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9년 영화 <부초> 촬영 당시의 감독 오즈 야스지로. 카메라의 높이를 인물이 다다미에 앉아 있을 때의 눈높이에 맞춘 ‘다다미 숏’으로 유명했다.
[토요판] 혼수래 혼수거
⑦ 영화감독 오즈 야스지로(1903~1963)
“남녀가 단둘이 저녁 식사를 세번 하고도 관계에 진전이 없다면 단념하는 게 좋다.”
어디선가 한번쯤 들어본 듯한 이 말을 한 사람은 일본의 영화감독 오즈 야스지로다. 가족과 결혼 이야기의 대가로, 서양에 제인 오스틴이 있다면 동양에는 단연 오즈 야스지로가 있다. 24살에 처음 감독으로 데뷔해 죽기 전까지 모두 54편의 영화를 만들었는데 주로 가족의 장례와 결혼·일상 등을 다뤘다. 딸의 혼사를 겪는 가족 이야기는 그가 특히 즐겨 다루는 소재였다. 평생 독신이었던 제인 오스틴처럼 일본 감독 오즈 야스지로도 평생 아내를 맞지 않았다. 딱히 독신주의자는 아니라고 강조했다고.
가족 멜로드라마를 주로 그렸지만, 지배적인 정서는 ‘쓸쓸함’이다. 유작 <꽁치의 맛>에서 딸을 시집보내고 홀로 남은 아버지는 술에 취해 “아, 외톨이가 되었군”이라고 읊조린다. <만춘>에서도 영화는 딸이 떠나고 혼자 거실에서 사과를 깎던 아버지가 고개를 떨구는 장면으로 끝이 난다. 가족을 이뤘다면 필시 ‘딸 바보’였을 것이다. 홀아비 아버지가 혼자 남겨지길 두려워해 결혼하기 싫어하는 딸, 그리고 딸을 사랑하지만 시집보내려고 하는 아버지의 테마는 그의 주요작들에서 반복된다.
오즈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전성기에 해당하는 시기에 만들어진 계절 시리즈 <만춘>(1949), <초여름>(1951)과 가장 유명한 <동경 이야기>(1953), 유작인 <꽁치의 맛>(1962)을 차례로 보면 당황스러워진다. 모두 다른 영화인데 같은 배우가 아버지로 출연하고 딸이었던 배우는 다른 영화에서도 또다시 딸 혹은 며느리로 등장한다. 실제로 배우 류 지슈는 20대 시절부터 50대가 될 때까지 오즈의 거의 모든 영화에 출연했다. 딸 역할은 주로 배우 하라 세쓰코가 연기했다. 오즈의 영화에서 하라는 늘 우아하고 단정한 모습으로, 겸손하고 친절한 인물을 연기해 ‘영원한 처녀’라는 별명까지 얻게 된다. 재미있는 점은 ‘오즈의 페르소나’ 류 지슈가 아버지 역할을 할 때, 시집보내야 하는 딸(혹은 며느리)은 하라 세쓰코라는 것이다.
1903년 12월12일에 태어난 그는 기묘하게도 정확히 자신의 60번째 생일이 되는 1963년 12월12일에 생을 마감했는데, 죽기 직전에야 하라를 짝사랑해 왔다고 지인에게 실토했다. 하라 또한 평생 독신이었다. 오즈가 간염으로 죽자, 곧바로 영화계에서 은퇴해 2015년 95살의 나이로 죽을 때까지 오즈의 영화에 자주 등장했던 가마쿠라에서 은둔의 생활을 했다. 세간에 그들의 관계에 대한 추측은 많았지만 밝혀진 것은 없다.
요즘 말로 하면 ‘초식남’ 정도 되려나. 오즈는 촬영 중에는 항상 면 모자를 썼고, 개인적인 자리에서는 중절모를 쓰는 ‘모던 보이’였다. 또 좋아하는 식당의 이름과 약도를 적어둔 ‘식도락 수첩’을 따로 들고 다녔다고 한다. 중일전쟁에 때 징집돼 중국을 전전하던 당시의 일기에 “달이 보기 좋다. 꽁치가 먹고 싶습니다”라고 쓴 걸 보면 그 엉뚱함에 미소 짓게 된다. 묘비에도 단 한 글자만 남겼다. 없을 ‘무’(無).
김지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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