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작 논란'에 휩싸인 이우환 화백이 30일 오후 서울 중구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입장을 말하고 있다. 연합뉴스
도대체 진실은 무엇일까? 한국 현대미술거장 이우환(80) 작가의 위작 논란이 갈수록 안갯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이 작가는 29일 감정소견 발표에 이어 30일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 마련된 기자간담회에서도 경찰이 위작판정한 압수작품 13점이 “모두 틀림없는 내 그림”이라는 견해를 다시금 밝혔다. 그러나 그는 경찰과 전문가들의 안목·과학감정 결과를 뒤엎은 자신의 판정에 대해 주관적 안목과 과거 정황 외엔 객관적 근거를 설득력있게 내놓지는 못했다. 더욱이 경찰은 바로 이날 직접 위조에 참여한 화가 이아무개(39)씨를 체포하고 위조품 유통 총책인 또다른 이아무개(68)씨의 사전구속영장을 신청하기로 하는 등 위작수사에 속도를 내고있어, 이 작가와 경찰 사이 진위 공방이 더욱 치열해질 조짐이다.
가장 큰 의문거리는 압수된 13점중 4점의 제작 경위다. 구속된 화상 현아무개씨 등 위조범들은 이 작품들을 자신들이 위조했다고 진술했으나 작가는 모두 자신의 진작이라고 단언했다. 간담회에서도 그는 "직접 위조범들을 데려와 내 앞에서 그려보라고 하라. 대질심문에도 응할 수 있다”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내 작품에서 호흡이나 리듬은 지문과 같다. 베낄 수 없다. 작가는 보면 1분도 안 돼서 자기 것인지 아닌지 느낌이 온다”는 설명이었다. 작가는 “과연 그 사람(위조범 현씨)이 위조했다는 그림이 13점 중에 확실히 포함되어 있는 것인지 저로서는 믿을 수 없다”고 했다.
경찰의 과학적 분석결과도 재차 부인했다. 위조범들이 캔버스 뒤쪽에 오래된 흔적을 남기기위해 일부러 덧칠하고, 못도 오래된 것처럼 소금물에 담궈 쓰는 등 인위적 조작을 가한 흔적을 찾아냈다는 경찰 발표내용에 대해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그는 “여러 물감안료를 써서 일본말로 ‘아사이군조’라고 하는 군청색 등 특유의 색감을 내는 나만의 방법이 있다”며 상황마다 다르게 물감안료나 한국산, 일본산 캔버스를 썼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다고 했다. 그는 또 “경찰이 보여준 위조범의 위조시연 영상과 시연품에는 물감을 한 가지만 쓴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압수된 13점은 내가 그간 작업했던 대로 여러 물감들을 섞어 그린 것들이었다”는 주장을 펴 경찰의 시각과 큰 차이를 보였다.
회견장의 기자들은 작품의 기준작이나 작가 확인서 등 여러 쟁점들에 대한 질문을 쏟아냈다. 이 작가는 진위 판별의 기준작이 있느냐는 물음에 "기준작이 뭔지는 나도 모른다"고 했고, 위조범이 그렸다고 진술한 작품 1점에 붙은 작가확인서를 직접 써줬느냐고 묻자 “화랑에서 실물을 보고 써준 것이 맞다”고 잘라말했다. 특히, 압수된 그림들 가운데 지난 연말 가짜 진품감정서가 붙은 채 케이(K)옥션 경매에 출품된 것으로 드러난 78년작(‘점으로부터 No. 780217’)에 대해서는 색다른 해명을 꺼냈다. 화폭 앞부분은 손질이 많이 됐고, 화폭 뒤의 서명도 자신의 것이 아닌 것으로 확인했지만, 필치를 보니 그림 자체는 분명히 자신이 그린 진품이라는 것이었다. “가짜 감정서가 붙었는지 안붙었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했다.
최근 일련번호가 같은 작품들이 여럿 드러났다는 지적에는 "참, 부끄러운 일”이라며 수긍하기도 했다. “(젊은 시절에) 팔리는지 안팔리는지 모르고 열심히 그려대던 것들이다. 그런 것(번호)을 붙여놔야 나중에 정리하기 좋다고 해서 화랑이 써서 붙이기도 했다. 당시 정확히 해야겠다는 발상이 없어서 번호도 서명도 나중에 한 것이 있고, 번호가 두번세번 겹친게 꽤 있다”고 털어놨다. 압수된 작품들의 전시, 소장 이력을 잘 아느냐는 질문에는 “확실히 모른다”는 답이 돌아왔다. “70년대 가난하고 힘들 때 일본과 한국에서 주로 다작하면서 그린 것들이다. 당시 화랑에 작품을 주면 대개는 돌아오지 않았고, 전람회 도록에 실리지 않은 작품들도 많다. 언제 어디서 전시되고 거래됐는지 확실한 정보는 알 수 없다”는 해명이었다.
이 작가는 지난 27, 29일 경찰에 잇따라 출석해 작품을 감정했을 때의 상황도 전했다. 처음 출석한 27일 작품을 보고 바로 자신의 진작임을 알았으나, 29일에야 이를 밝힌 건 혹시 모를 가능성을 생각해 한번 더 보고 검토한 결과라고 했다. 작가는 특히 29일 경찰 간부가 자신과 독대하면서 위조범이 그렸다는 4점은 가짜로 정하고, 나머지는 그냥 (진품으로)넘어가는게 어떠냐는 회유성 제안을 했다는 주장도 내놔 또다른 논란거리를 던졌다. 경찰은 그의 발언이 전해진 직후 “소신대로 감정해 진실을 이야기해달라고 했을 뿐 그런 말은 꺼내지도 않았다. 작가에게 항의하겠다”고 반박했다.
이 작가는 “지금 국가공권력 앞에서 본의 아니게 맞서게 됐다”면서 회견 내내 경찰에 비판의 날을 세웠다. 경찰이 생존작가의 의견을 무시하고 자격이 불확실한 감정위원들과 국과수(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먼저 감정을 의뢰하고 자신이 확인하기도 전에 그 감정결과를 언론에 발표하는 등 이해하지 못할 행동을 했다면서 ‘함정을 파놓고 연극을 꾸민다’는 등의 발언으로 강한 불신감을 드러냈다.
미술시장 관계자들은 당혹감에 빠졌다. 애초 일부 압수작품에 대해서는 이 작가가 위작임을 인정할 것이라는 예상이 적지않았는데, 경찰의 감정결론을 전면부정하는 뜻밖의 초강수를 택했기 때문이다. 다수의 감정전문가들이 문제가 있다고 공감하는 일부 작품들조차 모두 진짜라고 공표한 상황에서 앞으로 작가의 작품 감정에서 어떤 잣대를 둬야할지 막연하다는 반응들이 나온다. 박우홍 화랑협회 회장은 “전문가들중 누가 보더라도 필치나 재료 등에서 문제가 있다고 여겨지는 작품들까지 전부 진작 판정을 내려 혼란스럽다. 앞으로 점·선 연작 등 70년대 이 작가의 대표작 감정은 사실상 중단될 수밖에 없어 시장에 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