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식-4 이상
너는누구냐그러나문밖에와서문을두드리며문을열라고외치니나를찾는일심이아니고또내가너를도무지모른다고한들나는차마그대로내어버려둘수는없어서문을열어주려하나문은안으로만고리가걸린것이아니라밖으로도너는모르게잠겨있으니안에서만열어주면무엇을하느냐너는누구기에구태여닫힌문앞에탄생하였느냐
한가로운 오후 어느 날 누군가 문을 두드린다. 누구세요? 다가가 무심히 물었으나 아무 대답 없이 문만 두드린다. 집에는 마침 혼자 있는 터라 집안에서 여보세요, 하는 나의 목소리는 더욱 크게 들린다. 집안 카메라를 통해 문 밖에 누가 있는가를 살펴봤지만 아무도 있지 않았다. 그런데도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니 이젠 궁금함을 넘어 두려움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더 이상 아무 소리가 들리진 않았지만 바로 현관문에 붙어 열지도 못하고 다시 거실로 들어오지도 못하는 기이한 경험을 하였다. 누구에게 이 사실을 말하기도 이상하고 아무렇지 않은 척 나의 일상으로 돌아오기도 뭐한…. 그런 일을 겪고 우연히 접한 이상의 ‘정식-4’.
느닷없이 너는 누구냐, 라고 묻는다.
소리 내어 너는 누구냐를 묻고 가만히 생각한다. 나는 누구인가.
회전문처럼 돌고 돌 뿐 아무런 대답 없이 부메랑처럼 끊임없이 질문이 가슴을 두드린다. 가슴이 먹먹할 뿐 도대체 나는 누구인지 생각이 나질 않는다.
나는 예지원…. 나는 배우…. 배우라고 말하는 예지원인 나는 누구인지. 답답하고 멍하다.
나는 시인 이상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그와 같은 시대에 살지 않았다. 무엇보다 시에 대한 지식이나 소견이 부족하다. 이 시를 감상하고 표현하는 것이 매우 조심스럽다. 다만 느낌을 표현할 뿐이다. 이야기를 재미있게 다른 사람에게 보이고 알려주는 직업을 갖고 있는 나는 관객, 시청자, 관계자나 주변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판단하며 따라서 나의 연기가 그들에게 만족을 주고 있는지…. 그게 더 중요한 사람이었다. 그렇게 바쁘게 하루를 살고 나이를 먹어가며 정녕 나는 내가 누구인지 진심으로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사실에 부끄럽게도 놀랐다.
이상의 시를 읽으며 홍상수 감독의 영화 <생활의 발견>(2002년)이 떠올랐다. 영화의 영어 제목은 ‘회전문을 기억할 때’(On the Occasion Of Remembering The Turning Gate). 영화 속에서 사람들은 나를 모르면서 남을 지적하고, 내가 우유부단한지 모르면서 네가 주저한다고 말한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홍상수 감독, 2008년) 타인의 모습이 다시 내가 되어 회전문처럼 돌고 도는 <생활의 발견>에서, 명숙을 연기한 나는 모텔 앞에서 말한다. “우리 거짓말하지 말아요.”
나는 왜 여기에 있는가. 나는 왜 이 일을 하는가. 나는 지금 이 사람과 왜 밥을 먹고 오래도록 이야기하는가. 요즘 자꾸 묻는다. 배우라는 직업은 현장에서 여러 사람과 소통하는 일이다. 한 팀과 오래 일하면 좋겠지만 매번 바뀌기 때문에 그 안에서 자신을 잃기 쉽다.
나는 무얼 연기하는가? 나는 누군가의 전달자이다. 질문은 작품에서도 솟는다. 2014년부터 이어오고 있는 연극 <홍도>의 고선웅 연출가는 배우와 스태프들에게 어렵지 않은 질문으로, 늘 묻는다. 한번은 고 선생님이 우리에게 이런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연극이 무엇인가?” “연극은 매일 짓는 집이다. 매일 짓고 허물어지는 집이다. 오늘 묵을 손님과 내일 묵을 손님이 달라지는 집, 그래서 매일 최선을 다해 집중해야 하는 집.” 연극이 무엇인지 선생님도 가끔 질문을 받는다. 그리고 이렇게 답했노라고 문자를 보낸 것이다.
내가 누군지 답하기 쉽지 않은데 우리는 늘 남을 판단한다. 배우로 살다 보면 ‘사람으로서’ 위험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처음 배우 생활을 시작할 때는 사람을 사귀기에 바쁘지만, 경험이 쌓이면서 교만이 들어오면 함부로 타인을 평가하게 된다. 내 식대로 평가하고 빨리 결론내버린다. 한 사람을 평가할 때 내가 겪어온 것 외에는 판단하지 말자, 단시간에 판단하지 말자, 요즘 매일 되새기려 한다. 인간은 나약하고 모자라는 존재 아닌가. 너는 누구냐 묻고 문 밖에서 문을 두드리며 문을 열라고 외치고 내가 나를, 내가 너를 도무지 모른다고 말하는 존재들 아닌가.
배우 예지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