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형 기자
현장에서
지난 20일 유네스코 총회에서 압도적 지지로 채택된 ‘문화적 표현의 다양성 보호와 증진을 위한 협약’(문화다양성협약)은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일방통행이 더는 용인될 수 없음을 극명하게 보여준 사건이다.
미국 대 비미국의 대결로 진행된 이 협약의 논의를 주도한 나라로 프랑스와 캐나다, 한국을 빼놓을 수 없다. 한국의 예술시민단체들은 이 협약 채택에 대한 여론 조성에 발벗고 나서온 국제문화전문가단체회의(CCD)와 세계문화엔지오총회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왔으며, 한국의 스크린쿼터 사수투쟁은 문화다양성을 지키기 위한 모범사례로 언급되면서 세계의 주목과 찬사를 받아왔다. 한-미 통상협정의 ‘눈엣가시’였던 스크린쿼터제가 협약 채택에 견인차 구실을 했다고 봐도 과언은 아닌 셈이다.
이 협약의 채택에 유보적인 태도를 취해왔던 한국 정부가 찬성표를 던진 건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한국은 뉴질랜드, 멕시코, 일본과 함께 투표 결과에 대한 ‘비판적 지지’와 같은 성명서를 발표했다. 특히 미국이 끈질기게 물고 늘어졌던 20조에 대해서는 ‘이 협약이 다른 국제협정의 권리와 의무에 영향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미국의 주장 지지를 재차 확인했다. 외교통상부가 내놓은 협약 채택 관련 보도자료에는 간단한 경과보고보다 더 많은 분량을 할애해 미국의 주장을 전하고 있다.
미국이 홀로 서 있다면 그 반대편에 아무 단서를 붙이지 않고 미국의 일방주의에 반기를 든 144개 나라가 있다. 여기에는 영국 등 ‘미국 편’임을 의심치 않았던 나라들도 상당수 끼어 있다. 이 든든한 지원군을 뒤로한 채 미국의 표정만을 살피고 있는 듯한 한국 정부가 앞으로 미국과의 통상협상에서 문화다양성협약이라는 막강한 카드를 어떻게 활용할지 걱정스럽다.
김은형 기자 dmsgu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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