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 칼럼니스트인 은하선 작가가 <까칠남녀>(교육방송)에서 강제 하차한 것을 두고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까칠남녀> 제작진은 지난 13일 패널로 출연 중이던 은하선 작가한테 종영 2주를 남긴 시점에서 하차를 통보했다. 17일 <교육방송>이 밝힌 이유는 두가지다. 첫번째는, 은 작가가 성소수자 특집에 항의하는 이들을 향해 자신의 에스엔에스에 “까칠남녀 피디님 연락처가 바뀌었다”며 담당 피디의 연락처가 아닌 퀴어문화축제 문자 후원 번호를 올린 일이다. 해당 번호로 문자를 보내면 3000원이 후원금으로 빠져나가기 때문에 교육방송은 “법률 검토 결과 이는 사기죄에 해당하는 일이라는 답변을 받았다”고 밝혔다. 교육방송은 또 은 작가가 2016년 1월 자신의 페이스북에 ‘사랑의 주님’이라는 제목으로 십자가 모양의 자위 기구 사진을 게시한 일도 “공영방송 출연자로서는 적절하지 않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은하선 작가가 생각하는 하차 이유는 다르다. 그는 14일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교육방송>이 너무나 명백하게 성소수자를 탄압하는 것에 대해 응답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실제로 은하선 작가는 지난해 12월25일과 1월1일 두차례 나간 ‘성소수자 특집’ 방송 전후로, 반동성애 성향의 전국학부모교육시민단체 연합회 등으로부터 하차 요구를 받아왔다. 은하선 작가는 “처음에는 방송 내용에 대한 항의였는데 어느 순간 개인에 대한 항의로 바뀌었다”며 “제작진이 여러 패널 중 유일하게 커밍아웃한 저를 하차시키는 것은 명백한 성소수자 탄압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최근에도 성소수자가 출연하거나 관련 이슈를 다루는 프로그램은 방송사 안팎의 제약을 받아왔다. 지난해 11월 <시비에스>(CBS)는 강연 프로그램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에서 강연한 대학성소수자모임연대 활동가에게 비난이 쏟아지자 한때 영상을 비공개로 전환시키기도 했다. 2012년 <케이비에스 엔>은 성전환자(트랜스젠더)들의 이야기를 듣는 토크쇼 <엑스와이 그녀>가 참교육어머니전국모임 등의 항의를 받자 1회만 내보내고 폐지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2015년 드라마 <선암여고탐정단>(제이티비시)에서 극중 여고생들의 키스신이 나오자 중징계인 ‘경고’를 내렸고, 레즈비언들의 삶을 담았던 <드라마 스페셜-클럽 빌리티스의 딸들>은 다시보기가 중단됐다.
물론, 과거보다 사정이 좀 나아진 것은 사실이다. 커밍아웃해서 7년간 방송을 못했던 홍석천이 각종 예능프로그램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며 인기를 얻고 있고, 동성애자가 나오는 드라마도 늘었다. 동성애는 1995년 <두 여자의 사랑>을 시작으로 <연인들의 점심식사>(2002) 등 주로 단막극에 등장했는데, 2003년 김수현 작가가 쓴 <완전한 사랑>을 시작으로 우리 주변에 사는 인물로 스며들었다. 당시 실제 커밍아웃한 홍석천이 맡은 홍승조는 애인 때문에 괴로워하는 지나(이승연)에게 따뜻한 조언을 건네고 힘이 돼주는 친구로 나와 당시 여자들 사이에 게이 남자친구를 선망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기도 했다. 급기야 2006년 <하이에나>(티브이엔)에서는 잘생기고 다재다능한 동성애자가 여심을 흔들었고, 2016년 <굿와이프>에서는 양성애자를 연상시키는 여주인공이 나오기도 했다. 은퇴한 한 원로 피디는 “‘1980~90년대는 기획 단계에서 언급만 해도 미친놈 취급을 받았다. 성정체성을 괴로워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며 “최근에는 변두리 인물이 아니라 주인공으로도 나오는 등 달라진 시선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번 ‘은하선 하차사건’은 이런 나름의 성과를 바탕으로 야심차게 기획된 작품에서 벌어졌다는 점에서 상징적인 사건이다. 젠더 이슈에 대해 파격적이고 진솔한 목소리를 들려준 <까칠남녀>마저도 실제론 성소수자들을 화제몰이용 아이템으로 봤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탓이다. 은 작가는 1회부터 한번도 빠지지 않고 출연했고, 방송에서 가장 솔직한 이야기를 들려주며 프로그램의 정체성을 확고히 한 출연자다. 한 케이블 텔레비전의 예능 피디는 “동성애자들은 그들의 생활 등 여러가지 면에서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 좋다. 대부분 솔직하게 얘기해서 화제가 많이 된다. 과거처럼 섭외 자체를 막는 경우는 별로 없지만, 출연 뒤 논란이 되면 가장 먼저 교체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성소수자들에게 공감하는 제작진들도 결정적인 순간에는 `소수자'로서만 취급한다는 것이다. 행동하는성소수자인권연대(이하 행성인)는 16일 성명을 내어 “<까칠남녀>가 보여 온 성평등의 관점은 많은 성소수자들로 하여금 방송에 신뢰를 갖도록 했고, 실제로도 방송에 나온 성소수자들의 모습은 당사자들에게 힘을 줬다. 이런 와중에 성소수자 패널 하차 결정은 ‘젠더 토크쇼'를 표방하며 성차별과 고정관념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온 프로그램의 의의를 저 스스로 무너뜨린 것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무엇보다 이 사건이 다른 방송사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지적이 많다. 황진미 평론가는 “혐오세력들에게 우리가 얼마나 열심히 하느냐에 달렸다는 교훈을 안겨준 사건이다. 이렇게 열심히 항의하면 방송사가 응답한다, 앞으로도 계속 이러자는 확신을 줬다”고 말했다. 한 지상파 드라마 피디도 “<까칠남녀>에 양성애자인 은하선씨가 출연해 자신의 성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고 우리나라 방송이 여기까지 왔구나 반갑기도 하고 놀랍기도 해서 시청자 반응을 살폈다”며 “교육방송이 은하선씨를 끝까지 지켰다면, 한발짝 더 나아가 성소수자에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하는 방송 환경을 만드는데 일조했을 것 같다. 지상파에 견줘 덜 대중적인 교육방송도 동성애 혐오자들의 항의에 꼬리를 내리는 걸 보면, 앞으로 대중적인 방송사는 엄두를 내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번 사태를 계기 삼아 제작진들이 좀 더 ‘영리한’ 방법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무조건 성소수자를 등장시킨다고 좋은 방송, 좋은 취지는 아니라는 것이다. 방송에 그들이 자연스럽게 녹아들게 하고, 시청자의 반발을 줄일 수 있는 전략을 짜야 한다는 지적이다. 한 예능 피디는 “<까칠남녀>의 경우 동성애에 아직도 거부감이 있는 시청자들이 있는데, 이를 예능식으로 가볍게 소화하면서 거부감이 더 커진 것 같다”며 “아무리 과거보다 나아졌다 하더라도 여전히 방송사 안팎으로 혐오세력이 존재하는 만큼, 조금씩 거부감을 줄여나갈 수 있는 방식을 택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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