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이 ‘아저씨’들 때문에 매일이 ‘공포’다. 월화 유오성, 수목 허준호, 토일 최민수. 드라마에서 악역을 멋지게 연기하며 누리꾼들한테 ‘나를 무섭게 만드는 아저씨들’로 불린다.
일주일의 시작과 함께 유오성이 매섭게 노려본다. 월화드라마 <너도 인간이니>(한국방송2)에서 대기업 피케이(PK)그룹 이사 서종길로 나온다. 그룹 회장이 되려고 살인도 서슴지 않는 야심남인데, 세상에 눈에 넣어도 안 아픈 딸의 약혼남까지 살해하려고 든다. 지금껏 브라운관을 수놓은 악역들은 그래도 피붙이는 보호했다. 시청자들은 딸바보인 척하면서 딸 약혼남까지 죽이려 드는 그를 ‘레알 악인’이라고 혀를 내두른다.
서종길의 악행에는 권력욕이라는 이유라도 있지 수목요일 찾아오는 <이리와 안아줘>(문화방송) 윤희재(허준호)의 살인에는 이유도 없다. 그냥 사이코패스다. 극 중 대사로 굳이 이유를 찾자면 “내 등 뒤에 칼 꽂지 않을 인간은 오직 내 새끼 뿐”이고 “널(아들) 나약하고 구차하게 만드는 것들로부터 지켜주겠다”는 정도랄까. 윤희재는 2년간 12명을 살해했다. 교도소에 가서는 “나도 같은 사람이다”며 자서전을 내고 사연팔이 할 정도로 후안무치다.
유오성과 허준호가 달궈놓은 서늘함은 최민수에서 정점을 찍는다. 토일드라마 <무법변호사>(티브이엔)에서 어시장 깡패 출신으로 오주그룹 회장에서 시장까지 된 안오주를 연기한다. 권력을 쥐려고 기어야 할 곳에는 기고, 죽여야 할 이들은 죽이는 등 서종길과 윤희재를 섞어 놓은 모양새다.
이 세 명은 무자비한 악인들이지만, 속내를 모르고 보면 한없이 착한 사람들이다. 서종길은 딸바보에 똑똑한 기업가이고, 안오주는 밑바닥에서부터 노력해 올라온 성공신화다. 그래서 이들의 악행이 더 소름 돋는다는 반응이 많다. 특히 윤희재는 너털웃음 짓는 수리기사로 주변에서 흔히 보는 보통사람처럼 그려진다. 1회에서 그가 순박한 웃음을 지으며 싱크대 수리를 한 뒤 노부부 둘만 사는 것을 알고는 살인 욕구에 사로잡히는 장면이 대표적이다. 강호순 등 연쇄살인마들이 알고 보면 평범해 보이는 이웃이었다는 냉혹한 현실의 반영이다.
세 배우 모두 악역을 표현하는 방식도 남다르다. 이들은 모두 표정만으로 악역을 연기하는데 눈썹을 들썩이거나, 입꼬리를 살짝 올리는 식의 작은 변화로 섬뜩함을 드러낸다. <이리와 안아줘> 14회에서 윤희재는 자신을 찾아온 기자와 얘기를 하던 중 평온하던 표정이 순식간에 광기로 변한다. 허준호는 눈망울조차 흔들리지 않고 한 순간 돌변하는 느낌을 절묘하게 표현했다.
드라마 속 악역 연기는 영화보다 더 어렵다는 게 정설이다. 영화처럼 노골적으로 잔인한 장면을 연출할 수도 없을 뿐더러 음향효과나 시각적 과장 등을 덧입히기 힘든 탓이다. 고난이도의 악역을 인기 캐릭터로 만든 건 베테랑 배우들의 내공이다. 최민수는 1985년, 유오성은 1992년, 허준호는 1986년 데뷔해 30년간 드라마와 영화, 연극을 누비며 다양한 역할을 도맡았다. 모두 손짓 하나까지 고민할 정도로 빠져드는 걸로 유명하다. 최민수는 “악역인데 담배도 못 피고 흉기도 못 쓰고 욕도 못한다. 연기하기 힘들다”고 토로하기도 했지만 과한 행동을 줄이고 ‘’하는 입 모양이나, 혀를 입안에서 굴리는 섬세한 동작으로 캐릭터를 표현했다. 허준호는 촬영을 앞두고 잠을 못 잤을 정도란다.
연기 내공 100단 ‘선수’들의 활약에 악역을 바라보는 시선도 달라졌다. 세 드라마에서는 악당과 남자 주인공이 맞붙는 장면이 마치 ‘브로맨스’처럼 관전 포인트가 됐다. 시청자들은 “이준기와 최민수가 나오는 장면에서 몰입도 최고”라거나 “허준호와 (아들인) 장기용은 언제 맞붙나”를 기다리며 남녀 주인공만큼 이들의 등장에 환호한다. <이리와 안아줘> 제작진은 “허준호가 아닌 희재를 상상할 수 없다”며 베테랑 배우들의 연기력이 캐릭터를 빛냈다고 추어올렸다. 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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