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김선영의 드담드담
일본드라마 <호쿠사이와 밥만 있으면>
임순례 연출, 김태리 주연의 영화 <리틀 포레스트>가 개봉 한달째 흥행 순항 중이라고 한다. 지난 10년간 여성 감독이 연출하고 여성 배우가 주연을 맡은 한국 영화 중 100만명 이상 관객을 동원한 작품이 채 10편도 되지 않는 현실 속에서 진작 손익분기점을 돌파하고 장기 흥행을 이어가는 영화가 등장했다는 것은 참으로 반가운 일이다. 그동안 국내 영화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여성 1인가구의 삶을 전면에 내세운 작품이라는 점에서 더욱 그렇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 작품은 동명의 일본 만화를 원작으로 하고 있다. 한국보다 빠르게 1인가구가 급증하기 시작한 일본에서는 싱글 여성의 삶을 소재로 한 콘텐츠도 넘쳐난다. 특히 요리를 소재로 한 작품이 많다. <리틀 포레스트> 역시 쿡방, 먹방으로 분류되는 작품 중 하나다. 여성이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삶의 영역이 너무도 제한된 세상에서, ‘1인가구 여성’ 드라마가 자신의 의지대로 연출하고 통제할 수 있는 삶의 압축적 형태로서 요리에 탐닉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로 보인다.
일본 드라마에서 이러한 성격의 대표적인 작품을 꼽는다면 <호쿠사이와 밥만 있으면>을 들 수 있다. 지난해 일본 <엠비에스>(MBS)에서 방영된 이 드라마는 <리틀 포레스트>처럼 동명의 만화를 원작으로 한 작품이다. 주인공 야마다 분(가미시라이시 모네)은 대학 진학으로 고향 부모님 집을 떠나 도쿄 기타센주에서 자취를 하고 있다. 도시 생활이 벌써 반년째지만 극심한 낯가림 탓에 친구가 한명도 없다. 삶의 낙은 오로지 호쿠사이라는 이름의 토끼를 닮은 인형과 요리뿐이다. 그녀는 엄마의 걱정에도 불구하고, ‘호쿠사이와 밥만 있으면’ 혼자인 삶도 행복하다고 여긴다.
<호쿠사이와 밥만 있으면>은 얼핏 보면 한 외톨이 소녀의 쓸쓸한 쿡방처럼 보인다. 야마다 분 스스로는 인형과 대화한다고 생각하지만 남들이 볼 때는 영락없이 혼잣말하는 모습이라든지 막상 음식을 만들어 놓고 먹는 장면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는 점 등을 생각하면, 즐거움으로 가득한 요리 장면도 그녀가 자주 하는 망상의 일부는 아닌지 의심스럽기도 하다. 그러나 조금 더 들여다보면 드라마는 요리로 대표되는 일상이 얼마나 창의적인 것인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19살 자취생의 빠듯한 생활비, 좁은 집의 한정된 요리 도구와 재료들이라는 좁은 선택지 안에서도 그녀는 매번 다른 요리를 빠르고 맛있게 만들어낸다. 그 쉽고 창의적인 요리는 친구들을 하나씩 불러 모으는 마법이 된다.
<호쿠사이와 밥만 있으면>의 미덕은 젊은 여성 1인가구의 삶을 미숙하거나 불완전하게 보지 않는다는 데 있다. 호쿠사이는 부모의 대리자처럼 야마다 분에게 끊임없이 애정 어린 잔소리를 하지만 야마다 분은 자기만의 독특한 삶의 방식을 고수한다. 드라마가 끝날 무렵 친구들을 사귀고 훌쩍 성장하는 것과 별개로, 혼자일 때의 삶도 그 자체로 존중받는다. 여성 1인가구의 삶을 이렇게 긍정하는 이야기는 드물다. 판타지라는 걸 알지만 충분히 사랑스럽다.
김선영 티브이 평론가
일본드라마 <호쿠사이와 밥만 있으면>
엠비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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