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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후려치기 하지말라” 방송·미술업계 갑질 고발 꿈틀댄다

등록 2018-01-26 16:11수정 2018-01-26 17:02

방송작가 ‘PD고발’ 글에 ‘미투’ 호응 이어져
″24시간 일하는 심부름꾼″ “밖에서는 정의로운 척”
미술업계 구인·구직 공간에도 고발글 올라와
“월급 제대로 표기해달라” 근무조건 개선 요구
깊은 우물에 돌덩이를 하나 던졌다. 파동이 일었다. 돌덩이는 24일 ‘KBS구성작가협의회’ 누리집에 올라온 “내가 겪은 쓰레기 같은 방송국, 피디들을 고발합니다”란 글이다. ‘인니’라는 필명의 글쓴이는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와 방송업계 노동자들이 만나 처우 논의를 하는 자리에 이런 내용도 전해지면 좋겠다”며 SBS <그것이 알고싶다>, 뉴스타파 <목격자들>과 같은 시사고발 프로그램에서 일했던 경험담을 털어놨다. 이 글은 누리꾼들에게 널리 공유됐고, 방송계의 실상을 적나라하게 전하면서 충격을 줬다.

방송작가 업계보다 조금 먼저 업계의 부조리함을 지적하고 나선 곳도 있다. 미술 구인·구직업계다. “최저시급도 못 주면서 노동력을 ‘후려치기’하지 말아달라”가 미술업계 구직자들의 요구다. 이들은 ‘함량 미달’인 구인글에 정면으로 맞선다. 월급을 명확히 기재하라고 지적하고, 근로계약서 작성 등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한다. “나도 겪었다”며 더 이상 참지 않고 말하기 시작한 그들의 이야기를 상세하게 모아봤다.

KBS구성작가협의회 누리집에 처음 올라온 고발글. KBS구성작가협의회 누리집 갈무리
KBS구성작가협의회 누리집에 처음 올라온 고발글. KBS구성작가협의회 누리집 갈무리

■ “24시간 일하는 나는 심부름꾼이었다” “전태일 열사의 마음을 안타깝게 한 평화시장의 여공들이 생각난다.” 처음 방송작가 내부고발 글을 올린 ‘인니’는 24시간 심부름꾼으로 일하는 자신과 만성 두통에 시달리는 동료를 보며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나의 사례가 특수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직원처럼 상주해 일하면서도 보험은커녕 계약서 한 장 요구하기 힘든 작가들의 현실이 너무 슬프다”며 “10여년 전 SBS에서 막내작가 한 분이 본사 옥상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 이후에도 여전히 문제점은 달라지지 않았다”고 토로했다.

“그곳에선 24시간 일을 한다. 6주 중 기획주인 첫 주만 10시쯤 출근해 7시쯤 퇴근하고, 2~5주엔 밤낮도, 주말도 없이 일을 한다. 당연히 수당이고 뭐고 없다. 밥 심부름에 커피 심부름이 주 업무고, 기껏 커피를 사왔더니 이거 말고 다른 메뉴 먹고 싶다는 선배의 말에 도로 내려가 다른 것을 사오기도 했다. 글을 쓴다는 알량한 자존심은 내려놓아야 하는 곳이다. 나는 심부름꾼이었다.”

“밖에서는 정의로운 척, 적폐를 고발하겠다는 피디들이 내부의 문제엔 입을 조개처럼 꾹 닫았다.”

“그 피디가 한 말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여기는 똑똑한 작가가 아니라 말 잘 듣는 작가를 원하는 데야. 그렇게 똑똑하게 굴 거면 여기서 일 못 해. 다들 그렇게 일해왔고, 그게 여기의 규정이야.’ <그것이 알고싶다>가 적폐 청산을 부르짖을 때마다 나는 웃긴다.”

“‘사회 정의를 지키는 일인데’, ‘크라우드 펀딩으로 돈이 넉넉지 않아서’, 그 제작진은 이런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런데 나는 물어보고 싶다. 그럼 당신들도 나만큼 최저임금도 못 받으면서 일하나? 그건 분명 아니었다. 갑질을 고발하는 그들이 막내작가들에게 갑질을 하는 형국이 아닌가.

“아직도 기억이 남는 건 EBS에 있을 때다. 나의 담당 피디는 아니었지만, 같은 부서에 근무하던 어떤 피디의 컴퓨터 배경화면은 백남기 농민의 사진이었다. 그는 배경화면에 'Pray for Korea'라고 적어놓았다. 하지만 당시 같은 부서에 근무하던 모든 막내 스태프들은 그 피디의 조연출과 막내작가를 위해 먼저 기도했다. ‘야, 너는 그래서 정규직이 안 되는 거야’, ‘야, 내가 이런 것까지 해야겠냐?’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던 그 피디의 폭언에 매일 눈물짓는 그들의 마음을 헤아렸기 때문이다.”

“프리랜서라면 그에 걸맞게 유동적으로 움직이게 해줘야지, 대체 상근은 왜 시킨단 말인가? 인격적으로 존중해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고, 그 외 일한만큼 정당한 임금을 지불해야 당신들이 말하는 사회 정의에 맞는 거 아닌가? 그러면서 파업이니 뭐니, 권력에 희생 당한 약자인 척 하는 당신들이 웃긴다. 당신들은 최소한 먹고 살 걱정은 없으니 그런 것도 하겠지. 나는 당신들의 착취로 당장 먹고 살 일이 아쉬워 사회에 관심조차 주기가 어렵다.”

노동자의 비참한 선택을 조명해야 할 언론이 자신들의 치부가 두려워 눈을 감았다. 가끔 나는 생각한다. 전태일 열사처럼 내 몸에 불이라도 지르고 방송국 앞을 뛰어다녀야 사람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줄까, 방송 노동자의 처지가 개선될까, 하고. 아직 용기가 없어 실천에 옮기지는 못했다. 그렇게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하지 않는다면, 정부도 외면한 이 문제를 누가 해결해 줄 수 있을까?”

-인니 ‘내가 겪은 쓰레기 같은 방송국, 피디들을 고발합니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 “나도 겪었다”…‘#미투’ 고발 움직임 확산

파문이 번졌다. 이 고발 글엔 “나도 그런 경험이 있다”는 공감과 “글쓴 분의 용기에 박수를 드린다”는 응원 댓글이 이어졌다. 헐리우드 내부 성폭력을 고발했던 ‘#미투’ 해시태그를 이용해 자신의 경험담을 털어놓기도 했다.

‘전작가2’라는 필명을 쓴 글쓴이는 PD의 △고압적인 언행 △업무 태만 △무분별한 욕설 추임새 △성희롱 △페이깎기 등을 꼬집었다. ‘오르골’이란 글쓴이도 “프리랜서라는 말은 편할 때(만) 갖다 붙인다”라고 비판하며 “보람이 밥 먹여주지 않는다. 아무리 일을 잘해도 작가는 제작비 1만~20만원 때문에 그냥 버려지는, 앞이 보이지 않는 직업”이라고 밝혔다.

“피디가 회식할 때마다 불러내고 밥 값 계산을 안한다”

“피디가 막내 작가를 뽑는데 제 앞에서 이력서를 보면서 작가들 사진을 보고 외모를 비하한다”

“섭외한 출연자가 조금 늦게 오는 상황이었는데 메인 피디가 메인 작가님을 벽쪽으로 몰아세우고 “확 그냥”이라며 때리려는 리액션을 취했다

“개편으로 프로그램이 끝났는데도 피디가 자꾸만 개인적으로 연락을 한다

-김작

자신을 20년차 작가라고 소개한 ‘투영스’란 글쓴이는 “이제는 말하고 싶다”는 글을 올려 MBC, JTBC2와 일했던 경험을 털어놨다. 그는 “이건 비단 한 방송사의 문제가 아니다”라며 “자신들의 치부는 절대로 드러내지 않는 방송국 내부의 대대적인 조정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본다”고 주장했다. ‘작가도노동자다’란 필명의 글쓴이는 “우리가 왜 프리랜서입니까?”란 글에서 “프리랜서로 뽑아놓고 왜 상근을 시키냐. 다른 곳 알바도 못하게 하는데 왜 작가를 직원으로 채용하지 않느냐”고 항의하며 “최근 TBS에선 비정규직, 프리랜서들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밝혔다. 이게 일회성으로 끝나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MBC피디들의 갑질에 혀를 내두르는 이유는 너무나도 많아서 밤새워 이야기 해도 모자를 판입니다.

(*저는 예능 프로그램을 했기 때문에 예능 상황 위주로 서술합니다. )

1. 회식 때 연예인 불러서 회식비 내게 하고

2. 회식 때 신인가수 불러서 노래 부르게 하고

3. 회식 때 작가 무릎 위에 피디가 앉고

4. 새벽 촬영이 있는 날이면 작가보고 전화해서 깨우라고 하고

5. 새벽에 술마시고 막내작가 집에 찾아와서 나오라고 전화하고 추태부리고(유부남 피디입니다.)

6. 작가를 능력으로 채용하거나 부당한 일로 해고 하는 것이 아니라, 외모를 보고 뽑고, 해고할 때는 이유도 없이 그냥 나가라고 하고.

7. 외주제작사 시사 때의 욕설과 폭언

8. 더러운 뒷거래

너무 많아서 나열하다가 지치겠지만 썩을대로 썩었습니다.

-투영스

저는 MBC 파업을 옆에서 지켜보면서 참으로 많이 비웃었습니다. 어찌 감히 니들 입에서 정의란 단어가 튀어나오느냐라고요. 평소 갑질이며 인격 모독은 다 하던 적폐들이 바로 그 자신 아닌가요? 파업이 끝나자마자 돌아와서는 자기 자식 학자금부터 신청하고 있는 태평한 양반들. 그들이 각성하길 기대하라고요?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들이 갑질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도록 제도와 시스템을 바꿔야 합니다. 무엇보다 우리가 국가로부터 ‘노동자’로 인정을 받기만 해도 상당 부분이 개선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작가도 노동자다’

미술업계 한 구직자가 올린 ‘강사구인글 해석본’. ‘네오룩’ 갈무리
미술업계 한 구직자가 올린 ‘강사구인글 해석본’. ‘네오룩’ 갈무리

■ “월급 제대로 명기해달라”…정당한 고용계약서 요구 시작한 미술업계

방송작가보다 앞서 내부고발과 항의가 시작된 곳도 있다. 바로 미술업계다.

미술업계 대표적인 구인구직 사이트인 ‘네오룩’에선 지난해 12월부터 월급을 기재하지 않거나 근무조건이 지나치게 가혹한 구인글이 올라오면 그 점을 지적하는 답글이 달린다. ‘용모 및 품행이 단정한 여성을 구한다’는 공고글엔 “용모가 업무와 무슨 상관이냐”고 항의 글이 올라온다. “최저임금 (월) 157만 3770원 미만은 강사 구인글 올리지도 마세요”, “어린 청춘들 부려먹을 생각 좀 하지마요. 배웠다는 사람들이”란 글도 찾아볼 수 있다. ‘관행’이란 명목으로 노동력을 갈취하는 업체를 더이상 가만히 보고있지 않겠다며 이용자들이 자발적으로 시작한 일이다.

항의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건 지난해 겨울부터다. ‘김예쁘리나’란 글쓴이는 지난해 12월 “‘(임금) 면접 후 협의’는 최저가로 후려치기하려고 써놓은 것 아닌가. 미술대학 학위 받아서 후려치기 가격으로 일하기 싫다. 정당하게 원하는 조건을 말하고 합당한 가격을 기재하라”고 요구했다. ‘열정페이’ 경험담도 올라왔다.

‘네오룩’이용자들은 급여 등이 기재돼 있지 않은 글에 일일이 답글을 달며 정확한 근로계약사항 명시를 요구하고 있다. 네오룩 갈무리
‘네오룩’이용자들은 급여 등이 기재돼 있지 않은 글에 일일이 답글을 달며 정확한 근로계약사항 명시를 요구하고 있다. 네오룩 갈무리

“급여를 물어봤더니 일도 못하는데 그런 것을 물어볼 군번이냐, 너는 돈받고 배우고 있는 입장이다, 급여 얘기하니 정이 떨어진다 등등 온갖 터무니없는 이야기들을 들었습니다.

일할 때 근무조건을 아는 것은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너무나 당연히 누려야할 권리인데 급여, 인턴기간 물어봤다가 욕 한바가지 먹었습니다.

다섯 번 넘게 물어봤지만 끝내 정확한 급여와 인턴기간은 알려주시지 않았구요. 집요하게 물어본 끝에 80만에서 120만원 생각하고 있고 너가 하는 것 봐서 알아서 하겠다. 이런 말들만 하셨구요.

이 외에도 업무할때 미술하는 여자애들이 머리가 맹해서 시집을 잘간다더라, 미대나온 여자애들 머리나빠서 고용하지않으려했다 등등 온갖 성차별적 발언과 편견 섞인 불쾌한 발언들 서슴지 않았구요.”

-알렉스 ‘갤러리 인턴 실황’

‘LUCY’란 필명의 글쓴이는 △구인 공고 작성 시 급여 범위를 제시할 것 △근무 조건 개선 △근로계약서를 작성하고 퇴직금을 지급할 것 △개인정보인 이력서와 자소서는 안전하게 파기할 것을 요구했다. 그는 “강사를 지원하고자 하시는 분들은 터무니없는 조건에 수긍하며 자신을 깎아내리지 말라. 요구할 것은 요구하셨으면 좋겠다”고 했다. 또 구인글을 쓰는 원장들에겐 “본인이 제시한 근무조건이 역으로 자신에게 주어진다면 일하시겠냐”라며 “경제상황이 좋지 않다는 것은 이해하지만, 터무니없는 급여 제안을 하실거라면 강사를 모집하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반문했다.

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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