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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능은 호흡이 짧아요, 길게 보면 유연성이 중요하죠”

등록 2015-12-20 20:26수정 2015-12-20 20:40

김하나 BB&TT 대표
김하나 BB&TT 대표
[짬] 글 잘쓰는 광고인 김하나 BB&TT 대표
“방송작가들은 아이디어를 위해 종이에 적힌 거라면 작은 쪼가리도 다 본다더군요.”(기자)

“카피라이터는 종이는 물론이고 영화나 그림까지 다 챙겨 보지요.”(김하나)

독립광고회사 ‘BB&TT’ 공동대표인 카피라이터 김하나씨가 최근 펴낸 에세이집 <내가 정말 좋아하는 농담>(김영사)을 보면 이 말이 어떤 의미인지 짐작할 수 있다. 그의 머리속에서 샘솟는 아이디어의 광대한 원천을 엿볼 수 있다. 동화(위니 더 푸)로 이야기를 풀더니, 순간 보들레르의 시(취하라)가 튀어나온다. 팝 그룹 비지스의 팔세토 창법(가성의 높은 소리)은 소매가 2미터 넘는 승무용 장삼에 가닿는다. 그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삶은 ‘세기의 복서’ 무함마드 알리에서 <뿌리깊은 나무>(1976~80) 발행인 고 한창기 선생까지 진폭이 크다.

‘글 잘 쓰는 광고인’ 김 대표를 17일 서울 종로구 옥인동 그의 사무실에서 만났다.

아시아 젊은 광고인들 겨루는
영로터스상 한국인 유일 수상
네이버-세상의 모든 지식 광고
‘허핑턴포스트코리아’ 브랜딩도

‘내가 정말 좋아하는 농담’ 호평
“내게 소중한 이야기 카피로 쓸 터”

“발간 2주 만에 2쇄를 찍었어요. 더 놀란 것은 2쇄를 3천부 찍은 거예요. 교보문고에서 강의도 했지요. 반응에 놀라고 있습니다.” 그가 2년 전 창의성을 주제로 펴낸 <당신과 나의 아이디어>(씨네21북스)는 3쇄까지 찍었다. ‘글 잘 쓰는 광고인’ 하면 박웅현이 떠오른다. 사실 김 대표가 2000년 제일기획에 신입사원으로 들어갔을 때 박씨가 팀장이었다. 그는 2005년부터 2년 동안 박씨가 세운 광고회사(TBWA-KOREA)에서 일하기도 했다. 박웅현 사단의 일원인 셈이다.

박씨는 “그녀의 아이디어에 그 많은 신세를 지고 난 후, 나는 오늘 이 자리에 서 있게 되었다”고 김 대표에게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이유가 뭘까. ‘Why Cannes?’ 이 영단어 두 개가 답을 찾는 열쇠일지 모르겠다. 김 대표는 아시아 지역 젊은 광고인들이 모여 창의성을 겨루는 아시아·태평양 광고제 영로터스 워크숍에서 1등 상을 받은 국내 유일의 광고인이다. 2006년 아트디렉터 박지훈과 함께 팀을 꾸려 참가했다. 과제는 아시아·태평양 광고제 홍보였다. 그는 ‘굳이 왜 칸 광고제를 가야 하나?’라는 카피로 영로터스 상을 거머쥐었다. 최고 권위의 칸 광고제를 앞세워 아·태 광고제를 띄운 것이다. 당시 주최쪽에서 “우리가 이 도시(서울)에서 온 참가자에게 상을 줄 줄은 몰랐다”고 했다고 한다. ‘에스케이텔레콤-현대생활백서’ ‘네이버-세상의 모든 지식’ 등의 광고도 그의 손을 거쳤다.

2007년 이후 프리랜서로 일하다 지난해 4월 김희정씨와 함께 BB&TT를 설립해 <허핑턴포스트코리아><티브이엔>‘숨37’ 등의 브랜딩을 했다. 브랜딩은 브랜드의 이미지와 느낌을 소비자의 마음속에 심어주는 작업을 말한다. 그가 허핑턴포스트코리아를 위해 뽑은 카피 ‘인생은 뉴스로 가득하다’는 에스엔에스에서 이 신생 매체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는 데 기여했다. “미국 허핑턴포스트를 보니 작지만 울림이 있는 재밌는 뉴스들이 많았어요. 이런 작은 소식들도 뉴스가 될 수 있다니…. 뉴스의 개념을 바꿔보자는 생각으로 카피를 썼지요.”

그만의 아이디어가 가장 빛난 광고는 뭘까? “2002년 신문 전면광고로 실린 ‘사자가 자세를 바꾸면 밀림이 긴장한다’라는 카피입니다. 벤츠 S클래스 모델의 일부 기능이 바뀌는 것을 사자가 자세를 바꾸는 것으로 표현했지요.”

가장 좋아하는 자신의 카피는 따로 있다. 인피니티 사륜구동모델 광고인데, 고은의 시에서 아이디어를 끌어왔다고 했다. “힘좋은 사륜구동이라, ‘네발짐승을 타라’ 정도 생각했는데, 어느 순간 회사에서 읽었던 고은의 <순간의 꽃>이란 시집이 떠올랐어요.” ‘인간은 네 발로 달리던/ 원시의 쾌감을 결코 잊지 못한다’는 카피는 이렇게 탄생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진지하고 재밌게 하면서 살아가면 일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읽고 보고 경험한 것들이 쌓여 있다 툭 튀어나오기 때문이란다. “일하는 것(카피 작업)은 식물과 같아요. 환경을 잘 만나면 쌓인 씨앗들이 발아됩니다.” 목적이 아닌, 재미를 지향하는 자신의 삶에는 어머니의 ‘방임’이 도움을 준 것 같다고 했다. “부모님이 유연해야 아이들도 유연하겠지요.” 올해부턴 전기자전거를 타고 북촌 집에서 서촌 사무실까지 출퇴근한다. 2007년엔 회사를 그만둔 뒤 남미를 6개월 여행했다. 물론 좋아서 하는 일이다.

뛰어난 카피라이터가 되기 위한 덕목이 있을까? “재능과 스킬은 호흡이 짧아요. 길게 봤을 때 유연성이 중요한 것 같아요. 흐름에 따라 자기를 변화시킬 수 있는 유연성이 중요하지요.” 이런 말도 했다. “무언가 잘하려면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좋은 결과물을 얻기 위해선 일을 할 때의 마음가짐이 중요해요.”

‘광고밥’을 먹던 초년기엔 회의도 있었다. 자신의 일이 허황된 가치를 거짓으로 만들어내는 것 아니냐는 생각 때문이었다. 작은 회사를 꾸리고, 브랜드의 이름과 성격을 구축하는 데 치중하고 있는 요즘은 생각이 조금 달라졌다. “사람들은 상품이나 브랜드의 ‘실제 가치’만으로 살아가지 않아요. 분위기나 뉘앙스 같은 무형의 가치들도 중요합니다. 이들은 ‘실제 가치’와 나누어질 수 없지요. 그래서 요즘 일이 더 재밌습니다.”

끝까지 카피라이터로 남고 싶다고 했다. “장기적인 꿈은 ‘인생 카피라이터’가 되는 겁니다. 광고주 의뢰로 카피를 쓰기보다는 제가 생각하는 인생의 가치, 제가 알리고 싶은 노래, 제가 소중하게 여기는 이야기를 알리는 카피를 쓰고 싶어요.” 그가 최근 화장품 ‘숨37’을 위해 만든 홍보 책자를 펼쳤다. 성찰과 지혜가 번득이는 잠언집 같다. 이미 그의 꿈에 가까이 가고 있는 것이다.

강성만 기자 sungman@hani.co.kr

사진 탁기형 선임기자 kht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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