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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밤샘도 쪽대본도 없었던 예쁜 드라마…‘인권 있는 드라마 현장’ 가능성 열다

등록 2018-06-04 16:18수정 2018-06-05 12:21

‘밥 잘사주는 예쁜 누나’의 성공 원인은
배우뿐 아니라 현장의 ‘노동인권’ 엄수도 한몫
피디의 철저한 사전준비로 필요한 컷만 촬영
처음부터 원고 완성본 들고 충분히 토론하며 촬영
‘밥 잘사주는 예쁜 누나’ 촬영 현장에서 정해인, 손예진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안판석 피디(맨왼쪽). 제이티비시 제공.
‘밥 잘사주는 예쁜 누나’ 촬영 현장에서 정해인, 손예진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안판석 피디(맨왼쪽). 제이티비시 제공.
최근 만난 배우 정해인은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제이티비시·JTBC)를 촬영하면서 하루 평균 7~8시간 자고, 9시간 일했다고 말했다. “미니시리즈를 이렇게 푹 자면서 촬영한 건 처음”이라고 했다. 함께 출연한 손예진도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는 인권이 있는 현장이었다”고 전했다.

드라마의 성공을 놓고 대부분 주연 배우들에게 공을 돌렸지만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서 가장 주목받아야 할 건 이 대목이다. 그동안 한국 드라마 현장은 인권에 무심했다. 70분짜리를 1주일에 2회씩 만드는 살인적인 현장에서 노동력 착취를 당연시해왔다. 특히 배우들보다 먼저 준비하고 늦게 일이 끝나는 스태프들은 겨우 2~3시간 눈을 붙이는 밤샘, 쪽잠은 기본이었다. 지난해엔 고 이한빛 씨제이이앤엠(CJ E&M) 피디가 “하루 20시간 넘는 노동을 부과하는” 방송제작환경에 문제를 제기하며 스스로 세상을 떠나는 일까지 벌어졌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현실은 좀처럼 달라지지 않았다. 방영중인 드라마 <시크릿 마더>(에스비에스·SBS)도 스태프들이 찜질방에서 1~2시간 자고 출근하는 등 하루 20시간 이상 일한 사실이 최근 알려져 논란이 됐다. 대안으로 떠오른 사전제작은 시청자 반응을 반영해야 시청률이 높아진다는 이유 등으로 자리잡지 못했다. 촬영을 일찍 시작해도 결국 시간에 쫓기게 되는 ‘습관’은 무서웠다. 한 드라마 피디는 “방영 시간 축소 등 근본적인 시스템을 바꾸지 않는 이상 한국 드라마에서 인권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는 방송 노동자들의 인권도 지키고 시청률도 잘 나오는 드라마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최근 만난 안판석 피디는 “현장에서 불필요한 컷을 찍지 않는 게 첫번째 원칙이었다”고 말한다. 대다수의 피디는 촬영할 때 필요한 컷 외에도 예비로 클로즈업·풀샷·바스트샷 등을 거듭해서 찍어둔다. 공들이는 게 나쁜 것은 아니지만, 불필요한 촬영은 배우와 스태프들의 에너지를 소진시킨다. 안판석 피디는 “드라마 촬영은 시를 쓰는 작업과 같다. 사전에 충분히 고민한 뒤 압축해서 담아내야 한다”고 했다. 정해인은 “2~3분 촬영한 게 드라마에 2~3분 나간 적이 있을 정도로 감독님이 사전에 그림을 다 그려왔다”고 말했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는 쪽대본도 없었다. 손예진은 사전에 완성된 16부 시나리오를 모두 읽고 작품과 캐릭터 분석을 끝낸 뒤 촬영에 들어갔다. 덕분에 피디와 배우들은 완성된 대본으로 토론하면서 더 좋은 그림을 완성했다. 화제가 된 비행기 키스 장면이나, 마지막 어깨동무를 하고 걷는 모습 등도 배우들이 작품에 빠져들어 저절로 만들어나간 장면들이다. 안판석 피디는 “현장에서 배우들과 사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았고, 드라마에 대한 토론만 했다”고 말했다.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 사례는 7월부터 시행되는 주 52시간 근무제를 앞두고 의미있게 다가온다. 한국 드라마 촬영 현장에서는 불가능하다는 얘기가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가 보여준 것처럼 사전에 철저히 준비하면 현장을 변화시킬 수 있다. 한국 드라마의 ‘빠듯한 현실’이 더는 인권 침해의 핑계가 될 수 없는 이유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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