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비
국제뉴스팀 기자
지난해 공개된 바비인형의 광고는 다음과 같은 문구로 시작한다. “여자아이들이 무엇이든 될 수 있다고 자유롭게 상상한다면, 무슨 일이 일어날까?” 어떤 아이는 뇌 과학자가 되어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 다른 아이는 수의사가 되어 아픈 강아지를 진료한다. 광고는 인형놀이를 하며 자신의 꿈을 상상하는 여자아이들의 모습을 비추며 끝난다. 올해 초 다양한 피부색과 몸매를 가진 바비인형을 출시한 제작사의 진일보한 마케팅 전략이다.
한국의 인형 광고들을 생각하면 아찔해질 때가 있는데, 이는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아기 인형에게 우유를 먹이고 요리를 하면서, 이를 너무나도 당연하게 ‘모성’과 연관짓는 장난감들을 갖고 놀았던 어린 시절의 나를 생각하면 찝찝하다. 커가는 나의 모습이 ‘인형같이 아름다운 기준’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자각할 때의 박탈감도 여전히 뇌리에 깊이 박혀 있다. 저번 덕질기에서도 언급했지만, 어렸을 때 했던 인형놀이에서 여자아이들이 생각해낼 수 있는 가장 높은 계급은 ‘대통령’이 아닌 ‘대통령의 딸’이었다. 찍어낸 것처럼(실제로 공장에서 만들어졌지만) 아름다운 인형이 알게 모르게 나의 고정관념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생각하면, 그저 예쁘기만 한 미미인형을 모으는 덕질이 마냥 편치만은 않다.
무엇인가를 ‘모으는’ 덕질에 대한 고민도 마찬가지다. 무한한 내 욕망을 채우기 위해 몇 개의 인형이 더 필요할까? 무턱대고 무엇인가를 사 모으는 취미를 마냥 건강한 취미라고 할 수 있을까? 물론 고기를 먹고 세제를 쓰는 나라는 인간이 이 세상에 끼치는 해악은 더 많겠으나, 하루가 다르게 늘어가는 미미인형을 바라볼 때면 취미에서마저도 그다지 건강하지 못한 즐거움을 찾고 있다는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
이러나저러나 나는 지금도 퇴근하고 집에 가면 바로 창문을 열고 미미들에게 “오늘 날씨도 이상하지?”라며 말을 건다. 인형을 앞에 앉혀두고 밥을 먹고, 자기 전에 두세 번 옷을 갈아입혀준다. ‘그래, 덕질은 원래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지.’ 오늘도 온갖 핑계를 들며 덕후의 번뇌를 교묘하게 피하면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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