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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아리아리, 쓰리쓰리 -아리랑 해석 시도

등록 2016-05-20 21:40수정 2016-05-22 10:28

성기완의 노랫말 얄라셩
아리랑 작사·작곡 미상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
나를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

2009년, 나는 몽골 울란바토르에서 출발하여 러시아 바이칼 호로 가는 여행을 한 적이 있다. 열차를 타고 북쪽으로 밤새 달려 다음날 낮에 국경에 다다랐다. 몽-러 국경 검문소를 통과하는 데 여섯 시간이나 걸렸다. 몽골 요원이 걷어간 여권을 우람한 시베리아 흑곰을 연상시키는 정복 차림의 러시아 요원이 돌려줬다. 일행은 러시아 울란우데에서 기차를 내려 5시간을 버스로 달린 끝에 바이칼 호에 도착했다. 거기서 다시 배를 타고 바이칼의 심장으로 일컬어지는 ‘알혼 섬’에 들어갔다.

시베리아에서 가장 성스럽고 신비로운 섬이라는 이곳을 방문했을 때 나는 소스라치게 놀랐다. 직감적으로 이 머나먼 섬이 나의 고향이라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종류의 기시감은 처음이었다. 드넓은 바이칼 호는 자신이 원래 바다였음을 알려주기 위해 검푸르게 빛났다. 그 물빛깔이 동해와 같았다. 또한 그 위에 떠 있는 신령스러운 알혼 섬의 해변 풍경은 해송들이 정답게 늘어서 있는 강릉 바닷가 풍경과 너무도 비슷했다. 이 땅에 와락 안기고 싶어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거기 사는 부랴트 사람들도 놀랍게 친근했다. 아주머니들이 다 고모, 이모 같아 보이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어제 떠난 옆 동네에 놀러 온 기분이었다.

‘알혼’은 ‘드물다, 메마르다’의 뜻이라고 한다. 그러니까 알혼 섬은 ‘인적이 드문 섬, 메마른 섬’쯤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그러나 알혼은 ‘아리’ 또는 ‘아르~’, ‘알’, ‘아라~’ 등 모음 ‘아’와 리을을 덧붙여 발음하는 낱말들과 어원적으로는 한 묶음이라는 것이다. 사실 ‘아리’라고 말하는 것은 멀리 바이칼 호에서 남하하여 몽골 초원을 거쳐 백두대간에 이르는 드넓은 지역에 퍼져 살아온 동북아 기마민족의 언어생활에서 매우 유서 깊은 일이다. 그 흔적은 여러 문헌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광개토대왕비에 한강을 ‘아리수’(阿利水)라고 적은 것이다. ‘아리’는 ‘크다는 뜻의 옛 우리말’이라고 사전에도 나와 있다. 이런 걸 보면 한강은 큰 물이다. 몽골어의 ‘아리’는 ‘깨끗하고 성스러운’이라는 뜻이라 한다. 옛 문헌에 몽골 고원에서 발원하는 흑룡강(아무르 강)도 아리수라 했고 압록강도 아리수라 적었다고 한다. 성스럽고 큰 물에는 다 ‘아리’라는 말이 붙는 걸 알 수 있다.

또한 ‘아리’는 생기다, 존재하다의 뜻이 되기도 한다. ‘알’이라는 이름씨 낱말을 보면 자명해진다. 일본말의 ‘아리’(あり)도 우리말의 ‘알’과 같은 어원이라 볼 수 있다. 존재의 가능태, 씨앗이 ‘알’ 아닌가. 일본어 사전에 보면 ‘아리’는 ‘존재, 가능, 있다, 살다’의 뜻이다. 동북아시아에서 ‘아리’는 고대로부터 ‘기원’이라는 뜻으로 쓰인 것이다. 기원이 되는 큰 존재를 가리킨다면, 아리는 생명의 원천이 되는 대자연일 수도, 신일 수도 있다. ‘아리수’는 큰 강도 되지만 ‘생명의 원천인 성스러운 물’, ‘신이 내린 물’이라는 뜻이 된다.

이처럼 ‘아리’는 크고 성스럽고 순결한 기원을 뜻하지만 거기에 더해 ‘아리땁다’는 낱말에서 알 수 있듯 아름답다는 뜻과도 불가분의 관계다. 이 활용은 ‘아리’라는 어원에서 나온 파생적 쓰임일 것이다. ‘아름다움’은 본질적인 것의 현현, 다시 말해 근원적 있음의 존재 양태, 그림자라 할 수 있다. 우리 민족의 ‘미의 기준’이 어디에 있는지 어원적으로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그냥 예쁜 것이 아니라 성스럽고 깨끗하고 큰 것, 다시 말해 어떤 기원이 되는 혼령 내지는 신적인 존재로부터 유래한 됨됨이가 아름다움이라는 생각이다. 사실 아름다움에 대한 이러한 플라톤적 태도는 고대인 모두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던 것이다. ‘아리’에서 나온 신성한 빛줄기, 다시 말해 ‘아리의 아이’가 아름다움인 것이다. 이 ‘아름다움’은 아무 데나 함부로 갖다 붙이는 말이 절대 아니다. 아름다운 것은 귀한 것, 드문 것이다. 알혼 섬의 ‘알혼’이 이 대목에서 다시 통한다. 알혼 섬은 인적이 드문 섬일 수도 있고 귀한 섬, 흔치 않은 섬일 수도 있다.

‘아리’는 또한 ‘아프다’는 말과도 이어진다. 태양을 맨눈으로 보면 눈이 멀고, 불 속에 들어가면 살이 타고, 물 깊은 곳에 잠기면 숨이 막히고 흙 속에 들어가면 썩는다. 큰 존재에서 비롯되는 에너지와 닿으면 우리의 여린 몸은 위독해진다. ‘혀가 아리다’고 하는 데서 알 수 있듯 아린 것은 매우 구체적인 살의 통증을 뜻한다. 눈이 ‘아리다’고 하면 눈이 부시다는 말이 되기도 한다. ‘으리으리하다’는 말이 어디서 나왔는지 짐작할 수 있다. ‘아리다’는 아프다는 뜻과 눈이 부시도록 휘황찬란하다는 뜻을 함께 품고 있다. 그래서 아리의 체험은 범인이 함부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사제와 무당의 중계를 거쳐야 한다. 아프다는 뜻의 ‘아리다’는 그 짝이 되는 낱말로 ‘쓰리다’를 데리고 있다. 아리다와 쓰리다는 한 쌍이다. 아리아리 쓰리쓰리. 쓰리다는 ‘스리다’에서 나왔다. 사전을 보면 ‘스리’는 ‘음식을 먹다가 볼을 깨물어 생긴 상처’라는 뜻이다. 아주 구체적이고 예쁜 말이다.

성기완 시인·밴드 3호선버터플라이 멤버·계원예술대학교 융합예술과 교수
성기완 시인·밴드 3호선버터플라이 멤버·계원예술대학교 융합예술과 교수
마지막으로 아리는 ‘어떤 사실이나 존재, 상태에 대해 의식이나 감각으로 깨닫거나 느낀다’는 뜻인 ‘알다’와도 통한다. 알다에서 ‘아리송하다’는 말이 나왔을 것이다. 알겠는데, 딱 집어서 말하지는 못하겠다는 뜻 아닌가. 조금 확대 해석하면 기원을 알 수 없다는 뜻과 통한다고 볼 수 있다. 진정한 앎의 세계, 기원에 대한 깨달음인 ‘아리’는 신화로만 존재한다. 자궁 속의 시간을 기억하는 이는 없다. 아리의 공간은 마치 바이칼 호의 알혼 섬을 감싸고 있는 안개처럼 뿌연 베일에 가려져 있어서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분명 우리는 양수 속에 있던 그 시간을 겪었으므로 모르는 것도 아니다. 아리송할 뿐이다. ‘아리’의 뜻을 전해주는 사람이 샤먼이다. 알혼 섬은 샤먼의 천국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에너지가 강한 바위, 칭기즈칸이 묻혀 있다는 전설을 품고 있는 알 속의 알, 부르한 바위에는 매년 5월 그 기를 받기 위해 온 천지에서 샤먼들이 몰려든다. (계속)

성기완 시인·밴드 3호선버터플라이 멤버·계원예술대학교 융합예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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