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경자 화백의 유족들이 27일 오후 서울 중구 덕수궁길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서 ‘천경자 화백 유족 입장 발표 기자회견’을 하기에 앞서 고인이 1998년 기증한 작품 93점을 전시중인 2층의 ‘천경자 상설전시실’을 둘러보고 있다. 왼쪽부터 차녀 김정희씨, 사위 문범강씨, 장남 이남훈씨. 신소영 기자 viator@hani.co.kr
사망 사실 두달여 숨긴 큰딸에
다른 가족들 원망섞인 목소리
금관훈장 추서않는 정부엔 “비탄”
다른 가족들 원망섞인 목소리
금관훈장 추서않는 정부엔 “비탄”
“두달 전 숨진 어머니의 타계 소식도 알려주지 않았어요. 어머니 유골을 어디 모셨는지 알려달라는 것, 그게 언니에게 하고 싶은 말입니다.”
지난주 미국에서 두달 전 별세한 사실이 확인된 고 천경자 화백의 둘째 딸 김정희(54·미국 몽고메리칼리지 교수)씨는 목멘 목소리로 취재진 앞에서 말을 이어나갔다. 말 속에서 어머니의 별세 사실을 숨기다 일부 언론에만 제보로 알려준 고인의 맏딸이자 언니 이혜선(70)씨에 대한 원망이 묻어나왔다. 언니가 뉴욕 집에서 돌봐온 어머니를 지난 십여년간 간간이 찾아가 만났으나 차단을 많이 받았으며, 올해 4월5일 병상의 어머니 모습을 본 것을 마지막으로 이후 연락이 끊겼다고 했다.
27일 오후 서울 서소문 서울시립미술관 지하 강당에서는 김씨 등 천 화백의 유족들이 자청한 기자회견이 열렸다. 장남 이남훈(67)씨, 둘째 딸 김씨와 사위인 문범강(61·조지타운대 미술과 교수)씨, 막내 고 김종우씨의 아내 서재란(52)씨가 참석했다. 맏딸 이씨는 나오지 않았다. 유족들은 앞서 고인의 기증작 93점을 전시중인 2층 ‘천경자 상설전시실’을 돌아본 뒤 회견장에 들어왔다.
유족들은 회견에서 입장 발표문을 통해 “어머니 별세 소식을 미국 시간으로 이달 18일 한국의 한 은행으로부터 어머니 통장 계좌 해지 동의를 요구하는 전화를 받고서 알게 됐다. 언니가 유골함을 들고 8월 서울시립미술관 수장고를 돌고 갔다는 소식을 언론을 통해 알게 된 뒤 아무런 장례나 추모행사 없이, 많은 사람들이 애도의 뜻을 표할 기회도 없이 어머니를 떠나보내야 된다는 데 망연했다”고 심경을 밝혔다. 딸 김씨는 “(언니가) 모든 일을 독단적으로 하길 원하고 사이 좋아졌다가도 소통이 안되곤 했다”며 “이해할 수 없는 인격과 행동을 어떻게 분석해 말할 수 있겠느냐”고 했다.
유족들은 30일 오전 10시 서울시립미술관에서 별도 추모식을 주최하기로 했다면서 대표작을 기증한 고인에게 서울시가 격식을 갖춰 예우해달라고 요청했다. 또 이들은 문화체육관광부가 고인의 말년 활동이 미미하며 사망에 얽힌 미스터리가 풀리지 않았다는 등의 이유로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하지 않기로 한 방침에 대해 “납득할 수 없고 가슴 무너지는 비탄을 느낀다. 재고해야 할 것”이라고 유감을 나타냈다. 사망 시점 논란에 대해서는 “미국 법제상 사망 때 바로 신고해야 한다. 8월6일 사망진단서가 나온 것은 명백한 사실”이라고 강조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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