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신대에 희귀한 역사 자료와 문화유산을 기증한 서대숙 하와이대 명예교수(왼쪽)와 김재홍 규암김약연기념사업회 사무총장. 21일 기증식을 앞두고 20일 오전 대한민국역사박물관 옥상에서 북한산과 경복궁을 배경으로 카메라 앞에 섰다. 두 사람은 “아직도 제대로 조명되지 않은 북간도와 만주 일대 항일투쟁사의 자취들을 후학들이 온전히 밝혀 통일시대를 여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이 노학자의 별명은 ‘북한박사’ ‘김일성박사’다. 북한사를 연구해온 국내외 학자들치고 그가 쓴 논고나 수집자료를 참고하지 않은 이들은 없다. 1967년 미국 컬럼비아대 박사학위 논문 <한국 공산주의 운동>을 낸 이래 한국 공산주의 운동사 연구를 개척하며 김일성 북한 주석의 항일 경력을 사료로 논증한 재미역사학자 서대숙(86) 하와이대 명예교수가 바로 그다. 국내외 북한사 연구자들이 탐내는 희귀자료를 많이 갖고 있기로 유명한 서 교수가 평생 모은 만주 조선의 항일 공산주의 운동사와 북한사 관련 사료들을 후학들에게 내놓기로 했다. 김일성의 만주 항일 행적과 해방 전후 북한 연표 등을 담은 과거 문헌, 사료 7000여점을 한신대에 순차적으로 제공하기로 한 것이다. 만주 간도의 독립운동가였던 규암 김약연(1868~1942) 목사의 증손자로 북간도 사료를 수집해온 김재홍(69) 김약연기념사업회 사무총장도 1900년대 지은 현지 함경도식 한옥을 한신대 쪽에 내놓기로 하며 뜻을 보탰다. 기증식이 열리기 하루 전날인 20일 서울 광화문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두 사람을 함께 만났다.
서 교수는 “지난 항일역사를 제대로 공부해야겠다는 정신을 후학에게 심어주고 싶다”며 자료를 기증한 이유를 설명했다. “본적은 함경북도 회령이나, 북간도는 진짜 고향입니다. 유년 시절 김약연 목사의 가르침을 받으며 컸고, 여기서 목회하고 해방 뒤 한신대를 세운 김재준 목사한테 세례받았어요. 은혜를 생각하다 보니 평생 써먹은 사료들을 한신대에서 잘 정리해 통일을 위해 썼으면 하는 소망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의 사료 기증은 2009~2011년 독립기념관에 독립운동사 관련 자료 3500여점을 전한 데 이어 두번째다. 한신대 기증 자료엔 특히 만주 일대의 항일무장투쟁 사료와 북한 초창기 관련 사료들을 중심으로 러시아어·중국어 등으로 적힌 원문 자료도 다수 포함됐다. 그는 이번 한국 방문길엔 만주 빨치산 투쟁과 북한 초기사를 담은 희귀 문헌 2종을 우선 들고 왔다. 1937년 만주국 치안부가 펴낸 <만주 공산비의 연구>는 당시 김일성 빨치산부대의 작전계획과 전투 상보, 빨치산 생활상 등이 세세하게 기록된 일급사료다. 1950년대 조선중앙통신사에서 펴낸 <해방 후 10년 일지>는 북한 정권이 해방 10년간 주요 정치 사회적 사건과 흐름을 정리한 연표로 초창기 북한사를 당대 시각으로 정리했다는 점에서 역사적 가치가 높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자택에서 연구 자료 정리에 몰두해왔다는 서 교수는 “콘크리트에 씨 뿌리는 심정으로 서재의 사료들을 내놓는다”고 털어놨다. “제 논고나 자료들을 받아서 아카이브를 만들고 통일문화연구소도 세워 통일 연구를 위해 활용하겠다고 하더군요. 제 서재에 쌓인 항일 공산주의 관련 사료들을 수년간 공개, 공유하면서 아낌없이 도울 겁니다. 더욱 깊이 있게 북한과 항일운동사를 연구할 후학을 키우고 싶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김재홍 총장이 2005년 사들여 관리하다 한신대 쪽에 내주기로 한 명동 장재촌의 8칸 기와집도 의미가 적지 않다. 북한을 제외한 지역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함경도식 전통가옥으로 집 주변은 시인 윤동주가 어릴 적 시심을 키웠던 공간이기도 하다. 그는 “태극기와 무궁화, 기독교를 상징하는 십자가를 새긴 막새기와로 지붕을 이어 북간도 항일독립 정신을 느끼게 하는 건물”이라며 “학교 쪽과 국내 대학생들의 역사체험 공간으로 쓰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전했다.
글·사진 노형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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