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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산만할 것, 필요하다면 아주 자주 산만할 것

등록 2016-08-19 19:13수정 2016-08-20 17:47

[토요판] 이 주의 시인, 김민정
입추에 여지없다 할 세네갈産

구운 갈치를 보면 일단 우리 갈치 같지
그런데 제주 아니고는 대부분이 세네갈産
갈치는 낚는 거라지 은빛 비늘에 상처나면
사가지를 않는다지 그보다는 잡히지를 않는다지
갈치가 즐기는 물 온도가 18도라니 우아하기도 하지
즐기는 물 온도를 알기도 하고 팔자 한번 갑인고로
갈치의 원산지를 검은 매직으로 새내갈,
새대가리로 읽게 만든 생선구이집도 두엇 가봤단 말이지
세네갈,
축구 말고 아는 거라곤
시인 레오폴 세다르 상고르가 초대 대통령을 역임했다는
세네갈,
그러니 이명박 대통령도 시 좀 읽으세요 했다가
텔레비전 책 프로그램에서 통편집도 당하게 만들었던
세네갈,
수도는 다카르
국가는 ‘모든 국민이 그대의 코라와 발라폰을 친다네’
코라와 발라폰을 치며 놀라고 대통령이 권하는
놀라운 나라라니
세네갈,
녹색 심장의 섬유여
형제들이여, 어깨에서 어깨로 모여라
세네갈인들이여 일어나라
바다와 봄에, 스텝과 숲에 들어가라*
역시나 시인 대통령이 써서 그런가
보우하사도 없고 일편단심도 없고
충성도 없고 만세도 없구나
세네갈,
우리는 갈치를 수입하고 우리는 새마을운동을 수출하고
마키 살 세네갈 현 대통령을 초청한 자리까지는 좋았는데
방한 기념으로 수건은 왜 찍나 왜 그걸 목에 둘둘 감나
복싱 하나 주무 하나 결국엔 한번 해보겠다는 심사인가
‘새마을리더 봉사단 파견을 통한 해외 시범마을 조성사업’
돔보알라르바와 딸바흘레, 이 두 마을이 성공했다는데
본 사람이 있어야 믿지 간 사람이 아니라야 믿지
재세네갈한인회 회장보다 부회장이 낫지 않을까
헛된 믿음으로 찍히고 말 발등이라면 재기니한인회,
재말리한인회 두 회장에게 속아보는 게 차라리 나을까나
세네갈,
갈치 먹다 알게 된 거지만 사실
갈치보다 먹어주는 게 앵무새라니까
세네갈産 앵무를 한국서들 사고 판다지
아프리카라는 연두
아프리카라는 노랑
아프리카라는 잿빛
삼색의
세네갈,
앵무새 앵에 앵무새 무
한자로 다들 쓰는데 나만 못 쓰나
鸚鵡
이 세네갈産
앵무야


*“녹색 심장의 섬유여 형제들이여, 어깨에서 어깨로 모여라 세네갈인들이여 일어나라 바다와 봄에, 스텝과 숲에 들어가라”-세네갈 국가 후렴 부분에서.

-<아름답고 쓸모없기를> 수록-

세네갈. 아프리카 서쪽 끝에 자리한 나라. 언제 처음 이 나라의 이름을 알게 되었는지는 기억에 없다. 친구들끼리 나라나 수도 이름 대기 같은 돌림놀이 할 적에 외워뒀던 그 이름이었나. 아니라면 부르키나파소나 투르크메니스탄 같은 나라 이름을 우리가 어찌 발음하게 되었겠나. 집집마다 아이들 책상 위에 파르라니 지구본 하나씩 놓여 있게 된 사연 그쯤에서 유추가 되기도 하거니와 한 가지 아쉬운 점이라면 그렇게 글로벌하게 노느라 우리나라 우리 도시 이름들은 뒤로 한참 밀렸다는 사실.

어쨌거나 세네갈, 그리하여 세네갈. 가본 적 없고 가볼 일 만무한 이 나라를 붙들고 어쩌다 시 한 편을 쓰게 되었다. 나라 간의 A매치 축구시합이 최근에 벌어졌던 것도 아닌데 생뚱맞게 무슨 세네갈이냐 할 수 있겠지만 나만의 시적 먹잇감으로 이 나라를 꿰차게 된 건 다름 아닌 갈치 때문이었다. 들어들 보셨나, 세네갈産 갈치. 드셔들 보셨나, 세네갈産 갈치. 요즘엔 참 파키스탄 갈치도 대량 수입된다고 하지. 그건 아직 맛을 못 봤으니 일단 패스.

지금은 두 살배기 딸아이를 키우고 있는 여동생이 결혼을 준비하던 즈음이었으니 어림잡아 한 3년쯤 되었겠다. 동생과 곧 제부가 될 녀석과 일산에서 늦은 저녁을 먹으려다 찾아들어간 24시간 생선구이집에서 굵고 넙데데한 몸통으로 노릇노릇 옷을 입은 갈치구이 접시를 마주하게 되었던 것이다. 분홍 색지에 검은 매직으로 꾹 눌러 쓴 원산지 표기 안내가 유독 눈에 띈 데는 내 직업병도 한몫했으려니와 내용인즉 이랬다. 갈치(수입. 새내갈산).

새내갈 아니고 세네갈인데 했다가 언니 잘난 척 좀 그만해, 라는 동생의 말을 들었다. 갈치의 가치란 제목 어때? 했다가 처형 지금 시 쓰시는 건가요, 라는 제부의 말을 들었다. 갈치를 놓고 칼질 아닌 말질로 이토록 자유롭고 이만큼 재미나게 요리할 수 있는 장이 시의 부엌 말고 또 있을까. 그 뒤로는 어느 식당엘 가든 원산지 표기를 의무로 봐두는 편인데 삼겹살 중에서는 네덜란드산이 먹어본 중에 꽤나 괜찮더라는 팁.

어쨌거나 세네갈, 그리하여 세네갈. 틈만 나면 백과사전에서 세네갈을 찾았다. 하루는 수도가 다카르임을 외웠고, 또 하루는 국가 제목이 ‘모든 국민이 그대의 코라와 발라폰을 친다네’임에 신기해했으며, 어느 하루에는 그 멀고 먼 나라까지 우리네 새마을운동이 수출되었다는 뉴스에 고개를 갸우뚱거리기도 하였다. 물론 시스템 자체를 이식해갔다는 얘기겠지만 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 하는 노랫소리가 마을 곳곳에 퍼지는 다큐멘터리라도 봤으면 모를까, 세네갈에서 어떤 방식으로 새마을운동이 펼쳐질지 의심도 호기심의 일종으로 발휘되는 터였다.

세네갈, 세네갈 타령을 해대는 사이 잊고 지냈던 책 한 권을 기억해냈다. 김화영 선생님의 번역으로 1977년 12월에 출간된 레오폴 세다르 상고르의 시집 <검은 영혼의 춤>. 대학 시절 인천 배다리의 헌책방에서 이 책을 구입하면서 면지에 남긴 메모를 다시 보는데 웃음이 픽 새어나왔다. 시인이 대통령이라니, 대통령이 시인이라니.

부러움의 발로였을까. 물론 부러워서 대구 맞춰 쓴 진심이었겠지. 시 읽는 대통령이라면 시 쓰는 대통령이라면 최소한 특별담화문 같은 글이 지금처럼 멀건 풀죽같이 심심하지는 않았겠지. 그래도 책을 담보로 하는 일의 귀함을 외면하지 못하는 심성의 소유자가 바로 시인 아니겠나.

세네갈, 세네갈 타령을 어찌나 해댔는지 누군가 세네갈앵무를 파는 사이트를 내게 알려주기도 했다. 세네갈앵무, 평균 수명 35년, 주인을 잘 살필 줄 알며 조용한 종으로 알려져 있단다. 세네갈앵무는 주인을 어떻게 살핀다는 얘길까. 조용하다는 세네갈앵무의 말소리는 어느 정도의 데시벨을 가졌을까. 그사이 팝업 광고가 하나 떴다. 앵무새 미용(윙 트리밍/ 발톱/ 부리 손질) 서비스 안내.

김민정 시인

*1976년 인천 출생. 1999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으로 등단했다. 시집으로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 <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 산문집 <각설하고,>가 있다.


시 한 접시에 텅 빈 기표를

“갈치를 놓고 칼질 아닌 말질로 이토록 자유롭고 이만큼 재미나게 요리할 수 있는 장이 시의 부엌”이라고 김민정은 말한다. 김민정은 이 부엌의 단연 돋보이는, 자유분방한 요리사다. 그녀는 어떤 재료든 척척 썰고 다져서 시 한 접시를 완성한다. 거침이 없고, 천진하고, 살벌하고, 다재다능하다. 희희낙락, 촌철살인, 점입가경이 손끝에 넘쳐난다. 그렇다고 그녀가 시를 뚝딱, 쉽게 쓴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어떤 시는 대학 시절부터 지금까지 거의 20년이 걸렸다. 어쩌면 똑같은 고통과 슬픔을 갖고도 그녀는 전혀 다른 시를 써왔을 뿐이다.

신인 시절의 김민정은 작정하고 말을 휘둘렀다. 피와 눈알과 내장이 낭자한 정식 풀코스를 보란 듯이 차려냈다. 첫 시집 <날으는 고슴도치 아가씨>(2005)는 ‘너’와 ‘나’를 난도질함으로써 우리 사회를 뒤덮은 모든 권위적인 것과 위선적인 것을 폭로한 부정성의 향연이었다. 남성중심주의가 여성에게 강요하는 언어와 가치관을, 정반대로 뒤집어 세상에 되돌려주는 장면들은 끔찍하게 희극적이었다. 그 속편 격인 <그녀가 처음, 느끼기 시작했다>(2009)에서 김민정은 제도와 관습에서 완전히 예외일 수 없는 ‘시(문학)’와 ‘나’의 이면을 응시하며, “더할 수 없이 명랑한 슬픔”(‘쪽파’) 속에 살아가는 자신의 내면 이야기를 예고했다. 이번 여름의 새 시집 <아름답고 쓸모없기를>(2016)에서 그 이야기는 “세계의 파편”들을 ‘사랑의 패턴’으로 재단하면서 시작되고 있다.

그 파편의 한 예. ‘세네갈’도 아닌 ‘새내갈’은 표기부터가 잘못된 텅 빈 기표다. 새내갈산 갈치는 내 앞에 실물로 놓여 있고 ‘나’는 그 살점을 먹지만, 허구의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나는 ‘세네갈’로 표기를 바로잡고, 세네갈산 갈치에 대한 사실적 탐구에 돌입한다. 갈치에 대한 생물학적 고찰과 세네갈에 대한 정치·경제·사회·문화적 고찰은 진지하지만, 스스로의 부질없음을 감추지 않는다. ‘세네갈’이라는 기표가 ‘나’의 삶에서 생생한 현실성을 얻을 가망은 전혀 없기 때문이다. 이 헛된 노력은 ‘사랑’과 어떻게 다른가. 세상의 모든 ‘세네갈/새내갈’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바치는 일이 사랑은 아닌가. 아름답고 쓸모없기를. 내내 이렇게 기원해야 하는.

김수이 문학평론가·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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