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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청계천 달구는 거리예술가들

등록 2005-10-26 17:10수정 2005-10-27 15:51

지난 22일 오후 3시 청계천 청계광장에서 마임이스트 김정한(38) 공주영상대학 교수(연극영화과)가 ‘석고 마임’을 공연하고 있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지난 22일 오후 3시 청계천 청계광장에서 마임이스트 김정한(38) 공주영상대학 교수(연극영화과)가 ‘석고 마임’을 공연하고 있다. 김진수 기자 jsk@hani.co.kr
[100℃르포] 70cm 장대 신고 뒤뚱뒤뚱 “꾸러기들아, 똥침은 놓지마”

가을 햇살이 파랗게 나부끼던 지난 22일 토요일. 갑자기 싸늘해진 날씨에 아랑곳없이 청계천에는 인파가 가득 흘렀다.

#웃음 주는 석고 마임

마임이스트 김정한 교수(38·공주영상대학 연예연기과)는 오후 2시 청계광장 뒷골목에 차를 세우고 공연 준비를 시작했다. ‘1기 청계천 거리 예술가’로 선발된 김 교수는 매주 토요일마다 이곳 청계광장에서 제자 박석현(21)씨와 함께 석고 마임을 하고 있다.

“분장부터 할까?”

돈이 안 되는 일이라서 그런지, 제자는 말이 없다. 박씨는 2학년 과대표다. 졸업작품을 준비하기도 바쁜 때다. 트렁크를 열자 공연에 쓸 소품과 분장도구들이 잔뜩 쏟아졌다. 오늘 김씨의 공연 컨셉은 키다리 석고상. 흰색 파운데이션을 물에 개어 얼굴에 발랐다. 한 번 발랐다가 마르기를 기다려, 입술과 머리, 목 뒤까지 한번 더 꼼꼼히 발랐다.

“아유, 손 시려.” 대형 빌딩들 사이로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한 번 더 발라야 하는데 손 시려워서 못 바르겠어요.” 흰색 재킷에 하얀 비닐 바지를 입고 70㎝짜리 장대를 신은 김 교수는 어느새 2m40㎝짜리 거인이 됐다. 뒤뚱뒤뚱 걸어다니는 모습이 우스꽝스럽다.

“원래는 얘가 이걸 신어야 하는데, 발을 다치는 바람에 제가 대신 하게 됐어요.” 제자는 금칠한 마네킹을 연출하고 있다. 녹색과 금색 스프레이를 섞어 뿌린 바바리를 입고, 금색으로 얼굴을 칠했다. 다친 발은 깁스를 하고 헝겊주머니를 신었다. 소품으로 미니 자전거도 준비했다.


지난 22일 오후 5시 청계천 광통교. 뇌성마비 1급 장애인 강성국(25)씨가 직접 기획한 퍼포먼스 <검은 피>를 공연하고 있다.
지난 22일 오후 5시 청계천 광통교. 뇌성마비 1급 장애인 강성국(25)씨가 직접 기획한 퍼포먼스 <검은 피>를 공연하고 있다.


“야, 키다리 아저씨 좀 봐.” 분장을 마치고 청계천으로 나아가자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일제히 눈길이 쏠렸다. 자리를 잡고 정지 동작으로 서 있는 두 사람을 구경꾼들이 순식간에 둘러쌌다. 카메라 셔터가 터졌다. ‘똥침’을 놓으며 즐거워하는 못된 아이들도 있다.

김 교수가 청계천 거리아티스트에 지원한 이유는 마임의 저변을 넓히기 위해서다. “마임 공연을 돈내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잖아요. 제가 이렇게 터를 닦아놓으면, 제자들이 졸업할 때는 공연하기 훨씬 좋은 여건이 돼 있을 겁니다.”

#생각 거리 던진 장애인 퍼포먼스

오후 5시 광통교 위. 팬티 바람의 강성국(25)씨가 온 몸에 흰색 분칠을 하고 나타났다. 뇌성마비 1급 장애인인 강씨의 뒤틀린 손과 발은 날것의 연기가 됐다. 한국전쟁 당시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강씨가 직접 기획한 퍼포먼스 <검은 피>. 동료 회원인 전영아(38)씨가 물감으로 만든 ‘검은 피’를 강씨의 벗은 몸 위로 쏟아부었다. “으으으아!” 강씨가 비명을 질렀다. 퍼포먼스의 하이라이트였다. 처음엔 호기심으로 지켜보던 사람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눈물을 보이는 이도 있다.

청계천 달구는 거리예술가들
청계천 달구는 거리예술가들
강씨는 3년 전부터 공연예술치료연구회에서 퍼포먼스를 해왔다. 이 단체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퍼포먼스를 함께 하며 심신을 고치는 ‘예술치료 단체’다.

공연이 끝나자 강씨는 덜덜 떨며 밭은 기침을 했다. 옷을 벗은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객~기에요.”라고, 강씨는 쉽게 알아들을 수 없는 언어로 농담을 했다. 이어 덧붙였다. “이유가 있어요. 한번도 얘기 안 한 건데, 허물을 벗어버린다는 의미에요. 깨끗한 순수를 의미하죠.”

강씨가 청계천 거리예술가에 응모한 이유는 뭘까? “돈도 안되는 일에 왜 옷을 벗고 이러는 줄 아세요? 장애인도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에요. 오늘 주제도 일부러 무거운 걸 택했어요. 가벼운 주제로 하면 작품을 보는 게 아니라, ‘장애인’인 저를 보게 될까봐요.”

강씨는 지난 5월 이후 전문 행위예술가가 되겠다고 마음먹었다. 공연을 하면서 자신의 장애가 걸림돌이 아니라, 오히려 “최대의 무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제 장애인이 불쌍하고 힘들게 살아가는 모습은 그만 보여줄 때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내 퍼포먼스의 질주는 계속 이어질 겁니다. 장애인이기 때문이 아니라 진정한 예술가로 인정받고 싶어요.”

#에필로그 “추워요” 덜덜

청계천에는 10월부터 이들 말고도 31개팀의 거리 예술가들이 활동 중이다. 지난 9월 55개팀이 신청해 36개팀이 뽑혔는데, 이런저런 사정으로 5개팀이 중도탈락했다. 기타 하나 들고 사람들을 울리고 웃기는 대학로의 재담꾼 윤효상씨, 1년 동안 세계를 돌아다니며 사물놀이 공연을 했던 ‘공새미 가족’ 등 쟁쟁한 스타들도 포함돼 있다. 한달에 한번 공연하는 팀도 있고, 일주일에 한번 하는 팀도 있다. 날이 추워지는데 옷 갈아입을 곳이 없어 길거리에서 몸을 떠는 버스커(거리의 악사나 배우)들이 안타까웠다. 주최쪽인 서울시문화재단의 세심한 배려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재성 기자 s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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