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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박근혜는 문인이다, “몽테뉴 같은”

등록 2016-11-08 14:48수정 2016-11-08 21:11

1993년 일기집 내고 수필가협회 등록
새누리당 대표 시절 월간한국수필과 인터뷰
“정치인 안 됐다면 문화예술 활동 했을 것”
2007년 2월27일 광주를 방문한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광주일고에 있는 광주학생독립운동 기념관을 둘러본뒤 학교를 나서다 교정에 활짝 핀 매화 향기를 맡고 있다. 연합뉴스.
2007년 2월27일 광주를 방문한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가 광주일고에 있는 광주학생독립운동 기념관을 둘러본뒤 학교를 나서다 교정에 활짝 핀 매화 향기를 맡고 있다. 연합뉴스.

페이스북에 ‘박근혜 번역기’가 등장할 만큼 공식석상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비문을 자주 쓰는 박근혜 대통령이 실은 한국문인협회와 한국수필가협회 회원이라는 사실이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박 대통령이 책을 처음 낸 시기는 1993년. 1990년 육영재단 어린이회관 이사장직에서 물러나 3년간 칩거하며 쓴 일기를 묶어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더라면>을 냈다. 이 책이 개인의 일기를 엮은 출판물인지, 삶에 대한 통찰과 이해를 담은 수필집인지 독자마다 판단이 다르겠지만, 언론은 3년 만에 모습을 드러낸 박 대통령의 책을 주목하며 ‘수필집’이라고 칭했다. 그해 글쓰기에 전념하기 위해 한국수필가협회에, 이듬해에는 한국문인협회에 회원 등록을 했다.

1993년부터 시작된 출간은 2007년까지 이어졌다. <고난을 벗 삼아 진실을 등대삼아>, <결국 한 줌 결국 한 점> 등 6권의 책을 냈다. 박 대통령은 새누리당 대표 시절에도 “정치인이 아니었다면 예술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었을 것”이라며 애정을 드러낸 바 있다. 박 대통령은 2009년 6월 서울 삼성동 인터콘티넨탈 호텔에 자리한 새누리당 대표 사무실에서 한국수필가협회 이사장인 정목일씨와 인터뷰를 했다. “마음은 언제나 글쓰기를 원하고 있다. 정치하면 마음만큼 글을 못 쓰니까 (정목일 이사장이) 부럽다.” 정목일씨와의 인터뷰는 <월간 한국수필> 2009년 7월호에 실렸다. 정목일씨는 인터뷰를 이런 글로 마무리한다. “지금의 지도자상은 문장을 잘 쓰는 분도 좋은 조건의 하나다. 대표님은 국민들에게 지적이고 사유도 깊어 국민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아는 리더로 가슴속에 살아있다.”

2007년 이후 출간을 하지 않았으나 대통령이 된 후에도 ‘문인 박근혜’는 공식석상이나 문예지에 등장한다. 한국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문예지 <현대문학>은 2013년 9월호에 박 대통령이 과거에 썼던 글을 소개했다. 신작이 아닌, 15년 전에 단행본으로 발표한 책을 문예지가 다시 싣는 사례는 거의 없다. 이태동 서강대 명예교수는 박 대통령의 글에 대해 비평문을 썼는데, 당대의 수필가 몽테뉴에 비유했다. “박근혜의 수필은 우리 수필 문단에서 홍수처럼 범람하고 있는 일상적인 생활 수필과는 전혀 다른 수신(修身)에 관한 에세이로서 모럴리스트인 몽테뉴와 베이컨 수필의 전통을 잇는다고 할 수 있다.” 이 교수는 “우리들의 삶에 등불이 되는 아포리즘들이 가득한, 어둠 속에서 은은히 빛나는 진주와도 같다”며 “부조리한 삶의 현실과 죽음에 관한 인간의 궁극적인 문제의 코드를 탐색해서 읽어내는 인문학적인 지적 작업에 깊이 천착하고 있기 때문에 문학성이 있는 울림으로 다가온다”고 낯 뜨거운 찬사를 바쳤다.

자신을 ‘수필가’로 소개하는 박 대통령의 발언은 장관회의에서도 드러난다. 지난 5월18일 청와대에서 주재한 제5차 규제개혁장관회의 및 민관합동 규제개혁점검회의 모두발언에서 “제가 수필가이기도 한데 지금 많이 쓰지는 않지만 그때 제가 쓴 수필 제목 중에 하나가 꽃구경을 가는 이유라는 게 있다”며 말문을 열었다. 이유는 ‘규제개혁의 시기’를 설명하기 위해서였다. “1년 열두 달 피어 있는 꽃이라면 꽃구경을 갈 필요가 없다. 규제혁신 노력도 골든타임이라는 게 있어서 내년, 그 후년에도 (된다고) 이렇게 생각하면 안 된다.”

박 대통령은 자신이 글을 쓰게 된 계기로 육영수 여사의 서거를 꼽는다. “대학교 다닐 때 갑자기 어머니가 서거하면서 어머니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 때 글을 참 많이 썼습니다. 정신운동을 한 것이지요. 일기도 쓰고 했는데 학교 다닐 때는 교지에다가 글을 발표하기도 했어요. 책으로 내게 된 것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응집된 마음을 글로 풀어내면서 스스로 각오를 다지고 쌓였던 것들이 해소되니까 글이 통로가 되었습니다.” (월간한국수필 2009년 7월호)

글쓰는 재능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글쓰기를 좋아했던 대통령이 현대사만 봐도 드문 케이스는 아니다. 이탈리아의 파시스트 베니토 무솔리니(1883~1945), 중국의 마오쩌둥(1893~1976), 이라크 사담 후세인(1937~2006) 대통령도 소설이나 시를 썼다. 무솔리니와 후세인의 소설은 문학적 성취라기보다는, 자신의 정치적 노선을 문화적인 가면을 쓰고서 나타내는 수단이었다.

무솔리니는 27살이던 1910년 반기독교운동을 내세운 소설 <추기경의 애인>을 발표했고, 이 책은 사후 41년만인 1986년 다시 출판돼 화제를 모았다.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도 몰락 직전까지 3권의 소설을 썼다. 후세인의 죽기 전 마지막 소설은 <망할 놈, 꺼져버려>. 기독교 문명으로 대변되는 악에 맞서 싸우는 이슬람이라는, 선악 구도의 이 소설은 2004년 이라크 일간지 <아샤르크 알 오삿>에 연재됐다. 시오니스트와 기독교로 대표되는 악의 세력이 이라크에 대한 음모론을 꾸미고 아랍 자도자들이 기독교 세계에 침입해 탑을 무너뜨리는 줄거리는 9.11 테러를 연상시킨다.

놀랍게도 사담 후세인은 로맨스 소설을 쓴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2000년 익명으로 출판됐으나, 아랍권에서는 후세인 대통령이 썼다고 널리 알려졌다. 이라크 내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리기까지 했다. 제목은 <자비바와 왕>. 로맨스 소설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내용은 다분히 정치적으로 자신의 생각을 국민에게 주입한다. 소설에는 한 왕과 ‘자비바’라는 이름의 사랑하는 여인이 등장하는데, 두 사람의 대화를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자비바가 정치 사회 종교 문제 등에 관해 왕에게 조언을 한다. 소설 속 두 사람의 대화는 곧 후세인 대통령의 통치 이념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문학적 소양은 차치하더라도, 그가 문화예술에 관심이 많은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박근혜 정부는 ‘문화 융성’을 정책으로 내세우고 내년도 문화 관련 예산을 최초로 7조원 규모로 확대 편성했다. 그러나 문화 융성을 정책으로 내건 나라에서 정부 입맛에 맞지 않는 예술인들이 ‘문화계 블랙 리스트’에 올라 각종 불이익을 받았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미화소설 <인간의 길>을 쓴 이화여대 융합콘텐츠학과 류철균 교수가 청년희망재단 초대 이사에 올랐다. 류 교수는 지난 7월7일 사임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수필을 실었던 <현대문학>도 한 차례 소동을 겪었다. <현대문학>은 2013년 12월 ‘박정희 유신 체제’라는 말을 소설에 쓴 원로작가 이제하의 소설 <일어나라, 삼손>을 연재 거부하는 사태가 일어났다.

문화예술을 좋아한다는 한 나라의 대통령이 지금 대한민국 문화를 말살하고 있는 것은 이제 누구나 아는 사실이 되었다. 문학을 한다는 한 나라의 대통령이 공식석상에서 주어, 술어가 맞지 않는 대답을 자주 해 웃음을 사고 있다는 것도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어느 문학 평론가에게 박 대통령의 글이 어떠하냐고 물은 적이 있다. “본인이 직접 쓰지 않은 것 같다.” 평론가에게 이유를 물었더니 이렇게 답했다. “문장의 주어-술어가 딱 맞아서.”

2013년 현대문학에 실린 박근혜 대통령의 수필 ‘꽃구경을 가는 이유’ 전문

‘오늘은 내 생의 마지막 날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하루하루를 시작하는 사람이 있다고 하자. 그것은 일평생 최선을 다하는 자세를 견지하고자 하는 그의 방편인 셈이다.

어쨌든, 어느 날엔가는 그 가정이 실제와 맞아떨어지는 날이 반드시 있을 것이다.

나는 아직 젊으니까 앞으로 오래 살 수 있다고 장담할 수도 있겠지만, 꽃다운 나이에 꽃처럼 지는 애처로운 사연도 듣고 보아 온 우리들이 무엇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지 그 누구도 정확히 보장받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넋두리 같은 쓸데없는 소리일까? 그러나 이같이 확실한 진리는 없다. 이 세상에 온 우리 모두는 반드시 언젠가는 이승을 떠나야만 하며 그 때가 언제인지는 그 누구도 모르고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 - 아무도 반박할 수 없는 이 분명한 진리가 인간의 마음에 큰 경종을 울리면서 과연 우리는 인생을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며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길을 제시해준다.

그런데, 삶을 애기하기도 바쁜 세상에 지금 왜 죽음을 말하고 있는가. 꽃피는 계절을 기다리고, 피는 꽃을 반가워하며, 꽃구경하러 지방 나들이까지 가게 되는 이유는 그 꽃들이 이제 곧 지기 때문이다. 계속 영원히 피어 있는 꽃이라면 소중히 감상할 맛도, 아쉬움도 없을 것이다.

우리의 삶도 반드시 끝이 있는 것이기에, 그리고 그 종점은 하루가 지나면 그만큼 가까이, 그러다가 문득 다가오는 것이기에. 낭비할 여유가 없는 것이다. 함부로 빈둥빈둥 살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생의 끝이 있음을 잊지 않음으로 인해, 적어도 때때로 생각해 봄으로써 허무감에 빠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허무하지 않게 삶을 영위하는 방법을 터득할 수 있다.

‘영원한 것과 순간적인 것을 가려 낼 수 있는 분별력’이야말로 허무하지 않은 삶으로 이끌어주는 등불이 되며, 생의 종착점에서 울려오는 종소리야말로 이 분별력을 일깨워 주고 그 깨달은 바대로 실천해 나갈 수 있는 의지력을 키워주기 때문이다.

‘끝이 좋으면 모든 게 다 좋다’는 속담이 있다. 다시 말해서 끝이 만일 나쁘다면 그 전에 좋았던 것이 다 소용없다는 얘기도 된다. 죽음을 맞는 순간은 살아온 일생에 비하면 극히 짧은 시간이다.

그러나 이 마감의 순간에 스스로 돌아보는 일평생이 어떠했는가에 따라 그 인생은 값어치 있는 것이 되기도 하고, 완전 실패요 허무한 것이 되기도 할 것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긴 역사의 흐름과 비교해 볼 때, ‘이 세상에 잠시 머물다 가는 나그네’ - 이것이 우리들의 공통된, 예외 없는 모습이다.

그렇다면 이 세상에 이렇게 머물다 가는 나그네가 그 마지막 순간에 가장 평화스럽고 행복하고 후회 없는 마음으로 생의 여정을 돌아보며 마감할 수 있도록, 바로 그 심정으로 우리가 인생을 바라보고 그리 되도록 걸어갈 때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가장 값있는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박유리 기자 nopimuli@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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