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체를 방문한 박노해 시인이 고아들의 자활을 돕기 위해 기증한 ‘깜빙’(아기 염소)과 함께 사진을 찍었다.
대국에…자연재앙에…힘없이 무너진 ‘아체’ 슬픔과 희망찾기
평화운동가로 ‘변신’한 노동자 시인 박노해(48)씨가 오랜만에 새 책을 내놓았다. <아체는 너무 오래 울고 있다>(느린걸음)는 인도네시아 북서부 분쟁지역 아체를 올 3월과 5월 두 차례 방문해서 보고 겪은 것을 시와 산문, 그리고 직접 찍은 사진에 담은 책이다.
아체가 일반에 널리 알려지기는 지난해 말 지구촌을 공포에 몰아넣은 쓰나미의 피해지로서였다. 박 시인이 방문했을 때에도 아체는 여전히 쓰나미에 할퀴인 상처에 신음하고 있었다. 사람이 만든 구조물이 모조리 무너져 내리면서 쓰레기 더미 위로 지평선이 보이게 된 기괴한 풍경, 부모와 친척을 모두 잃고 졸지에 고아가 되어 버린 아이들, 학교 운동장만한 자리에 10만 명이 한꺼번에 묻혀 있는 공동묘지….
그러나 아체의 눈물과 한숨은 단지 쓰나미 때문만은 아니었다. 인구 400만(이 가운데 40만 명이 쓰나미에 희생되었다)의 아체는 독자적인 언어와 문화를 지녔으며 한때는 독립국가를 선포하기도 했으나 풍부한 천연자원을 탐낸 인도네시아에 점령되어 ‘식민 지배’ 상태에 놓여 있는 땅이다. 현재 4천 명으로 추산되는 전사들이 ‘자유 아체’의 이름으로 게릴라전을 펼치고 있으나 대국 인도네시아에 맞서기에는 역부족인 형편이다.
후원금과 물품을 지니고 아체에 도착한 시인은 쓰나미 피해 현장을 둘러보고 주민들과 얘기를 나누며 도울 방도를 알아본다. 그러나 피해 규모와 정도는 엄청나고 도울 수단은 미약하기 짝이 없다. 그럴 때에는 그들과 더불어 울어 주는 것이 최선책인지도 모른다: “슬픔은 우기처럼 쏟아지고 고통은 건기처럼 내리쬐는 아체인의 절망 앞에서, 나는 함께 울어 주는 일 밖에는 아무 것도 할 수가 없었다.”(4쪽)
그럼에도 산 사람은 살아야 하는 법. 어린 가슴으로 채 소화하기 힘든 시련과 아픔 앞에서 아이들은 지레 성숙해져 버렸지만, 폐허와 절망 속에서 그래도 먼저 웃고 뛰노는 것 역시 “가장 먼저 피어나는 꽃”(21쪽)인 아이들이다. 시인은 고아가 된 아이들의 자립을 돕고자 아기 염소 100 마리를 기증하는 ‘깜빙 프로젝트’를 벌이는가 하면 복구 중인 마을에 우물을 팔 수 있도록 후원한다. 아체의 피와도 같은 석유를 빨아가고 있는 다국적 기업 액슨모빌의 사진을 찍으려다 무장 군인들에게 체포되어 장전된 총구 앞에서 “한 마리 아체의 개”(185쪽)가 되는 경험도 한다.
<아체는 너무 오래 울고 있다>는 ‘팸플릿 001’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왔다. 80년대의 무크와 같은 부정기간행물에 강준만 교수의 ‘1인 잡지’ 형식을 결합한 새로운 출판 양태다. 책 뒷날개에는 <쿠르드 여자 게릴라 니나의 뒷모습>이 ‘팸플릿 002’로서 출간 예정이라고 안내되어 있다.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아체는 너무 오래 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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