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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년전 미국의 ‘부국강병’을 관찰한 조선 외교관의 보고서

등록 2018-05-07 09:03수정 2018-05-07 21:32

박정양 초대 주미공사의 미국견문기 <미속습유>
국외재단에서 처음 번역·해제본 발간
1888년 조선왕조의 초대 주미국공사를 지낸 관료 박정양. 주미공사로 일한 11개월간 미국을 관찰, 탐문한 기록인 <미속습유>를 남겼다.
1888년 조선왕조의 초대 주미국공사를 지낸 관료 박정양. 주미공사로 일한 11개월간 미국을 관찰, 탐문한 기록인 <미속습유>를 남겼다.
“신문지는 한 나라의 중요한 일인데, 민간회사에서 설립한 것이다. 신문은 정부로부터 그 자유권을 허락받아서 비록 전·현직 대통령의 좋은 말이나 나쁜 행동일지라도 구애받지 않고 싣는다. 일이 있으면 바로 쓰고 들은 바가 있으면 반드시 적어내어 조금이라도 숨기거나 포용해주는 사사로움이 없다…그러므로 관민이 맹호보다 더 두려워하여 각자 근신한다…”

1888년 조선왕조가 미국에 상주 외교관으로 처음 파견했던 초대 주미공사 박정양(1841~1905)의 견문기 <미속습유(美俗拾遺)>에 나오는 내용중 일부다. 박정양의 눈에는 매일 같이 나오는 ‘미국 신문지’의 사실적이고 신랄한 보도내용이 ‘신기하지 않은 논의가 없다’고 할만큼 눈길을 끌었던 모양이다. 신문들이 대통령 언행을 비롯한 정부 정책까지 비판하는 등 여론을 모으는데 중요한 기능을 하고 있다는 것을 간파한 구절들이 보인다.

박정양의 문집 <죽천고>에 들어있던 <미속습유> 원본을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최근 처음 한글로 번역해 도서출판 푸른역사를 통해 발간했다. 오는 22일 미국 워싱턴의 주미대한제국공사관 복원 개관식을 맞아 내놓는 성과다. 한글 번역은 근대사 전문가인 한철호 동국대 역사교육과 교수가 맡았다.

미국의 지세에서 시작되어 수도인 워싱턴에 대한 설명으로 끝나는 <미속습유>는 재미 견문 보고서라고 할 수 있다. “미국 정부와 인민의 정황을 수시로 캐어 파악하라”는 고종의 명에 따라 박정양이 재임기간인 1888년 1월부터 11월 귀국길에 오를 때까지 수도 워싱턴을 비롯한 미국 각지의 공공기관과 시설, 제도, 문물들을 돌면서 파악한 정보와 감상을 44개 항목으로 나눠 정리, 기록했다. 일본, 중국 등의 미국 관련 자료를 두루 참고하고 주요 통계도 인용하면서 당대 미국 정치, 사회, 경제, 문화의 전반적인 상황을 글에 담고있다. 18세기 후반 이 나라가 영국한테서 전쟁을 벌여 독립하면서 3권 분립의 민주주의 체제를 구축하는 역사적 과정을 자세히 설명했고, 부국강병할 수 있었던 원인과 국가경제 운용, 토지 활용 등의 실상도 기록했다. 특히 아래의 기록들은 그가 평등과 믿음이라는 미국 정치경제체제의 운영원리에 주목하고 있었음을 보여준다.

“무릇 범죄사건에 관계되는 한 군주와 국민, 관리를 똑같이 대우한다. 비록 현직 대통령이라도 조금도 용서하지 아니하며, ‘특정한’ 사람 때문에 법이 제대로 집행되지 않는 일이 없고…”(‘재심원’에 대한 기록)

“대체로 화폐가 통용되는 것은 오로지 신(信)이라는 한 자에 달려 있을 뿐이다. 그러므로 불신이 있는 곳에서 금과 은도 마치 두엄이나 마찬가지이고, 믿음이 깊은 곳에서는 한 조각 얇은 종이라도 천금보다 오히려 더 소중하다.”(‘전폐’에 대한 기록)

<미속습유>는 조선 최초의 서양견문기로 알려진 유길준의 <서유견문>(1895년 발간)보다 1년 빠른 1888년 탈고된 국내 최초의 미국 견문기다. 당시 고종과 정부 요직 관리들에게 널리 읽혀 외교 정책 수립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추정된다. 재단은 앞서 2014년 박정양이 초대 주미공사로 임명받은 1887년 11월부터 귀국해 고종에게 복명한 1889년 9월까지의 현지 외교활동을 기록한 <미행일기(美行日記)>도 번역해제해 발간한 바 있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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