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오후 3시 청계천 청계광장에서 마임이스트 김정한(38) 공주영상대학 교수(연극영화과)가 ‘석고 마임’을 공연하고 있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100℃르포] 70cm 장대 신고 뒤뚱뒤뚱 “꾸러기들아, 똥침은 놓지마”
가을 햇살이 파랗게 나부끼던 지난 22일 토요일. 갑자기 싸늘해진 날씨에 아랑곳없이 청계천에는 인파가 가득 흘렀다. #웃음 주는 석고 마임 마임이스트 김정한 교수(38·공주영상대학 연예연기과)는 오후 2시 청계광장 뒷골목에 차를 세우고 공연 준비를 시작했다. ‘1기 청계천 거리 예술가’로 선발된 김 교수는 매주 토요일마다 이곳 청계광장에서 제자 박석현(21)씨와 함께 석고 마임을 하고 있다. “분장부터 할까?” 돈이 안 되는 일이라서 그런지, 제자는 말이 없다. 박씨는 2학년 과대표다. 졸업작품을 준비하기도 바쁜 때다. 트렁크를 열자 공연에 쓸 소품과 분장도구들이 잔뜩 쏟아졌다. 오늘 김씨의 공연 컨셉은 키다리 석고상. 흰색 파운데이션을 물에 개어 얼굴에 발랐다. 한 번 발랐다가 마르기를 기다려, 입술과 머리, 목 뒤까지 한번 더 꼼꼼히 발랐다. “아유, 손 시려.” 대형 빌딩들 사이로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한 번 더 발라야 하는데 손 시려워서 못 바르겠어요.” 흰색 재킷에 하얀 비닐 바지를 입고 70㎝짜리 장대를 신은 김 교수는 어느새 2m40㎝짜리 거인이 됐다. 뒤뚱뒤뚱 걸어다니는 모습이 우스꽝스럽다. “원래는 얘가 이걸 신어야 하는데, 발을 다치는 바람에 제가 대신 하게 됐어요.” 제자는 금칠한 마네킹을 연출하고 있다. 녹색과 금색 스프레이를 섞어 뿌린 바바리를 입고, 금색으로 얼굴을 칠했다. 다친 발은 깁스를 하고 헝겊주머니를 신었다. 소품으로 미니 자전거도 준비했다.
지난 22일 오후 5시 청계천 광통교. 뇌성마비 1급 장애인 강성국(25)씨가 직접 기획한 퍼포먼스 <검은 피>를 공연하고 있다.
“야, 키다리 아저씨 좀 봐.” 분장을 마치고 청계천으로 나아가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일제히 눈길이 쏠렸다. 자리를 잡고 정지 동작으로 서 있는 두 사람을 구경꾼들이 순식간에 둘러쌌다. 카메라 셔터가 터졌다. ‘똥침’을 놓으며 즐거워하는 못된 아이들도 있다. 김 교수가 청계천 거리아티스트에 지원한 이유는 마임의 저변을 넓히기 위해서다. “마임 공연을 돈내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잖아요. 제가 이렇게 터를 닦아놓으면, 제자들이 졸업할 때는 공연하기 훨씬 좋은 여건이 돼 있을 겁니다.” #생각 거리 던진 장애인 퍼포먼스 오후 5시 광통교 위. 팬티 바람의 강성국(25)씨가 온 몸에 흰색 분칠을 하고 나타났다. 뇌성마비 1급 장애인인 강씨의 뒤틀린 손과 발은 날것의 연기가 됐다. 한국전쟁 당시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강씨가 직접 기획한 퍼포먼스 <검은 피>. 동료 회원인 전영아(38)씨가 물감으로 만든 ‘검은 피’를 강씨의 벗은 몸 위로 쏟아부었다. “으으으아!” 강씨가 비명을 질렀다. 퍼포먼스의 하이라이트였다. 처음엔 호기심으로 지켜보던 사람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눈물을 보이는 이도 있다.
청계천 달구는 거리예술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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