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경 유적 북서쪽 구역의 모습. 오른쪽 측면의 수직으로 난 큰 1호 도로와 이 도로 중간에 횡으로 교차하는 4호 도로가 보인다. 4호 도로의 왼쪽 끝에 우물터가 있다.
6~7세기 백제의 마지막 도읍 사비성이었고, 2015년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 지역이 된 충남 부여에서 사비시대 시가지, 도로가 일정한 간격으로 구획된 대형 왕경 유적이 처음 발견됐다.
15일 문화재청과 고고학계에 따르면, 지난해 2월부터 올해 4월까지 부여읍 쌍북리 56번지 일대의 사비 한옥마을조성터에서 한옥 건립에 앞서 구제발굴조사를 벌인 결과 넓이 약 8000평(2만6127㎡)에 유구(건축터 흔적) 숫자만 200곳에 육박하는 사비시대의 대규모 왕경 유적이 확인된 것으로 밝혀졌다.
왕경 유적 남서쪽 지역의 벽주식 건물터 두 동의 전경.
울산발전연구원 문화재센터가 1, 2차로 나눠 조사한 이 왕경 유적은 십자형으로 교차된 폭 3.5m 이상의 큰 도로 3군데를 중심으로 폭 1.5m 내외의 여러 작은 길들(소로)이 일정 간격으로 골목과 가로길을 형성하고 있다. 사이사이에 길을 잇는 나무다리(목교)와 집터, 우물터, 화장실터, 공방터, 울책(말목열) 따위가 나타나며, 도로 일부에는 수레가 지나간 일직선상의 띠 모양 흔적도 비친다. 생활·생산시설 등이 도로 축에 맞춰 일정하게 연속되는 형태로 나타나는 고대 왕경 시가지의 단면들이다. 특히 백제 주거지 건물의 독특한 면모로 꼽히는 대벽 건물터(별도의 기둥 없이 벽체로 기둥을 삼는 건물)가 단일 백제 유적으로는 최대 규모인 40여곳이나 확인된 것이 눈길을 끈다. 대벽 건물터에는 벽체의 기둥을 꽂는 바닥 구멍 자리가 차례차례 열을 지어 나타나는 것도 볼 수 있다. 유적 곳곳의 건물터 주위에는 딸림 시설인 화장실터와 광장이 조성된 자취가 함께 보이며, 백제시대 토기·기와·목기 조각들과 목간 등의 유물 다수가 함께 출토됐다. 현장을 살펴본 김낙중 전북대 교수는 “부여의 사비도성터 안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조사해 고대 백제 왕경도시의 생생한 흔적을 살필 수 있게 됐다”며 “당시 귀족과 일반 백성들이 어떤 규모로 택지를 닦아 어떤 구조의 건물에서 생활했는지 파악할 수 있는 매우 중요한 유적”이라고 평가했다.
현재까지 국내에서 확인된 고대 왕경 시가지 유적은 신라 고도인 경주 시내 황룡사터 부근 등에서 발견된 유적들이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백제권에서는 한성 백제기의 왕성터로 추정하는 풍납토성 미래마을터 안에서 2006년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3세기께 큰길이 나왔다. 사비 도성의 주요 지점으로 추정하는 부여읍 내 관북리, 구아리, 쌍북리 일대 주택가에서 소규모의 집터, 도로 등 유구가 발굴된 적이 있지만, 생산지·주거지가 일정한 구획 아래 배치되는 시가지급의 대규모 왕경 유적은 백제 유적에서 여태껏 확인된 적이 없다. 따라서 이번에 발굴된 왕경 유적들은 백제 사비도성의 도시계획과 구조의 전모를 밝히는 데 요긴한 1차 자료 구실을 할 것으로 보인다.
쌍북리는 부여 왕경의 동쪽 언저리 일대다. 1990년대 이래 백마강 등과 통하는 큰 도로터와 생산 유적이 나왔고,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구구단표, 춘궁기 구제를 위해 곡식을 빌려주는 구황 사업을 기록한 장부인 ‘좌관대식기’(佐官貸食記) 목간 등의 중요 유물들이 계속 출토돼 학계에서는 이곳을 사비성의 물류 거점과 이를 관장하는 관가터 등으로 추정해왔다.
발굴터에는 부여군이 앞으로 사비 한옥마을 단지를 지으려 하고 있다. 부여군은 지난해 유네스코 세계유산 사업으로 사비시대의 궁궐과 왕성을 찾아 읍내 중심부 일대를 조사하기로 하고 쌍북리 56번지 일대를 도심 거주민 이전터로 지목해 한옥 단지 건립을 준비해왔다. 그러나 이번 발굴로 이전터 일대가 백제권에 처음 출현한 대규모 왕경 유적으로 드러나면서 지자체의 사업 추진에 상당한 변수가 생기게 됐다. 쌍북리를 백제 생활문화사의 주요 무대로 지목해온 역사고고학계 연구자들의 유적 보존 목소리도 자연스럽게 높아질 것으로 보여 이주를 추진중인 지자체, 주민들과의 논란도 예상된다.
백제 왕경 조사와 보존 문제는 최근 공주(웅진)에서도 불거지면서 문화재학계의 현안으로 떠올랐다. 지난 1~4월 공주 반죽동 한옥건립터에서, 527년 웅진(공주)에 건립된 백제 최고의 고찰 대통사와 웅진의 옛 왕경 구조에 연관되는 것으로 추정되는 유물들이 잇따라 출토됐기 때문이다. 거대한 기와 폐기장터의 일부로 추정되는 이 유적에서는 무령왕릉 전돌과 사격자 무늬가 거의 닮은 전돌과 ‘통’자가 찍힌 인장와(도장 찍힌 기와), 불상의 무릎 부분, 소조나한상, 지문 찍힌 암막새 등이 나와 학계의 눈길을 받았다. 백제학회, 한국고대사학회 등 12개 학회는 이와관련해 지난 3일 회견을 열고 공주시가 세계유산지구 미화를 위해 한옥촌 건립을 추진해온 반죽동 건축사업의 보류와 발굴구역 확대, 보존구역 설정 등을 요구한 바 있다. 국내 문화재 행정의 최고 의결·자문기구인 문화재위원회는 16일 매장분과위원 회의를 열어 쌍북리·반죽동 유적의 보존 활용 방향을 논의한다. 회의에서 어떤 결론을 낼지 학계에서는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사진 울산발전연구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