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빙고 발굴 과정. 사진 백제고도문화재단 제공
백제 사비도읍기 빙고는 첫 확인
얼음 넣으면 15t 트럭 다섯차 규모
조선시대 빙고는 10차 들어갈 크기
얼음 넣으면 15t 트럭 다섯차 규모
조선시대 빙고는 10차 들어갈 크기
백제 고도인 충남 부여(사비)에서 당시 도성 사람들이 얼음을 저장했던 창고인 빙고터가 나왔다.
부여군과 (재)백제고도문화재단은 사비도성터 부근의 백마강 나루터였던 구드래 (명승 63호) 유적과 도성터 서쪽 나성(사적 58호) 부근을 조사하다 직사각형 구덩이 모양의 백제, 조선시대 빙고터를 잇따라 발견했다고 11일 발표했다.
빙고가 나온 곳은 사비도성의 중요한 거점들로, 옛적부터 관아가 있던 마을이다. 옛부터 빙고리, 빙고재라는 지명으로 불려 빙고 흔적이 있을 것으로 짐작해왔다. 확인된 두 빙고터는 겨울철 언강 등에서 잘라난 얼음을 내내 저장하는 직사각형 모양의 구덩이와 녹은물을 내보냈던 배수로로 이뤄졌다. 백제 빙고터(사진)는 7.2×4.7m 크기에, 깊이 1.9m이며, 구덩이 바닥은 중앙부가 가장 낮아지도록 오목하게 골랐고, 배수로와 잇닿는 T자형의 물꼬를 터놓은 게 특징이다. 길이 4m 조금 넘는 배수로 흔적과 더불어 당대 얼음 저장과 활용 양상을 구체적으로 추정할 수 있게 됐다는 설명이다.
조선 전기로 추정되는 또다른 빙고터(16.4m×6m)는 백제 빙고보다 훨씬 크며, 장방형 돌을 잘라 양쪽 벽을 쌓았다. 조사단이 용적을 계산해보니 백제 빙고터는 약 48㎥, 조선시대 빙고터는 약 100㎥였다. 내부에 얼음을 가득 채을 경우 15t 트럭으로 백제 빙고는 최소 5차 분량, 조선 빙고는 약 10차 분량으로 추정됐다.
백제 빙고터는 초기 한성(서울) 도읍기의 충남 연기 나성리유적, 공주(웅진) 도읍기의 공주 정지산유적 등에서 확인된 바 있지만, 사비 도읍기 빙고는 처음 발견된 사례다. 전통 빙고는 18세기 이후 경주 석빙고처럼 대부분 돌로 쌓은 석빙고로 뒤바뀌기 때문에 이번에 드러난 두 빙고터는 석빙고보다 이른 시기 옛 빙고의 얼개와 변천 과정을 밝힐 수 있는 소중한 단서가 된다는 평가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부여 백제빙고 발굴 현장. 사진 백제고도문화재단 제공
조선시대 빙고. 사진 백제고도문화재단 제공
백제 빙고 유적 전경. 사진 백제고도문화재단 제공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