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일관되게 ‘공영방송 정상화’와 정권의 방송장악에 맞서다가 해고된 언론인의 복직을 약속했다. 문 대통령 취임 두달 남짓, 문화방송에서는 박근혜 정권이 몰락 직전 ‘알박기’로 선임한 사장을 비판하다 해고 위기에 몰린 피디가 등장했다. 1996년 문화방송에 입사해 일일시트콤 <뉴논스톱>, 미니시리즈 <내조의 여왕> 등을 연출한 김민식 피디다. 그는 2012년 파업 때 뮤직비디오 ‘엠비시 프리덤’ 등 각종 파업 프로그램 연출을 도맡았다. 하지만 파업이 끝나고 정직 6개월의 중징계를 받고 드라마본부에 복귀한 뒤, 단 한 번도 메인 연출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대신 책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로 베스트셀러 작가가 됐다. 지난 2일 그는 서울 상암동 엠비시 사옥 안에서 “김장겸은 물러나라”고 외쳤다. 이 장면을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계정에 생중계했다. 사쪽은 김 피디에게 “업무 방해, 직장 질서 문란”을 이유로, 1개월 대기발령 조치했다. 통상 중징계 전에 이뤄지는 절차다. 지난 정권 시절 문화방송 안에서는 이런 ‘보복 인사’와 ‘부당 징계’가 횡행했다. 지난 29일 고용노동부는 문화방송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에 착수했다. 사쪽의 징계 움직임에 맞서 다른 문화방송 구성원들도 하나둘 ‘김장겸은 물러나라’ 퍼포먼스에 동참하고 나섰다. ‘딴따라’ 피디는 어쩌다 공영방송 정상화 싸움의 선봉에 서게 됐나. 지난 24일과 28일 총 3시간에 걸쳐 나눈 이야기를 소개한다. 글 김효실 기자 trans@hani.co.kr, 사진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 정권의 언론 장악은 방송사 경영진·간부진의 충실한 ‘부역’으로 구현 가능하다.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 공영방송 사장들은 인사권을 통해 내부 언론 자유를 탄압했다. ‘낙하산 사장’, ‘불공정 보도’에 저항하는 기자·피디 등을 징계하고 제작 부서 밖으로 밀어냈다. 그래도 계속 싸워온 사람들이 있다. 국민의 재산인 공영방송을 정부·정치권이 아닌 국민의 편으로 돌려놓는 싸움이다. 김민식 문화방송 피디도 그 싸움을 이어온 구성원 가운데 한 명이다. 김 피디의 이야기는 수많은 ‘김민식들’의 이야기다.
짐이 많았다. 6월29일 인터뷰를 위해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사옥에서 김민식 피디(PD)를 만났을 때다. 등에 가방을 메고도 양손에 종이봉투를 하나씩 들었다. 봉투 안에는 책이 가득했다. “인사위원회에 출석하러 회사에 간 김에, 사무실에서 짐을 다 챙겨 나왔어요.” 김 피디는 6월13일 사쪽으로부터 1개월 대기발령을 통보받았다. “삑!” 출입카드로 이용하던 사원증은 곧바로 ‘미등록 카드’로 분류돼, 사내 출입이 제한됐다. 이제 김 피디는 회사 건물에 들어갈 때 주민등록증 같은 신분증을 제시하고 ‘방문증’을 끊어야 한다. 입사 20년을 넘긴 피디가 하루아침에 ‘외부인’이 됐다.
대기발령은 통상 중징계 전에 이뤄지는 절차다. 문화방송 내부에선 ‘해고’라는 단어가 다시 입길에 오른다. 지난 이명박·박근혜 정권 시기 문화방송에서만 10명의 해고자가 발생했다. 만약 김 피디가 해고될 경우 문재인 대통령 집권기의 ‘1호 해직 언론인’이 된다.
김민식 피디는 앞으로 문화방송에 “100명의 손석희가 등장할 것”이라며 “엠비시를 포기하지 말고 지켜봐달라”고 했다. “손석희 앵커는 신군부 시절 뉴스를 진행하면서 부끄러움을 느꼈다고 하죠. 그때 부역했다는 부끄러움이 손석희라는 언론인을 만든 동력입니다. 지금 문화방송에는 지난 5년 동안 망가진 뉴스를 지켜보며 부끄러움을 느낀 기자와 피디, 아나운서들이 있어요. 이들이 그 부끄러움을 기억하기만 한다면, 기회가 왔을 때 얼마나 좋은 방송을 만들 수 있겠습니까. 지금 경영진의 목적은 국민들이 엠비시를 욕하고 포기하게 만드는 일이 아닐까 싶습니다. 극우파 목소리를 고착화하려고 한다는 거죠. 이걸 어떻게든 막는 게 저의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진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2012년 파업 뒤 메인 연출 못해
“파업 앞장섰는데 연출 왜 맡기나”
인사 평가 높은 등급 받자
2015년에는 비제작 부서로 전출
고용노동부, 29일 특별근로감독 착수
10일까지 현장 근로감독 예정
노동법 중대 위반 판단되면
검찰 기소 요청할 수도
‘사장 물러나라’ 퍼포먼스로
대기발령 받고 징계 심사 대기 중
대기발령 이의제기는 기각
문재인 정권 첫 해직 언론인 우려
“‘어쩔 수 없다’는 핑계 이제 안 통해
우리 안의 패배감·무력감 벗어야”
“대통령 바뀌었다고 기다리는 일 대신
우리 스스로 사장 몰아내고 바꿔야”
김 피디는 대기발령 통보에 대해 사쪽에 ‘이의제기’ 신청을 했고, 이날 서울 상암동 문화방송 사옥 임원회의실에서 김 피디의 이의제기에 대한 인사위원회 심의가 열렸다. 김 피디는 직접 인사위에 출석했다. 백종문 부사장을 포함해 10명 남짓한 인사위원들이 앉아 있었다. 백종문 부사장은 지난해 “(2012년에) 최승호 피디, 박성제 기자는 증거 없이 해고했다”는 발언을 한 사실이 알려져 파문을 일으킨 바 있다. 지난해 국회 국정감사에 불출석해 고발 조처됐지만, 올해 1월에 문화방송 대주주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에서 이사로 선임됐다. 고영주 방문진 이사장은 “문재인은 공산주의자” 발언으로 명예훼손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고소·고발된 상태다.
방문진은 올해 2월 말 박근혜 당시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새 사장 선임까지 마쳤다. 2012년 정치부장 시절 불공정 보도로 기자들의 제작 거부를 낳은 당사자인 김장겸 보도본부장이 사장으로 뽑혔다. 김장겸 사장의 임기는 2020년 3월까지다. 김 사장은 김민식 피디를 포함한 문화방송 구성원들의 인사위원회 심의 결과를 승인할 ‘최종 결재권자’이기도 하다.
지난 5월부터 문화방송 안에서는 김장겸 사장과 고영주 이사장 퇴진을 요구하는 기명 성명이 쏟아졌다. 김민식 피디는 홀로 수위를 높여 6월2일 회사 안에서 “김장겸은 물러나라”고 큰 소리로 외치고, 이 모습을 자신의 페이스북에 생중계했다. 이에 사쪽은 6월13일 김 피디에게 “업무방해, 직장질서 문란”을 이유로 1개월 대기발령을 통보했다. 김 피디는 6월30일 자신의 이의제기가 ‘기각’됐다고 알려왔다. “인사위원회에 출석했을 때 제게 질문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어요. ‘할 말 다 했으면 나가보라’고 하더군요.” 심사는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이달 안으로 김 피디의 징계 수위를 심사하는 인사위원회가 새로 열릴 예정이다. 사쪽의 징계 움직임에 맞서, 다른 문화방송 구성원들도 하나둘 ‘김장겸은 물러나라’ 퍼포먼스에 동참하고 나섰다. ‘딴따라’ 피디는 어쩌다 공영방송 정상화 싸움의 선봉에 서게 됐을까. 지난 6월24·28일 김 피디를 두 차례 만나 인터뷰했다.
김민식 피디는 지난 2일 서울 상암 문화방송 사옥 안에서 “김장겸은 물러나라”고 외치는 모습을 페이스북에 생중계했다. 김민식 피디 페이스북 갈무리
■ ‘공감 능력’으로 맹활약한 170일 파업
-2012년 파업 때 노조 집행부를 하셨죠. 드라마 피디가 간부까지 맡는 경우는 드물다고 들었는데, 계기가 궁금합니다.
“2011년 노조 집행부를 꾸릴 때, 부위원장을 맡아달라는 연락이 왔어요. 제가 물었죠. ‘(저한테 연락하기 전에) 몇 분한테 까였어요?’ 저는 2010년 김재철 사장 퇴진을 요구하는 39일 파업에 참여하지 않았어요. 드라마 제작 특성상 피디들이 파업에 참여하기는 쉽지 않거든요. 그런데 나보다 진보적인 조합원들은 이미 2010년 싸움에서 소진되어 나설 수 없는 상태인 걸 알고 수락했습니다. 예능·드라마 피디 목소리는 반영이 어렵기도 해서 이들을 대변하는 목소리가 있어야 한다고도 생각했고요.”
-하지만 문화방송 노조는 2010년 39일 파업, 미디어법 통과 반대 파업 등 이명박 정권 및 경영진을 상대로 큰 싸움을 벌였고, 새 노조는 2012년 큰 선거 둘(총선·대선)을 앞두고 있어, ‘공정보도’를 둘러싼 더 큰 갈등이 예견된 상황이기도 했었죠.
“나는 ‘그 길’을 가지 않을 줄 알았어요.(웃음) 2012년 파업 때도 조합원 찬반투표를 할 때는 찬성했지만, 집행부 회의에선 파업에 반대했어요. 사실 보도 공정성이라는 게 예능·드라마 경쟁력과 직접적인 관련은 없잖아요.”
-정작 2012년 파업 때는 맹활약하셨습니다.(웃음)
“제가 드라마 할 때 중시하는 게 공감능력인데요. 대본을 읽으면서 등장인물의 입장에 내가 다 공감하고 감정이입할 수 있어야 연출이 가능했습니다. 파업 때 보니까 김재철 사장 치하에서 라디오나 시사교양 분야 경쟁력이 바닥으로 추락하고 그 과정에서 구성원들이 너무 힘들었더라고요. 다른 동료들이 너무 고생한 걸 알게 되니 내가 뭐라도 해야겠더라고요.”
-각 분야 조합원에 감정이입하신 거군요.
“네. 아직도 기억이 생생한 상황이 있습니다. 파업 도중에 박성호 기자회장이 해고됐어요. 노조가 파업에 들어가기 전에 기자회에서 왜곡 보도를 비판하며 제작 거부를 했는데, 그걸 주도했다는 이유였죠. 당시 노조에서는 회사 1층 로비 집회만 했는데, 보도국 등으로 범위를 넓혀 시위를 할지 회의를 했어요. 그때 정영하 노조위원장이 이렇게 말했어요. ‘박성호는 보도국 내에서 좌우 위아래 없이 좋아하는 사람이다. 다들 합리적이라고 인정하는 사람이 해고됐기 때문에 보도국 기자들의 열패감이 있다. 이런 사람마저 잘리면 누가 나설 수 있겠나. 상처받은 사람들의 입장에서 싸우는 게 노동조합인데, 그들을 놔두면 조직으로서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 말에 공감하셨군요.
“확~ 공감했죠. 너무 공감한 나머지, 지금은 후회하는 말까지 했어요.(웃음) ‘그럼 보도국에 갈 때 내가 선봉에 서서 가겠습니다!’ 당시에 전 2~3주 내로 파업이 끝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기자들이 앞장서서 간다고 했을 때, ‘당신들은 파업이 끝나고 복귀하면 다시 프로그램을 같이 만들어야 할 사람들이니 지금 얼굴 붉히지 마라. 나는 보도국에서 ‘듣보잡’이고, 파업 끝나면 더 만날 일 없다. 내가 갈게’라고 했죠. 그리고 보도국에 올라가서 굵은소금 뿌리면서 ‘왜곡보도 귀신 물러가라’ 외쳤어요.”
김민식 피디는 1996년 문화방송 피디 공채에 합격해, 예능·드라마 피디로 일해왔다. 일일시트콤 <뉴 논스톱>으로 백상예술대상 신인연출상(2002)을, 미니시리즈 드라마 <내조의 여왕>으로 백상예술대상 연출상(2010·공동 수상)을 받았다. 2011년 전국언론노동조합 문화방송본부(노조)에서 피디직 조합원을 대표하는 편성·제작 부문 부위원장을 맡으면서, 파업 홍보 뮤직비디오 ‘엠비시 프리덤’ 등 각종 파업 프로그램을 연출했다. 파업 당시 다른 노조 집행부와 함께 업무방해 혐의로 징역 2년을 구형받고 1·2심 무죄 판결을 받았으나, 회사의 상고로 대법원에 넘어갔다. 회사로부터는 ‘징계 3종 세트’(정직·대기발령·교육발령)를 받았고, 이에 대한 징계 무효 소송도 대법원 판결만 남겨둔 상태다.
문화방송(MBC) 노조원들이 지난 29일 낮 상암동 엠비시 광장에서 김장겸 사장 퇴진을 요구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비인격적 인사관리’가 낳은 무기력과 패배감
-임기 마치고 드라마본부로 돌아간 다음에 한 번도 메인 연출을 못 맡았습니다.
“2012년 경찰이 파업 중인 노조 집행부에 구속영장을 청구했을 때, 저는 유치장에서 심사 결과 기다리면서 ‘좋은 경험’ 한다고 생각했어요. 당시에 <뉴 논스톱 3>를 같이 했던 작가와 함께 법정 드라마를 준비 중이었거든요. 유치장은 사전 답사가 어려운 공간인데, 피디가 직접 와서 보니까 좋은 일 아니겠어요?(웃음) 대본을 4부까지 만들었고 원래 2012년에 방송하려고 했는데 파업으로 늦어졌고, 파업 뒤엔 정직 6개월을 받아서 정직 끝나고 하자고 했는데, 정직이 끝나고 나서도 제게 연출을 맡기지 않는 분위기였어요. 작가에게 더는 ‘기다려 달라’고 하기 어려웠죠. 결국 에스비에스에서 <너의 목소리가 들려>(2013)란 제목으로 방송됐어요.
윤태호 작가의 웹툰 <미생>도 드라마로 만들자고 먼저 제안했었어요. 드라마 작가를 섭외하면서 회사에 계약하자고 얘기했는데, 회사에서 끝내 응답하지 않았죠. 연출을 하지 않더라도 작품을 발굴하고 기획하는 일을 할 수도 있다고 여겼는데, <너의 목소리가 들려>와 <미생>(2014·티브이엔)이 다른 회사에서 ‘대박’ 나는 걸 보니, 이후엔 작가들을 만나는 게 미안했어요. 나는 ‘제작할 수 있다’고 말을 하지만, 누가 봐도 회사에서 ‘찍힌’ 게 보이니까요. 아, 이 얘긴 기사에 꼭 넣어주세요. 두 드라마를 내가 연출했어도 잘됐을 거란 말은 아닙니다! 망했을 수 있어요!(웃음) 제가 연출이 아닌 기획 피디로서 일하는 것조차 힘들구나 싶었다는 겁니다.”
경영진의 ‘보복’은 집요했다. 파업이 끝나고 2년이 지난 2014년 드라마본부 간부들과 협의해 한 일일연속극의 연출을 맡기로 했다. 과거에 함께 시트콤을 찍은 적 있는 중량급 배우를 주인공으로 섭외하던 중, 연출 하차 통보를 받았다. 임원 회의에서 “(김 피디는) 파업에 앞장섰던 노조 집행부로, 회사와 (징계 무효 등) 소송을 하고 있는데 왜 연출을 맡기느냐”는 이야기가 나온 것으로 전해진다. 2015년에는 ‘간신히’ 주말드라마 <여왕의 꽃> 비(B)팀 연출(야외 연출)을 맡았다. 이때도 새 드라마 라인업을 보고받은 임원 중 일부가 김 피디의 연출을 문제 삼았다.
<여왕의 꽃>은 시청률 20%를 넘기며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하지만 드라마의 성공이 김 피디에게는 ‘독’이 됐을까. 김 피디가 인사 평가에서 두 번째로 높은 등급을 받은 사실이 알려진 뒤, 드라마본부 밖으로 인사 발령이 났다. 연출과 무관한, 주조정실 엠디(마스터 디렉터)로 자리를 옮겨야 했다. 회사는 김 피디가 성과를 내는 것은 물론, ‘성과를 낼 가능성이 있는 위치에 머무는 것’조차 원치 않는 것처럼 보였다.
김 피디만이 아니다. 2012년 파업이 끝난 뒤 서울 본사 파업 참가자 770여명 중 150여명이 본래 일하던 부서로 복귀하지 못했다. 대기발령·전보·교육발령 등을 받아서다. 노조는 이 같은 징계·전보가 부당하다고 판단해 회사를 상대로 효력정지 가처분 소송을 냈고 2013년 법원이 이를 인용했지만, 사쪽은 다시 일부를 원래 업무와 거리가 먼 부서로 발령냈다. 사쪽은 “다양한 직종을 경험시키려는, 경영상 필요한 조치”라고 해명해왔으나, 사쪽의 부당한 지시에 저항하거나 비판적 목소리를 내는 구성원들을 향한 징계와 전보가 계속됐다. 경력을 이어가기 어려웠던 아나운서·피디 등이 회사를 떠났다. 사쪽은 경력직 사원을 대거 고용했다. 문화방송 기자인 임명현은 석사학위 논문 ‘2012년 파업 이후 공영방송 기자들의 주체성 재구성에 관한 연구’(2017)에서 파업 이후 사쪽의 ‘가학적·비인격적 인사관리’와 모멸적 인사권 행사가 기자들의 무력감을 키우고 저항적 실천을 약화시켰다고 분석한다. 고용노동부는 6월29일 상암 문화방송 사옥에 근로감독관 8명을 투입해 특별근로감독에 착수했다. 고용노동부는 “문화방송이 ‘노동관계 법령 위반으로 노사분규가 발생했거나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사업장’에 해당해 특별근로감독 요건에 맞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오는 10일까지 현장 근로감독을 이어갈 예정이다. 만약 문화방송이 노동법을 중대하게 위반했다고 판단하면, 검찰에 관련자 기소를 요청할 수도 있다.
-세월호 참사 직후에는 한 기자가 사내 게시판도 아니고 ‘입사 동기 카톡방’(카카오톡 대화방)에 회사를 비판하는 톡을 보냈다는 걸로 징계를 받기도 했죠.
김민식 피디의 ‘물러나라’ 퍼포먼스를 함께하는 문화방송 노조 조합원. 전국언론노동조합 문화방송본부 페이스북 갈무리
지난 23일 전국언론노동조합 문화방송본부가 김민식 피디의 ‘물러나라’ 퍼포먼스를 다른 조합원들과 함께 진행하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문화방송본부 페이스북 갈무리
“엠비시 사람들에게도 충격이었어요. 저는 원래 일산으로 출퇴근했는데, 2014년 상암 신사옥이 완공되고 드라마본부가 상암으로 이동하면서 파업 끝나고 못 보던 조합원들을 2년여 만에 만났어요. 너무 반가워서 ‘우와 반가워!’ 외쳤는데, 표정이 이상하더라고요. 알고 보니 뒤에 부장이 있었고, 그 사람과 밥을 먹으러 가는 중이었어요. 난 ‘부역자’ 얼굴은 잘 모르잖아요. 내가 누군가에게 반갑게 인사하는 게 그 사람에게 상처나 불이익이 된다는 걸 깨닫고 나니까, 미치겠더라고요. 내가 일산에 있어서 몰랐구나. 얘네는 일상의 순간순간이 선택의 기로였겠구나.”
많은 ‘부정적’ 상황을 전하면서 한 번도 여유와 농담을 잃지 않던 김 피디가, 처음으로 다른 모습을 비쳤다. 김 피디는 아내와 대학원에서 만나 20년 가까운 세월을 함께 보냈다. 2012년 파업에 들어갈 때 아내가 말했다. “선배는 노조랑 안 어울리는 사람이야. 난 오빠가 이걸 왜 하는지 모르겠어.” 파업이 지나고 한참 뒤, 김 피디는 그때 자신이 아내에게 한 답이 ‘경솔했다’고 판단했다. “그때 제가 ‘난 낙천적이잖아. 긍정왕이야. 나 같은 사람이 즐겁게 싸우는 거 보여주려고 해. 난 상처 안 받을 거야’ 그랬는데, 아니더라고요.” 김 피디는 “이 싸움은 어떤 식으로든 개인의 영혼에 상처를 남긴다고 본다”고 했다.
-사쪽의 징계, 전보 같은 조치가 위축 효과를 발휘하는 거죠.
“지난해 어떤 후배가 제가 있는 자리에서 저를 가리켜 ‘노조 집행부 했다고 사람을 이렇게 바보로 만들 수 있느냐’며 한탄하더라고요. 그때 정신이 들었어요. 파업 뒤 내가 불이익 당하는 것만 지켜본 후배들이 나중에 노조 활동에 나서려고 할까? 비록 연출은 못 하지만 나는 내가 잘할 수 있는 다른 일을 찾아서 즐겁게 할 수 있다, 노조 집행부를 한다고 사람이 바보가 되는 건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여행 다니고 글 쓰고 책 쓰면서 명랑하게 지내는 걸 티 내려고 했죠.”
그는 연출에서 밀려난 뒤 “투쟁의 일환”으로 글을 썼다. ‘파워 블로거’가 되자, 블로그에 올린 영어 공부법 글을 본 출판사에서 연락이 왔다. 그렇게 올해 초에 낸 책 <영어책 한 권 외워봤니?>(위즈덤하우스)는 발간 석달 만에 10만부 39쇄를 찍은 베스트셀러가 됐다.
■ ‘정윤회 아들 캐스팅 의혹’ 폭로하다
-주조정실에서 일하는 건 어땠나요?
“엠비시를 욕하는 분들 다수가 이미 뉴스는 잘 안 보실 겁니다. 그런데 저는 다 봐야 했어요. 새벽 5시 뉴스, 새벽 6시 <뉴스투데이>, 오전 9시30분 <생활뉴스>, <정오뉴스>, 오후 4시 뉴스, <뉴스엠>, <이브닝뉴스>, <뉴스데스크>, 심야 마감 뉴스까지. 처음에는 충분히 견딜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리고 자세히 보면 재밌는 부분도 분명 있는데(웃음), 괴롭더라고요. 회사가 내린 징벌이 뉴스를 보는 거구나 싶었어요.”
지난해 ‘최순실 게이트’가 터졌을 때조차 문화방송 뉴스는 당시 정부·여당의 해명을 퍼나르는 데 급급했다. 지난해 11월 전국언론노동조합과 공공미디어연구소가 전국 만 19살 이상 성인 1천명을 대상으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 뉴스를 가장 많이 접하는 방송사’를 물은 결과, 응답자의 45.7%가 <제이티비시>(JTBC)를 1순위로 꼽았다. 공영방송인 <한국방송>(KBS)이 16.3%로 2위를 차지했다. 문화방송을 꼽은 응답은 5.8%로, 티브이조선(7.5%), 엠비엔(7.1%)보다 낮은 5위를 기록했다.
심지어 경영진이 국정농단에 참여한 정황이 드러났다. 김 피디가 앞장선 ‘내부 고발’이었다. 정윤회씨 아들 배우 ㄱ씨가 지난 2년 동안 문화방송 드라마에 조역으로 내리 출연한 일이 안광한 당시 사장과 관련 있다는 폭로였다. 사쪽은 “허위 사실”이라고 부정했다.
-경영진에 더 찍힐 수도 있는 일이었는데, 어떻게 폭로하게 됐나요?
“나는 이미 찍혔잖아요. 다른 피디들에게는 ‘내가 다 안고 갈 테니, 나서지 말라’고 얘기했어요.”
-가장 먼저 회사 건물 안에서 사장 퇴진 구호를 외치고, 그 모습을 페이스북에 생중계한 것도 비슷한 이유였나요?
“지난 5년 동안엔 ‘저들에게 큰 빌미를 주지 말자’는 고민이 있었어요. 내가 다시 징계를 받게 됐을 때, ‘김민식이 소영웅주의에 빠져서 결국 저렇게 될 줄 알았어’ 이런 말 듣기 싫었거든요. 그런데 ‘이보다 나빠질 수 있는 게 뭘까’라고 생각하니까 정말 뭐라도 해야 하겠더라고요. ‘물러나라’ 퍼포먼스를 처음 할 때는 정말 찌질하게 화장실 갈 때마다 한 번씩 외쳤어요. 이상하게 위축되더군요. ‘김장겸은 물...러...나..(목소리가 조금씩 작아짐)’ 스스로 생각해도 너무 찌질한 겁니다. 그래서 그다음에 외칠 때는 자세를 바꿔봤어요. 어깨를 딱 펴고 외쳐보니까, 구호가 더 크게 울려퍼지더군요. 그랬더니 제가 속한 부서의 부장이 와서 ‘하지 마시라. 윗사람이 싫어한다’고 하더라고요. 위에서 신경을 써? 그런 생각에 더 열심히 하기 시작했어요. 경위서를 내라고 하더군요.”
-페이스북에 생중계한 건 싸움 수위를 높인 거네요.
“그렇죠. 회사가 어떻게 대응하는지를 보고, 뭘 하든 그것보단 하나 더 한다는 입장입니다. 아내는 회사 대응이 현명하지 못하다고 하더군요. 저 혼자 떠들게 놔두면 혼자 또라이 되고 말았을 거라고요. 그 말을 듣고 생각해보니까, 제가 처음 외칠 때 주위 반응이 거의 없었어요. 처음엔 내가 구호를 외치면 다른 층에서 함께 외칠 줄 알았는데 아니었던 거죠. 회사가 뭐라고 하니까 더 화가 나서 라이브 방송을 했어요.
라이브 방송도 원래는 한 번만 짧게 하려고 했는데, 방송을 시작하자마자 다른 페이스북 이용자들이 실시간으로 ‘좋아요’를 누르는 걸 보고 3분 넘게 방송했어요. 응원을 받으니까 더 힘이 난 거죠. 그때 느낀 게, 아 바깥에서 다들 기다리고 있었구나. 엠비시를 보면서 너무 답답한데, 안에서 이런 일을 하는 걸 보고 싶었구나.”
-문화방송 상황이 지금보다 더 안 좋아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요?
“얼마 전에 친한 배우에게 전화가 왔어요. ‘감독님 요즘 데모한다면서요? 회사에서.’ 제가 대기발령을 받았다는 기사를 보고 연락한 거죠. ‘대통령도 바뀌었는데, 왜 아직 데모를 하고 그래요. 그냥 가만히 있으면 잘 될 텐데~’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설명했어요. 박근혜 대통령이 물러나기 전에 이 정권이 마지막으로 한 통치행위 중 하나가 문화방송에 임기 3년짜리 사장을 선임하고 간 거다. 우리가 가만히 있으면 3년 동안 문화방송 뉴스는 그대로 나가게 된다. 국민들이 지난 4년 문화방송 뉴스가 이상했던 건 ‘박근혜 시절이니까 그랬겠지’ 생각해도, 새 대통령이 왔는데 그대로면 사람들이 진짜 엠비시를 포기할 거다. ‘아 저것들은 정말 안에는 다 바뀌었구나. 손석희 아나운서도 제이티비시로 옮겼고 남은 건 부역자들뿐이구나’ 생각할 거다. 그런데 안에서도 우린 싸워왔고 아직 싸우는 사람들이 있다. 뭐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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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비시를 안아주세요
처음 그와 2시간가량 인터뷰하기 전에, 나는 그가 공영방송을 망친 사장과 싸우는 줄 알았다. 절반만 맞았다. 더 큰 상대가 있었다. 그는 자신 안의 패배감과 무력감, 절망과 공포를 몰아내려고 분투하고 있었다. 여기서 물러나면 국민들이 더 이상 문화방송에 기대를 갖지 않을 것이란 두려움이 컸다. “그동안은 ‘어쩔 수 없었다’는 핑계가 있었죠. 하지만 지금 사장마저 그대로 놔두면 그다음엔 정말 씻을 수 없는 패배감에 빠져들 거라고 생각해요.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면 된다’고 생각하는데, 저들은 절대 먼저 물러서지 않고, 오히려 자신들의 입지를 공고히 할 거라고 봐요. 그래서 이 순간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싸우는 사람들은 이미 많이 있고요. 지금 생각했을 때 필요한 건 그냥 누군가 먼저 총대를 메고 나가는 거라고 생각해요.”
김 피디를 잘 아는 문화방송의 다른 피디가 그에 대한 기억 하나를 들려줬다. 2011년 김 피디가 노조 집행부를 맡기 직전의 일이다. “‘너 노조 부위원장을 한다는 설이 있던데 사실이냐?’고 물었더니, 김 피디가 이렇게 답하더라고요. ‘저는 엠비시에 입사해서 너무 행복하게 일했고, 엠비시란 이름으로 받은 게 너무 많고 고마운데, 제가 받은 것 가운데 조금이라도 엠비시에 돌려줘야 하지 않을까요?’”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일관되게 ‘공영방송 정상화’와 정권의 방송장악에 맞서다가 해고된 언론인 복직을 약속했다. 문 대통령 취임 두달 남짓, 문화방송에서는 박근혜 정권이 몰락 직전 선임한 사장을 비판하다 해고 위기에 몰린 피디가 등장했다. 사쪽은 최근 김 피디 외에도 사장 비판 발언·포스터를 외부에 공개했다는 이유로 권성민 피디, 박소희 기자에게 ‘경위서’ 제출을 요구했다. 문화방송에 다시, 바람이 분다.
김효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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