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착조사가 진행된 쌍릉 대왕릉 봉토 내부를 위에서 내려다본 전경. 내부의 주검을 들인 석실 부분이 보인다.
이 사람뼈는 누구 것이었을까? 선화공주인가, 무왕인가?
‘서동요’ 연애담으로 잘 알려진 백제 무왕(재위 600~641)과 신라 선화공주의 부부 무덤 설이 전해져오는 전북 익산 쌍릉에 다시 학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쌍릉은 대왕릉(큰 무덤)과 소왕릉(작은 무덤)으로 나뉘어 있는데, 1917년 일본 학자가 처음 조사해 치아와 토기 등이 나왔던 대왕릉을 100년 만에 재발굴한 결과 무덤 안에서 정체불명의 인골들로 채운 나무상자가 나온 것이다.
마한백제문화연구소(소장 최완규)는 “지난해부터 조사해온 쌍릉 대왕릉 내부에서 주검을 넣은 돌방(현실) 등의 왕릉급 무덤 얼개가 확인됐으며, 무덤방 안의 관 받침대 위쪽에 인골 상자가 놓여 있는 것을 수습했다”고 2일 문화재청을 통해 발표했다.
인골은 20세기 초 짠 것으로 보이는 나무상자(가로·세로 각 26㎝, 높이 33㎝)에 담겨 있었다. 현장을 지켜본 최완규 소장은 “상자 안에 갈비뼈, 엉치뼈, 두개골 등의 조각이 가득 들어 있었다”고 전했다. 1917년 대왕릉을 발굴한 일본 학자 야쓰이 세이이쓰가 관과 토기, 장신구, 치아 등을 거둔 뒤 인골들은 따로 모아 다시 묻었을 것으로 보인다는 게 조사단의 추정이다.
현재 인골은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항온항습실에 보관 중이다. 연구소 쪽은 “인골의 실체가 누구인지, 무덤 주인공의 인골인지도 지금 단정할 수 없다”며 “과학적 방식을 동원한 학제 간 융합연구를 통해 묻힌 이가 누구인지 분석하는 작업을 벌일 계획”이라고 밝혔다.
쌍릉 대왕릉 주검방(현실) 내부의 모습. 바닥에 관을 놓는 관대가 보이는데, 이 관대 위에서 인골을 담은 나무상자가 발견됐다. 천장 왼쪽 위에는 시커먼 도굴 구멍도 보인다.
새로 나타난 인골의 정체가 관심을 끄는 건 무덤(대왕릉) 주인이 무왕인지, 선화공주인지를 놓고 첨예한 논란을 빚어왔기 때문이다. 2016년 국립전주박물관은 대왕릉에서 100년 전 야쓰이가 찾아낸 송곳니, 어금니 등 치아 4점을 분석해 “20~40세 여성 것”이란 추정을 내놓았다. 함께 출토된 적갈색 토기가 7세기 초 신라토기와 비슷하며 당대 국내 최고의 위금(가로씨줄에 색을 입혀 짠 비단) 직물도 나왔다는 점에서 선화공주설에 무게를 싣는 내용이었다.
반면, 최완규 소장은 이번 발굴로 쌍릉 대왕릉 주인이 무왕일 가능성이 커졌다고 본다. 직경이 약 25m, 높이 5m인 대왕릉 속 얼개는 백제 말 사비 도읍기의 전형적인 왕릉급 석실무덤(굴식 돌방무덤)이기 때문이다. 최 소장은 “규모, 축조 기법 면에서 확실한 왕릉을 익산에 조성할 수 있는 인물은 정치적 근거지를 여기에 두었던 무왕밖에 없다”고 했다.
일제강점 초기인 1917년 일본 학자 야쓰이 세이이쓰가 조사할 당시 찍은 쌍릉 대왕릉 내부의 현실 모습. 관대 위에 목관의 파편 등이 보인다. 당시 야쓰이는 발견한 목관 파편, 치아 등은 바깥으로 반출하고 인골은 다시 상자에 넣어 봉안한 것으로 보인다.
학계는 100년 전 대왕릉에서 수습된 치아의 주인공으로 볼 수 있는 인골들이 확보된 만큼 성별과 연령대가 과학적인 분석으로 확인되면 무덤 주인 논란에 새로운 돌파구가 생길 수도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문화재청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