왔다. 도굴 신고가 들어오고 수사가 시작되자 지난달에야 목재 울타리가 설치됐다. 도굴범들이 함께 파헤친 인근의 압량면 부적리 고분군도 마찬가지다. 임당고분군과 같은 성격의 압독국 계통 무덤으로 추정되며 규모는 더욱 큰 것으로 학계에서 짐작해왔으나 사적이 아니어서 보존 행정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다. 경산시가 2007년 사적 지정을 건의했으나 유물이 확인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무산되고 줄곧 방치되다 도굴 직격탄을 맞은 것이다. 과수원 안에 있는 무덤들은 허리가 절개된 채 파헤쳐졌다. 임당 1호분 도굴 유물들은 일부 회수했지만, 부적리고분 도굴품들은 여전히 찾지 못하고 있어 더욱 가슴을 아프게 한다.

문화재청 통계를 보면, 전국에는 155개 고분군(국가 사적 44개, 시도 지정 문화재 111개)이 흩어져 있다. 그러나 청은 체계적인 도굴·도난 예방 관리대책은커녕 기초 현황도 제대로 파악하는지 의심스럽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임당동 고분을 위탁관리하는 경산시에는 한 명의 학예사도 없다. 담당 공무원들도 부임한 지 1~2년에 불과하고 문화재 관리 경력자도 전무하다. 다른 곳도 다르지 않다. 국가지정문화재 관리를 맡은 226개 기초지방자치단체 중에 학예사가 배치된 곳은 119개(52.7%)에 불과해 기초단체 절반가량은 학예사가 없는 셈이다. 문화재청 관료들은 이런 현실을 업고 예산, 인력 타령만 하며, 훼손 사건이 언론에 보도된 뒤에야 나서는 업무 풍토가 고질화된 지 오래다. 이번 사적 도굴 사건도 이 틈새에서 일어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노형석 기자
노형석 기자
올해 4월 도굴 흔적이 발견된 뒤 영남고고학회 등 지역 학자들은 성명서까지 내면서 임당동, 부장리 유적에 대한 긴급 피해현황 발굴조사와 보존지역 확대 등의 조처를 요청했다. 그러나 지금도 진척된 건 거의 없다. 시가 울타리를 치고, 문화재청 후원으로 탐방단 답사를 하고, 한달여 전 컨테이너 사무실을 두고 관리인을 신설한 게 전부다. 누가 봐도 보여주기 행정이다. 시리아 팔미라 유적을 마구잡이로 파괴하는 이슬람국가(IS)의 만행을 반달리즘으로 마냥 개탄만 할 것이 아니다. 반달리즘을 키우는 이 땅의 온상부터 되짚어봐야 한다. 공무원들이 입만 웅얼거리다가 유적이 만신창이가 되어야 행정력이 작동하는 나라가 지금 대한민국이기 때문이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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