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슈국립박물관 4층에 차려진 ‘신라 왕자가 본 다자이후’전 전시장 모습.(위 큰 사진) 아래 왼쪽은 ‘신라 왕자…’전에 나온 가야의 금동관, 금동관모, 금동신발. 오른쪽은 일본 후쿠오카현 오노성에서 출토된 신라 토기 항아리.
신라의 전성기인 752년(경덕왕 11년) 3월 신라왕자 김태렴은 대규모 사절단을 이끌고 일본에 들어가 ‘비즈니스’ 외교를 시작한다. 일행은 일본의 서쪽 관문인 규슈섬 하카타 항에 도착한 뒤 백제인이 쌓은 미즈키 성을 통과해 내륙의 중심도시 다자이후로 들어왔는데, 700명이 넘는 전례없는 규모여서 행렬 자체가 조선통신사 못지않은 장관이었다.
사실 외교는 구실이고, 일행중 태반이 상인들이어서 무역사절단과 다름 없었다. 김태렴 등 일부 왕족·고관들만 간사이 지방에 있는 도읍 나라까지 가서 교켄 일왕을 만나고 왔을 뿐이다. 상당수 상인들은 다자이후에 남아 장사판을 차렸다. 신라상인들은 고급스런 신라 놋그릇과 식기, 향료, 서역 실크로드에서 수입한 각종 수입품, 공예품들을 잔뜩 들고와서 일본 귀족들의 넋을 빼놓았다. 처음 보는 신라산 무역품에 대한 일본인들의 구매 열기는 하늘을 찔렀다. <속일본기> 등 당시 일본 역사서들은 중계방송하듯 이들의 행적과 팔았던 물품들을 기록했고 일본 왕실의 옛 보물창고인 나라의 ‘쇼소인’이란 곳에는 당시 귀족들이 사기를 희망한 신라 물품들의 목록을 적은 ‘매신라물해’라는 문서가 지금도 남아있다.
한국관광객들이 즐겨찾는 일본 후쿠오카 현의 명소인 다자이후시의 규슈국립박물관에서 1300년 전 신라왕자 김태렴의 비즈니스 외교를 주제로 삼은 이색적인 전시가 열리고 있다. 지난달 중순 개막한 ‘신라왕자가 본 다자이후’라는 기획전이다. 물결 덩어리 같은 외관의 박물관 4층 문화교류전시실 한쪽에 차려진 이 전시는 왕자 김태렴과 사절단 사람들이 처음 머물렀던 것으로 추정되는 하카타항과 다자이후의 영빈관 공간에서 그들이 무엇을 보고 먹으며, 어떻게 생활했을까에 초점을 맞췄다. 전시장은 신라·가야 황금문화, 규슈 영빈관터의 신라 교역, 교류 유물들, 도읍 나라의 신라 관련 유물 등의 차례로 일본에 자취를 남긴 신라의 역사와 유물들을 내보여준다.
어둠이 깔린 전시실을 들어서면 금판알갱이들이 달린 가야시대 금관과 금동관모·금동신발이 먼저 나타난다. 일제강점기 대구에서 출토됐다는 이 유물들은 박물관 소장품으로 나뭇가지 모양 관과 새 날개 모양 관장식 등에서 신라와 가야가 황금문화를 공유했음을 알려준다. 전시의 핵심 유물은 규슈 영빈관터의 신라 유물들이다. 다자이후시의 옛 큰길인 주작대로 터 옆에서 최근 발굴된 객관터와 후쿠오카시 야구장터에서 드러난 영빈관(고로칸)터에서 나온 것들로, 신라사신단과 상인들이 쓰거나 교역했던 것들로 추정된다. 일본 귀족들의 지위를 과시하는 필수 구매 품목이었던 신라의 고급 금속식기 사하리의 조각과 숟가락들이 눈을 잡아끈다. 고로칸 변소터에서 나온 ‘똥막대’는 나무쪽 문서인 목간을 쓰고 버린 것을 휴지 대용으로 활용했던 것으로 신라사절단도 물론 썼을 것이다. 경주 고찰터에서 나오는 귀신 무늬 기와, 화려한 보상당초문 바닥전과 거의 똑같은 출토품들도 있다. 또 다자이후 인근 오노성 등에서 나온 원무늬 점점이 찍힌 신라토기 항아리들은 이곳 일대에 신라인 타운이 형성돼 활발한 교역 등의 대외활동이 이뤄졌다는 것을 보여준다. 방대한 고고학 자료를 토대로 한일 교류사의 구석구석을 들여다본 일본 박물관의 역량도 느껴진다. 11월29일까지.
다자이후/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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