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노을’ ‘옛사랑’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등 수많은 히트곡을 남긴 이영훈 작곡가가 세상을 떠난 지 10년이 됐다. “모든 이의 가슴에 숨어 있는, 잃어버린 아름다움을 되찾게 하는 음악을 만들고 싶다”던 이 작곡가의 바람은 시대를 뛰어넘는 명곡으로 남아 여전히 사랑받고 있다.
이 작곡가의 10주기 추모공연이 열린다. 27일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작곡가 이영훈’으로 열리는 공연은 고인과 함께 음악작업을 했던 이문세, 한영애, 윤도현, 김범수 등이 출연해 이 작곡가의 노래를 들려줄 예정이다. 추모공연을 기획한 이 작곡가의 아들 이정환(30) 영환뮤직 본부장은 “긴 시간을 뛰어넘어 아버지의 음악을 사랑해주신 분들을 위한 공연”이라고 말했다.
미국 뉴욕에서 정보통신기술(IT) 관련 일을 했던 이 본부장은 2년 전부터 대표인 어머니를 돕고 있다. 주변 사람들에게 아버지가 누구라고 말하거나, 아버지의 일에 관여한 적이 없다던 그는 “어머니도 힘에 부쳐 하시고, 10주기는 특별한 해인 만큼 나서서 일을 하게 됐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노래를 엮은 주크박스 뮤지컬 <광화문연가>도 그가 직접 챙겼다.
이 작곡가는 하루에 커피 40잔을 마시고, 담배 네 갑을 피우며 노래를 만들었다고 알려져 있다. 아들의 기억도 크게 다르지 않다. “아버지 방에 들어가면 늘 담배 연기가 자욱했어요. 재떨이에 담배꽁초가 수북이 쌓여 있고요. 진짜로 커피 40잔을 마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많이 마시긴 하셨죠. 그리고 작곡할 땐 지우개가 달린 주황색 연필을 쓰셨어요. 그 때문에 피아노 건반 위에는 늘 지우개 가루가 흩어져 있곤 했었죠.”
이영훈 작곡가의 아들 이정환 영훈뮤직본부장과 이 작곡가의 아내 김은옥 대표. 영훈뮤직 제공
어린 자신을 피아노 옆에 앉히고 연주를 해줬다는 아버지의 수많은 노래 중에 이 본부장이 좋아하는 곡은 <이영훈 소품집>(1993)에 든 ‘서울의 천사’다. “아버지가 1992년에 러시아에 가서 볼쇼이오케스트라랑 같이 녹음한 앨범인데요. 히트곡들보다 저는 이 곡이 제일 좋더라고요.”
이 작곡가는 2006년 대장암 판정을 받고 투병하다 2008년 2월에 숨을 거뒀다. 투병생활을 곁에서 지켜봤던 이 본부장은 아버지가 병상에서도 음악을 생각했다고 말했다. “폐에 피가 차는 상황이라 임종을 앞두고 서너 달을 병원에서 생활하며 병간호할 때였어요. 어느 날 한영애 이모가 노란 꽃을 사 왔는데 아버지가 정말 좋아하시더라고요. 밤에 자다가 깨어 보니 아버지가 꽃향기를 맡고 계셨어요. 그러고는 갑자기 멜로디가 떠올랐는지 손으로 허공에 지휘를 해보시더라고요.”
이영훈 작곡가가 함께한 가족 사진. 왼쪽은 이정환 영훈뮤직본부장, 오른쪽은 이 작곡가의 부인 김은옥 대표. 영훈뮤직 제공
아버지 노래를 기억하고 불러주는 이들이 많아 “신기하면서도 감사하다”는 그는 10주기 공연에서 아버지의 생전 취향과 습관을 반영한 물건들을 굿즈(상품)로 내놓을 예정이다. 아버지의 노래를 사랑하는 이들에게 추억이 될 만한 것을 남겨주기 위해서다. “아버지가 즐겨 쓰셨던 지우개 달린 연필과 연필 끝에 끼우는 덮개를 음표 모양으로 만들었어요. 아버지가 좋아했던 가죽 노트도 준비해 안에 다양한 노래 구절을 각인했고요.”
10주기를 맞아 책도 준비 중이다. 이 작곡가가 친필로 쓴 악보집과 가사집을 두 권으로 묶어 낼 예정이다. 이 본부장은 “짧게는 2개월에서 길게는 6개월 뒤에 작업이 끝날 것 같다”고 말했다. 김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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