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문화예술계 사랑방 술집 ‘소설’ 문 닫는 염기정씨
문화예술계 인사들의 사랑방 구실을 했던 서울 가회동 술집 소설의 염기정 사장이 폐업을 하루 앞둔 26일 가게에서 30년 ‘술 인생’을 추억하고 있다.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손님들과 기타치며 노래하며 30년
영화인·기자·작가 등등 “우리 식구”
망했을때 ‘술값 선불’ 모아 재개업도 새달 타이 치앙마이로 떠날 예정
“다시 돌아와 옛날 이야기 할 수도” “광화문 ‘여름’, 신촌 ‘겨울나그네’ 같은 곳으로 매일 술을 마시러 다니던 이십대 후반 어느날 문득 생각했어요. 아예 내가 술집을 해 보면 어떨까. 이렇게 좋은 사람들과 매일 술 마시고 노래하며 놀고 거기다가 돈까지 번다니! 무엇보다, 거기 있는 술이 다 내 것이라 생각하니 좋았어요.” 피아노학원을 운영하면서 저녁이면 술 마시고 노래하는 것을 인생의 낙으로 삼던 그가 처음 ‘시몽’을 시작했을 때 사업보다는 친구들과 노는 공간을 생각했던 것이다. 그는 처음부터 “아는 사람만 오는 술집”을 염두에 두었고 그런 ‘영업 방침’은 지금까지 변함없이 이어져 왔다. 소설의 고객은 문인과 영화인, 기자, 화가, 변호사, 건축가 등 문화예술계 인사들이 주를 이루었다. 신촌 시절부터 드나들던 이들이 인사동으로 친구를 데려왔고 그들이 다시 다른 친구를 가회동으로 끌어왔다. 때로 주인장이 마음에 안 드는 손님에게 “너, 우리 집에 오지 마!”라며 ‘추방령’을 내리기도 했다. 주인장의 ‘반칙’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소설에서 주인과 손님의 경계는 자주 희미해졌다. 그는 장사보다는 친구인 손님들과 어울려 술 마시고 얘기하며 노래 부르고 춤추는 데에 더 관심이 많아서, 손님들은 스스로 술을 가져다 먹고 계산도 했으며 때로는 주방에서 안주를 직접 만들기도 했다. 술집을 하기 전 음반을 내기도 했던 그를 위해 단골들이 신촌의 한 공연장을 대관하고 티켓까지 발매해서 콘서트를 열어 준 일도 있었다. 일산에서 잠시 ‘그 나무’를 하다가 망한 뒤 2002년 인사동 백상빌딩 지하에 다시 ‘소설’을 열 때에는 단골 30여명이 ‘선불’ 술값으로 모아 준 2천만원으로 권리금과 보증금을 충당하기도 했다. 그가 단골 손님들을 가리켜 “우리 집 사람들”이라 표현하는 이면에는 이런 가족 같은 끈끈함이 있다. “고등학생 때 소설을 습작하던 문학소녀였고, 좋아하던 작가들을 우리 집에서 다 만나긴 했지만, 술집 이름 ‘소설’이 꼭 문학작품만을 가리킨 건 아니었어요. 그보다는 함께 나눌 수 있는 따뜻한 이야기가 담기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고른 이름이지요.” 그렇게 소설에서 따뜻한 이야기를 나눈 이들 중에는 유명인이 적지 않다. 풍류남이었던 소설가 고 이윤기, 주인장이 “인생의 스승”이라 여기는 건축가 조건영, 매일 똑같은 옷을 입고 와서는 역시 매일같이 ‘메기의 추억’을 벨칸토 창법으로 부르던 시인 김정환, 인사동을 지나다가 우연히 간판을 보고 들어왔던 재일동포 영화감독 최양일과 그가 데려와서 열성 단골이 된 영화제작자 차승재, 역시 영화제작자인 이준동, 영화배우 정진영과 김의성, 전 서울문화재단 대표 조선희와 대중문화평론가 임범 등 전·현직 기자들, 공연 기획자 주홍미 등등. “술집 주인 30년을 했는데 왜 이렇게 돈이 없지 싶을 정도로 제가 돈복은 없지만, 사람복은 있구나 싶어요. 단골들이 소설의 가장 훌륭한 인테리어였지요. 그런데 그 단골들이 늙어 가는 모습을 보는 게 저로서는 힘들었어요. 각자의 분야에서 성실하게 일하는, 어느 면에서는 여전히 청년들인데 어떤 순간에는 그들의 피로감과 꼰대성 같은 게 보이는 거예요. 나이 들면서 술을 못 마시게 되니까 발길도 뜸해지고요. 그렇다고 젊은 세대에 영합할 생각은 없고, 결국은 장사가 안 돼서 문을 닫게 된 셈이지요.” 이제 그는 올초 여행하면서 좋은 느낌을 받았던 태국 치앙마이로 거처를 옮긴다. 새달 13일 출국하는 ‘원웨이 티켓’을 끊었노라고 했다. “그렇다고 해서 영영 돌아오지 않겠단 건 아니에요. 나중에 언젠가는 작은 공간에서 단골들과 다시 어울리면서 옛날 이야기도 하면서 늙어 가고 싶어요.” 신촌 시절까지 합쳐 소설 시대 30년의 종언을 아쉬워하는 단골들은 새달 10일 저녁 서울 인사동에서 환송 파티를 열기로 했다. “치앙마이에 가면 때로는 여기 사람들이 사무치게 그리운 밤이 있겠지요. 그렇지만 그게 무섭지는 않아요. 서로에게 기댈 때는 기대고 떠날 때는 떠나는 게 삶이니까요. 그렇더라도 저는 언젠가는 돌아올 겁니다.” 최재봉 선임기자 bong@hani.co.kr, 사진 김명진 기자 littleprinc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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