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 태양의 서커스 <아마루나>의 한 장면. 아마루나는 어머니를 뜻하는 ‘아마’(ama)와 달을 뜻하는 ‘루나’(luna)를 합친 말로, 달의 영향을 받는 신비의 섬에서 벌어지는 사랑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태양의 서커스는 전통 서커스에 이야기 등 극적 요소를 한층 강화했다. 마스트엔터테인먼트 제공
[토요판] 커버스토리 / 컨템퍼러리 서커스의 진화
서커스(circus)는 고대 로마 전차 경기장의 원형 울타리를 이르는 말이었다. 18세기 영국의 원형 공연장 내에서 말타기 곡예를 하던 이들이 오늘날 의미에 가까운 ‘로열 서커스’란 이름을 처음 썼다고 한다. 서커스는 그 이름만큼 오래된 공연예술이다. 줄타기와 춤, 애크러뱃(acrobat) 중심의 예능은 이집트나 그리스, 로마의 기록에도 남았다. 서구의 서커스는 20세기 후반부터 조금씩 음악과 주제의식 등이 결합된 종합무대예술로 성격이 변했다. 동물의 묘기보단 사람의 신체를 써 이야기를 풀어가는 스토리텔링이 강조되면서 무용과 연극, 마셜아츠 등을 포괄하는 개념으로 확장했다. 대표적인 것이 캐나다의 ‘태양의 서커스’다.
태양의 서커스는 광대나 곡예, 대형 천막공연장 같은 전통 서커스의 요소를 그대로 가져가면서 극적 요소를 한층 강화했다. 공연마다 별도의 제목과 스토리 라인이 도입됐고, 무대와 조명, 의상은 화려해졌다. 음악과 안무는 뮤지컬을 연상시킨다. 배우들의 고난도 묘기를 중심으로 여러 요소가 어우러져 스펙터클을 창조하는 총체극(Total Theatre)이 됐다. 이런 공연을 위해 프랑스나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등에선 20~30년 전부터 중앙정부나 주정부가 예산을 대는 국립서커스학교가 세워졌다.
동물묘기보다 스토리텔링
무용과 연극, 마셜아츠 포괄
캐나다 ‘태양의 서커스’처럼
21세기 서커스는 종합무대예술 신종플루 뒤인 2009년 말에
극단해체 선언한 동춘서커스
사회적기업으로 지원받으며
중국인 단원들로 명맥 이어가
한국에서도 서커스는 1960년대까지 가장 중요한 엔터테인먼트였다. 마당놀이나 전통연희 같은 과거 대중 놀이문화의 연장선이었다. 당대의 주요 연예인들이 서커스 극단 출신이었고, 이따금 서울시청 앞에서 열리던 외국 서커스단 공연엔 인파가 몰렸다. 그러다 텔레비전과 영화가 본격적으로 보급된 1970년대 들어 변화가 시작됐다. 주된 서커스 레퍼토리였던 연극과 쇼가 사멸하고 곡예 중심으로 바뀌더니 1980년대 이후 본격적으로 사양사업화했다.
일제강점기였던 1925년 동춘 박동수 선생이 목포에서 창단한 국내 첫 곡예단이자 국내 대표 서커스 극단인 동춘서커스단도 이런 흐름을 탔다. 동춘서커스단은 신종플루로 다섯달 동안 손님이 없었던 2009년 말 극단 해체를 선언했다. 마지막 남은 국내 유일의 서커스단이 해체된다는 소식에 국민적 관심이 일었고, 결국 사회적기업으로 인정받아 인건비와 사업개발비를 지원받았다. 현재 경기 안산 대부도에 천막무대를 차려놓고 상설공연과 출장공연을 이어가지만, 단원 대부분이 중국인이다. 한국의 서커스는 이제 전통문화, 향수 같은 말들과 나란히 쓰이는 고루한 개념이 됐다.
조동희 서울문화재단 축제지원센터 팀장은 “서커스를 표방한 국내 예술단체는 매우 희귀하지만, 현지에서 무용이나 신체극 등 서커스 쪽으로 분류되는 국외 유명 단체들의 공연은 성황리에 진행된다. 또 해외 예술가들 관점에서 서커스와 유사한 표현 형식을 띠는 국내 단체들도 서커스란 이름을 꺼린다. 국내 인식이 아직 부정적”이라 했다.
크게 보아 서커스라 해도 좋을 국내의 공연예술은 도심 공원이나 광장에서 펼쳐지는 ‘거리예술’이란 이름으로 이뤄진다. 최근엔 여러 지자체가 여는 거리축제가 주 무대다. 안산시는 지난해로 11회째 국제거리축제를 이어왔고, 서울시의 하이서울페스티벌은 2012년부터 본격적인 거리예술축제가 됐다. 서울시는 지난해 서울문화재단을 통해 ‘서울거리예술창작센터’를 만들어 서커스 예술가를 양성한다. 오스트레일리아 극단 ‘레그스온더월’(legs on the wall)과 한국의 ‘아시아나우’가 공동제작한 서커스 음악극 <사물이야기> 등 각종 거리예술작품 제작도 지원했다. 이솔빛나가 참여한 서커스 공연 ‘스틸 라이프’도 센터의 지원을 받았다. 과거의 전통은 이름만 남은 가운데, 새로운 한국형 컨템퍼러리 서커스의 맹아가 한켠에서 조금씩 자라고 있다.
박기용 기자 xeno@hani.co.kr
무용과 연극, 마셜아츠 포괄
캐나다 ‘태양의 서커스’처럼
21세기 서커스는 종합무대예술 신종플루 뒤인 2009년 말에
극단해체 선언한 동춘서커스
사회적기업으로 지원받으며
중국인 단원들로 명맥 이어가
태양의 서커스 <바레카이>의 모습. 마스트엔터테인먼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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