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짬】 ‘다문화 커플’ 첫 주례 맡은 선각 스님
“이렇게 잘 생긴 신랑이라면 나라도 결혼하겠다.” 주례가 주례사를 하던 중 불쑥 농담을 던져 식장이 웃음바다가 되었다. 더욱이나 주례를 보던 이는 비구니 스님이었다.
23일 오후 서울 대치동 서울무역전시컨벤션센터(SETEC)의 서울국제불교박람회장에서 특이한 결혼식이 열렸다. 불교 전통혼례인 화혼식으로 진행된 이날의 주례는 비구니 스님, 미국 세인트루이스와 아틀란타의 불교 사찰 붓다나라의 주지인 선각 스님)이다.
이날 백년가약을 맺은 신랑 신부도 특이하다. 신랑은 아프리카 말리에서 유학온 아마두 마마두 상가레(26·고려대 경영학과 2년 재학중), 신부는 한국인 박꽃별(27·상담사)씨다.
출가로 속세 인연을 끊고 결혼도 하지 않는 비구니의 주례로, 대륙을 뛰어 넘는 다문화 결혼식이 펼쳐진 건 선각 스님과 신부 박씨의 예사롭지 않은 인연에 따른 것이다.
미국 유학중 참선 가르치다 ‘정착’
2002년부터 세인트루이스서 포교
‘미국 사찰짓기 한국 후원회’ 결성 신부는 후원회 고문의 딸로 인연
신랑은 아프리카 말리 출신 유학생
“머리 깎으라 권했는데 시집간다니”
선각 스님은 1981년에 육문(현 전국비구니회 회장)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98년에 미국 워싱턴에서 대학원을 다닐 때 따로 시간을 내어 현지의 학생들에게 참선을 가르쳤다. 정규수업이 아닌 일종의 동아리 같은 것인데 뜻밖에 인기를 끌었다. 그가 대학원을 졸업하게 되자 더 이상 참선을 배울 수 없게 된 미국인들로부터 “계속 배우고 싶다”는 요청이 들어왔다.
“어떻게 할까” 고민하던 선각 스님은 세인트루이스에 절을 세우기로 했다. 그렇게 세인트루이스에서 2001년 무렵 불사가 시작됐고, 한국에서 이를 돕기 위한 후원회가 만들어졌다.
신부 박꽃별씨와 인연은 그의 어머니 백련화씨가 이 불사를 위한 후원회 회원이되면서 맺어졌다. 백씨에게 딸이 셋 있었는데 하나같이 똑똑하고 심지가 굳게 보였다고 한다. 선각 스님은 세 딸을 유심히 보면서 어머니 백씨와 “딸들이 영민하니 셋 중에서 하나는 꼭 큰스님으로 만듭시다”라고 입버릇처럼 이야기를 주고 받았다고 했다. 그러다가 백씨의 큰 딸이 학업을 위해 캐나다로 가버리자 선각 스님은 둘째인 꽃별씨를 스님으로 만들 생각을 했다.
그런데 지난 16일, 3년 만에 한국에 온 선각 스님에게 백씨는 느닷없는 부탁을 했다. 결혼식 주례를 서 달라는 것이었다. “참 묘한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미국서 막 한 사람의 장례식을 치러주고 왔는데 한국에 오니 주례를 서라는 구나” 스님은 한국으로 오는 비행기를 타기 전에 불법체류로 미국에서 살다가 세상을 뜬 한인의 장례식을 세인트루이스 <붓다나라>에서 치르고 왔다. “돌아가신 분은 기독교인이었는데 무연고자다 보니 아무도 챙길 사람이 없었던 모양이다. 돌아가신 분의 종교가 뭐 따질일이 있는가. 내가 나서서 모셨다”라고 했다
그런데 결혼식 주례를 맡을 신부는 선각 스님이 출가시키려고 맘 먹고 있던 꽃별씨가 아닌가? 선각 스님은 “머리를 깎아주려고 했는데 주례를 서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못했다. 결혼하게 되면 스님이 되는 것은 물 건너 가는거 아닌가? 황당했다”라고 헛웃음을 웃었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출가도 수행이지만 혼인도 수행이다. 특히 결혼하게 된 신랑이 지구 반대편에서 온 사람이니 문화도 다르고 언어도 다르고 극복할 일이 아주 많을 것이다. 이 혼인은 그래서 특히 더 수행이라고 생각한다”고 주례 요청을 승락했다.
선각 스님은 영어와 한국어를 섞어서 주례사를 했다. 신랑의 부모는 이번 결혼식을 위해 한국에 오질 못했지만 고국 말리에서 한국에 온 친구들이 여럿 있었으니 신랑과 신랑 친구를 위한 배려였다. 주례사를 통해 선각 스님은 “오늘, 구리선녀와 선혜선인이 그랬던 것처럼 이 두 사람은 부처님께 꽃을 올려 세세생생 부부의 인연을 약속했다. 두 사람이 서로의 모습을 거울에 투영된 자신의 모습이라 생각하고 한 쪽이 웃으면 거울의 다른 쪽이 웃고 한 쪽이 울면 다른 쪽도 운다는 것을 명심하고 서로 배려하고 인정하라”고 주문했다. 그는 또 “신랑이 될 아마두씨를 미리 만나서 결혼이 뭔지 물어보고 신부를 왜 사랑하게 되었는지 물었더니 ‘그녀는 아름답고 똑똑하고 내가 만나본 사람중에 세상에서 가장 헌신적인 사람이라서’라고 답하더라”고 했다.
신랑 아마두 마마두 상그레는 “솔직히 불교를 잘 모른다. 그러나 미리 주례스님에게 인사를 드리러 갔을 때 많이 배우겠다고 약속했다”고 말했다. 아마두씨는 또한 “지금은 학기 중이라 당장 신혼여행을 갈 수는 없다. 방학이 되면 말리로 가서 현지식으로 결혼식을 한 번 더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또 “말리에선 부모님이 결혼하게 된 신부의 발을 씻어주는 풍습이 있다. 우리 꽃별씨의 발도 씻어주게 될 것”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혼례가 끝나고 선각 스님은 신부 어머니 백씨와 이야기를 나눴다. “꽃별이가 어릴 때부터 너는 글로벌하게 될 것이다. 글로벌하게 놀아라”라고 주문을 외우듯 말했더니 어느 날 갑자기 아프리카 신랑감을 데리고 왔네. 한편으로 놀랍기도 하고 큰 인연이다라고 생각했다.” 두 사람은 박장대소했다.
글·사진 곽윤섭 선임기자 kwak1027@hani.co.kr
비구니 선각 스님(가운데)이 23일 말리 출신 유학생 신랑 아마두 마마두 상가레(왼쪽)와 한국인 신부 박꽃별(오른쪽)씨의 화혼식에서 주례를 맡았다.
2002년부터 세인트루이스서 포교
‘미국 사찰짓기 한국 후원회’ 결성 신부는 후원회 고문의 딸로 인연
신랑은 아프리카 말리 출신 유학생
“머리 깎으라 권했는데 시집간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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