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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역사는 침묵 깬 여성들의 목소리로 바뀐다

등록 2018-02-09 19:38수정 2018-02-09 19:57

[토요판]김선영의 드담드담
미국드라마 <컨퍼메이션>
사진 에이치비오
사진 에이치비오

1991년, 미국 대통령 조지 부시는 연방대법관 후보로 흑인인 클라렌스 토머스를 지명한다. 미국 역사상 두 번째로 흑인 대법관이 탄생하기 직전이었다. 전 국민의 눈이 인준 청문회로 쏠린 가운데 한 흑인 여성이 증인으로 나선다. 변호사 겸 법대 교수 아니타 힐은 과거 직장 상사이던 토머스가 그녀에게 저지른 성추행을 낱낱이 고발해 미국을 발칵 뒤집어놓았다. 비록 청문회 결과는 젠더 이슈를 인종 차별 이슈로 프레임 전환한 공화당측 전략에 의해 인준 통과로 마무리되었으나 힐의 증언은 수많은 여성들의 지지를 이끌어내며 성폭력 고발 운동의 새 역사를 썼다.

이 역사적 사건은 수차례 드라마와 영화로 만들어져 그때마다 다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1999년 <쇼타임> 드라마 <스트레인지 저스티스>는 국제 티브이 관련 시상식을 휩쓸며 큰 반향을 몰고 왔고, 2013년 프리다 리 모크가 연출한 다큐멘터리 <아니타>는 힐의 실제 육성을 담아내 큰 주목을 받았다. 최근의 사례는 2016년 <에이치비오>가 방영한 <컨퍼메이션(원제 ‘Confirmation’)>이다. 아니타 힐의 증언 25주년을 기념하는 이 작품은 당시 유엔여성기구의 성평등 캠페인 ‘히포시(HeforShe)’를 비롯해 전 세계에서 재부상하기 시작한 새로운 페미니즘 물결 안에 위치하고 있다.

드라마는 클라렌스 토머스(웬델 피어스)의 방송 인터뷰와 아니타 힐(케리 워싱턴)의 사적 제보를 병행 편집한 도입부에서부터 남성 기득권사회에 맞서는 여성의 이야기가 중점이 될 것을 선언한다. 전원이 남성인 상원 법사위원회가 단체로 좌정한 청문회 풍경과 그 앞에 증인으로 앉은 아니타 힐의 대비도 이를 잘 드러낸다. 압권은 힐의 첫 증언 순간이다. 공적 발언권을 독점한 남성들의 세계에서 일생을 건 용기를 통해 겨우 발언 기회를 얻어낸 힐의 역사적인 증언은 매우 파워풀하게 연출된다. 10년 전 사건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목소리는 청문회장안에 점점 넓게 울려 퍼지고 이 생중계를 진지하게 ‘경청하는’ 시민들의 모습은 그 발언이 주는 무게와 파급력을 환기해준다.

물론 청문회의 결말은 패배였다. 실제 청문회 당시 중계 카메라가 아니타 힐을 오히려 검증당하는 죄인처럼 비췄듯이 힐의 증언은 끊임없이 의심받고 부정당한다. 힐이 거짓말 탐지기를 받는 모습과 또 다른 여성 증인이 침묵당하는 장면에서는 분노가 절정에 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야기는 또 다른 희망으로 이어진다. 대학으로 돌아온 힐이 연구실을 가득채운 응원의 편지와 만나는 순간은 현재 전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진행 중인 미투 운동을 예견한 듯하다. 실제로 아니타 힐은 미투 운동의 한 성과인 ‘할리우드 성폭력 척결과 직장 성평등 진작을 위한 위원회’에 첫 위원장이 됐다. 역사는 ‘침묵을 깬 여성들’로 인해 조금씩 바뀌고 있다. 이것이 <컨퍼메이션>의 진짜 결말이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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