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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진주 토박이 30년 자존심 걸고 ‘진심 콘텐츠’로 맞짱”

등록 2016-02-15 18:56수정 2016-02-16 19:01

‘진주문고’ 여태훈 대표 . 사진 진주문고 제공
‘진주문고’ 여태훈 대표 . 사진 진주문고 제공
[짬] 지역출판사 운영하는 ‘진주문고’ 여태훈 대표
<백년부부>는 3대째 목수일을 하는 남편과 전족을 한 두살 연하의 아내가 72년동안 해로한 이야기다. 중국 <인민일보> 기자 지아오보가 30년동안 자신의 부모가 늙고 죽어가는 과정을 사진과 글로 기록한 수상집이다. 오로지 자식을 위해 헌신하는 부부의 모습이 60~70년대 우리의 부모를 연상시켜 짠하다. 항일전쟁, 중국(국공)내전, 문화혁명, 근대화 등 중국 현대사가 녹아있다. 원작은 1998년 출간되었고 국내에는 99년, 2005년 두 차례 번역본이 나왔다. 그런데 최근 펄북스에서 새로 출간됐다. 펄북스는 무슨 심사로 두 번이라 풀어먹인 구간을 다시 냈을까. 그런 책을 내는 펄북스는 도대체 어떤 곳이고 대표 여태훈(55)씨는 누구일까.

지난해 펄북스 차려 잇따라 화제작
첫 단행본 박남준 시집 ‘중독자’ 5쇄
“대형서점서 묻힌 ‘진주’ 캐내 빛봤죠”

86년 경상대앞 ‘대학생 둥지’로 시작
60여개 지역 서점 10개 됐지만 ‘건재’
“고객 70%가 단골…문화행사로 보답”

펄북스는 진주의 지역출판사다. 30년 토박이 ‘진주문고’ 대표인 여씨가 지난해 2월 차렸다. ‘지리산 시인’ 박남준의 <중독자>를 시작으로 <동네도서관이 세상을 바꾼다>(이소이 요시미쓰), ‘진주 시인’ 박노정의 <운주사>를 잇따라 펴냈다. 올해는 ‘백년부부’를 시작으로 <나의 어머니 시즈코상>(사노 요코)과 ‘진주문고 30년 이야기’를 담은 단행본을 낼 참이다. ‘펄’(진주)라는 이름에 진주와 진주문고의 자부심과 지향점이 묻어난다.

“모든 게 서울 중심으로 돌아가 지역은 황폐해졌잖아요? 지역문화가 거의 없다시피해요. 출판은 더하죠. 진주에도 인쇄소를 겸한 출판사가 있기는 한데 자비출판을 하는 정도입니다. 제대로 된 지역 콘텐츠를 제 손으로 만들어내고 싶었어요. ‘중독자’ ‘운주사’가 그런 거죠. 서울에서 내는 거보다 촌스러울지 모르지만 진심만큼은 담았다고 자부합니다.”

‘백년부부’, ‘나의 어머니 시즈코상’은 일종의 재발굴작이다. 출판사가 부도나거나 마케팅을 못해 단명한 작품들 가운데 골라낸 진주다. “좋은 책인데도 작은 출판사에서 내면 대형서점 매대에 진열되는 기회를 얻기 힘들어요. 눈에 잘 띄는 곳은 뒷거래가 이뤄지다 보니 더 그렇죠. 서점 출판사에서 그런 공백을 메우는 구실을 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가 펴낸 책은 전국망을 갖춘 교보보다는 지역의 중견서점에서 팔리는 분량이 많다. 5쇄 4500부를 찍은 ‘중독자’는 3천부가 지역서점에서 팔렸다. 부회장을 맡고 있는 한국서점인협의회의 회원들 도움도 많이 받는다고 했다. “책을 만드는 과정은 참 행복한데 정작 책이 나오면 한숨부터 나옵니다. 마케팅이라는 미명 아래 온갖 수단방법을 다 동원하는데 어찌 경쟁할 수 있겠어요. 그저 잘 만들어서 독자 스스로 찾게 하겠다는 일념으로 만듭니다. 당장 팔리지 않아도 좋아요. 진주서점에 따로 진열해 두고두고 판매할 생각입니다. 우리가 이런 책을 냈다는 자랑도 되고요.”

‘동네도서관이 세상을 바꾼다’는 11평 작은 방에서 시작한 ‘동네도서관 운동’으로 일본 전역에 희망의 바람을 불러일으킨 한 남자의 이야기다. 이 책을 선택한 데는 여 대표의 서점운영 철학이 겹친다. 시작은 86년 경상대 앞 ‘개척서림’이었다. 전두환정권 시절, 대학생들의 아지트였다. 시위 때면 학생들은 가방을 맡기고 집회 뒤풀이 땐 막걸리를 함께 마셨다. 툭하면 경찰에 불려가고, 책을 압수 당했다. 88년말 구도심으로 옮긴 ‘책마을’도 도서관과 문화행사를 겸해 복합공간 구실을 했다. 91년께 비로소 ‘진주문고’ 간판을 걸었다. 외환위기를 겪으며 99년 현재의 신도심 주택가로 옮기는 승부수를 걸었다.

그사이 60여개에 이르던 시내 서점이 10여 곳으로 줄었다. 하지만 진주서점은 평거동 본점 350평, 진주엠비시 분점 250평 등 600여평으로 늘어났다. 지역의 아지트를 자임한 까닭이다. 진열 방식도 독특해 ‘편집진열’이다. 기존에 나온 책을 컨셉트에 맞춰 재배열해놓았다. 홍준표 경남지사가 무상급식 중단을 할 때, <꿈의 도시 꾸리찌바>, <밥값 했는가>, <나는 복지국가에 산다>, <잡놈들 전성시대> 등을 별도 진열했다. 책을 통한 지역정서의 대변이다. <엠비(MB) 자서전>이 나왔을 때는 비판적인 내용의 <엠비의 비용>을 함께 진열해 독자의 판단에 맡겼다. 일주일 뒤 따져보니 전자는 두어 권, 후자는 수십 권이 팔렸더랬다.

진주서점의 특징은 고객 70%가 단골이란 것이다. 진성회원 7만명이 반복구매한다. 진주시 인구가 35만이니 5명에 1명꼴로 회원인 셈이다. “온라인 서점이 10% 마일리지를 주는데, 진주서점은 5%밖에 주지 않아요. 대신 저자 초청 강연, 인문학 특강, 문화기행 등 서점에서 여는 행사에 참여할 수 있는 우선권을 드립니다. 정가제를 이해해준 시민의 사랑을 문화행사로 돌려드리는 거죠. 약속과 신뢰가 지금의 진주문고를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진주문고는 한달에 한번 ‘책과 예술의 만남’, 두달에 한번 ‘저자와의 만남’, 한해 두 차례 인문학특강을 연다. 분기별로 여는 문화기행은 유홍준의 문화유산답사보다 앞서서 시작됐다. 이런 행사를 끌어안기 위해 지난해에는 건물 5층에 옥상정원도 만들었다. 형편상 접었던 북카페도 다시 열 계획이다.

“진주 혁신도시의 대형쇼핑몰에 서울의 대형서점이 들어온다고 합니다. 애초 우리가 들어가려다 접었어요. 건물주의 갑질을 견디기 힘들 거라고들 해서요. 대자본의 눈치를 보느니 차라리 제3매장을 내려고 합니다. 지역서점 30년 콘텐츠로 맞짱 뜨려고요. 잘 될 거라고 봅니다.”

임종업 선임기자 blitz@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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