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광고

광고닫기

광고

본문

광고

문화 문화일반

40년 수장고에 묻어놨던 신안선 보화들 이제야 다 꺼냈다

등록 2016-07-28 16:28수정 2016-08-03 20:40

국립중앙박물관의 신안 발굴 40돌 전시 ‘신안 해저선에서 찾아낸 것들’
신안선 내부에서 나온 다양한 토제 인물상들. 앉아서 두 손을 모은 모습이 불교 수행자 나한의 상을 떠올리게 한다.
신안선 내부에서 나온 다양한 토제 인물상들. 앉아서 두 손을 모은 모습이 불교 수행자 나한의 상을 떠올리게 한다.
신안선에서는 중국 송대 건요에서 만든 흑유완들도 나왔다. 일본인들이 ‘천목다완’이라고 부르면서 찻그릇으로 애지중지했던 물건이다.
신안선에서는 중국 송대 건요에서 만든 흑유완들도 나왔다. 일본인들이 ‘천목다완’이라고 부르면서 찻그릇으로 애지중지했던 물건이다.
신안선 출토 유물을 가득 채운 전시장의 진열장들.
신안선 출토 유물을 가득 채운 전시장의 진열장들.
최종 기착지가 일본 교토의 도호쿠사(동북사)로 적힌 신안선 화물의 목간표찰들.
최종 기착지가 일본 교토의 도호쿠사(동북사)로 적힌 신안선 화물의 목간표찰들.

막대한 수량의 출토품 대부분을 진열장에 일일이 꺼낸 전시장.
막대한 수량의 출토품 대부분을 진열장에 일일이 꺼낸 전시장.
1976~84년 전남 신안 바다 속에 가라앉은 700여년전 원나라 교역선(신안선)은 수중발굴 과정에서 2만4천여점이나 되는 도자기, 향료, 고급목재(자단목), 금속공예품, 동전류, 생활유물들을 토해냈다. 중세 동아시아 해상교역의 실상을 사상처음 드러냈던 이 엄청난 규모의 유물들이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 처음 집결했다. 신안선 발견 40돌을 맞아 유물 2만여점을 통째로 꺼내놓은 특별전 ‘신안해저선에서 찾아낸 것들’(9월4일까지) 덕분이다.

신안선 유물들 가운데 90%가까이는 지난 40년간 서울과 지방의 국립박물관 수장고를 떠돌면서 공개가 차단돼왔다. 용천요, 경덕진요 등 중국의 유명가마에서 만든 도자명품과 생활유물 등 소수 1000여점 외엔 국내외 연구자들이 볼 기회가 거의 주어지지 않았다. 국내 학계의 관련논문은 20편도 채 안되며, 분야별 보고서도 여지껏 나오지 않은 실정이다. 유물 대부분이 이렇게 오랫동안 제대로 연구도 되지않고 수장고에 처박혀 있어야했던 이유가 뭘까.

신안선 수중발굴의 성과에 고무된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쏟아진 유물들을 보관, 전시할 전용관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그것이 1978년 건립된 국립광주박물관이다. 하지만 전용관은 진척되지 않았다. 유물들이 함축한 중세 동아시아의 정치, 경제, 문화 등에 얽힌 역사를 집중분석하고 다른 나라 학계와 공동연구할 역량을 지닌 교류사 전문가들이 당시엔 없었다. 광주박물관 유물 인계는 자꾸 미뤄졌고, 80년대 전남권에서 백제, 마한 유물이 속속 발굴되면서 광주박물관은 백제·마한 중심관으로 정체성이 바뀌었다. 게다가 94년 문화재청이 최종인양한 신안선의 복원 전시를 위해 목포에 전시관(현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을 만들면서 인양유물들은 공식적으로 여럿의 국립박물관과 문화재청 산하기관에 뿔뿔이 나뉘어 소장되는 기형적 체계를 피할 수 없게 됐다. 그렇다고 절대다수의 유물을 소중한 박물관 쪽이 신안선 유물에 대한 전문연구인력 양성에 그간 각별한 공을 들였다고 볼 수도 없다. 열악한 학계 실정과 먼 훗날을 내다보지 못한 단견 탓에 유물 대부분은 수장고에서 억지 잠을 자야했던 셈이다. 그래서 이번 특별전 이면에는 과거의 파행에 대한 박물관 사람들의 자괴심과 유물 관리·연구의 부진함에 대한 자성, 이제라도 국내외 학계에 유물을 제대로 공개하겠다는 약속의 의미 등이 깔려있다고 할 수 있다.

특별전 전시장 중심부에는 접시, 대접, 사발 등 선적됐던 도자기들과 동전·자단목 더미 등의 거대한 진열장들이 여기저기 들어차있다. 이 선적물들은 해상실크로드로 불리는 당대 동아시아 해상교역로가 얼마나 역동적이고 엄청난 물동량을 지닌 대동맥이었는지를 실증한다. 원 나라는 13세기 고려와 협공해 일본을 치려다 실패했지만, 일본과 중국 사이 300km 넘는 해역에는 11세기 북송시대 이래로 세계 굴지의 원양항로(남로)가 개설되어 있었다. 북송·남송시대 일본은 이 바닷길로 중국과 직교역을 벌였다. 고려와 원 사이의 교역량을 훨씬 압도하는 수준이었다고 한다. 닝보, 취안저우 등 중국 교역항과 일본 하카타 항 사이에 차와 동전, 도자기, 가구, 향신료, 서책, 불교경전 등이 쉴 새 없이 배에 실려 오갔다. 훗날 일본문화의 특징이 된 선불교 예술과 다도문화가 이 남로를 통해 전해졌다. 일본의 승려와 귀족, 무사들은 남송 사대부 귀족문화의 흐름에 크게 매혹되어 앞다퉈 중국 상인에게 도자기와 향로, 향, 꽃병 등의 구입을 부탁했다. 전시장 도입부에 배 안에서 나온 고대 중국 복고풍의 제기들과 차, 향, 꽂에 관련된 기물들을 소개하면서 당시 일본의 차, 향, 꽃 감상문화에 얽힌 기록, 그림들을 같이 비교해 선보인 건 이런 맥락을 더듬어보려는 의도일 것이다.

유물, 선체의 또다른 소장처인 목포 국립해양문화재연구소는 10월 따로 기념전을 연다. 박물관과 연구소가 수년 전부터 40돌 전시 협력에 대한 논의를 계속해왔다는 점을 감안하면, 비슷한 시기 함께 전시해 주목도를 높이는 것이 훨씬 낫지 않았을까. 중국, 일본 등 신안선 관련 국가 연구기관 등과의 공동행사, 학술 프로젝트를 장기간 준비할 여유는 없었던 것일까. 신안선 전시는 청자의 시대였던 12~14세기 동아시아의 정치·경제·문화의 역사적 흐름과 연구성과를 집약할 수 있는 호기였다. 불과 석달 전 전시장소가 넓은 기획전시실로 전격 변경되면서, 덩어리감 있는 수장고 유물들을 급한대로 모아 보여주기에 치중한 듯한 인상을남기는 것도 아쉽게 느껴진다. (02)2077-9000. 글·사진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항상 시민과 함께하겠습니다.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언론 자유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한겨레 저널리즘을 후원해주세요

광고

광고

광고

문화 많이 보는 기사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1.

‘의인 김재규’ 옆에 섰던 인권변호사의 회고록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2.

‘너의 유토피아’ 정보라 작가의 ‘투쟁’을 질투하다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3.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억대 선인세 영·미에 수출…“이례적”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4.

노래로 확장한 ‘원영적 사고’…아이브의 거침없는 1위 질주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5.

9년 만에 연극 무대 선 김강우 “2시간 하프마라톤 뛰는 느낌”

한겨레와 친구하기

1/ 2/ 3


서비스 전체보기

전체
정치
사회
전국
경제
국제
문화
스포츠
미래과학
애니멀피플
기후변화&
휴심정
오피니언
만화 | ESC | 한겨레S | 연재 | 이슈 | 함께하는교육 | HERI 이슈 | 서울&
포토
한겨레TV
뉴스서비스
매거진

맨위로
뉴스레터, 올해 가장 잘한 일 구독신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