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한국 피디로는 처음으로 중국 현지에 외주 제작사 비앤아르(B&R)를 차리고 중국에 진출했던 김영희 피디가 지난 26일 한국에 돌아왔다. 그의 중국 진출은 중국 자본과 한국 인력이 융합한 새로운 형태로 주목받았다. 2016년 그가 중국 메이저방송사 <후난위성티브이>에서 선보인 첫 작품 <폭풍효자>는 총수익 800억원, 순수익 200억원을 벌어들이며 큰 성공을 거뒀다. 관찰 예능이 흐름을 타며 중국 예능의 판을 바꾸기도 했다. 하지만, 2016년 11월 갑작스레 불어닥친 ‘한한령’(한류제한령)을 피해갈 순 없었다. 그는 이제 3년여 동안의 중국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한중합작시스템을 모색 중이다. 김 피디가 한국에 돌아온 지 나흘째인 30일 <한겨레>가 단독으로 만나 한한령의 실체와 한중제작시스템의 미래 등을 물었다.
돌아온 ‘쌀집아저씨' 김영희 피디가 30일 오후 서울 공덕동 한겨레신문사 스튜디오에서 활짝 웃고 있다.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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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한령 실체는 없지만 지금도 진행형”
승승장구하던 그가 뭔가 이상한 기운을 감지한 건 2016년 11월부터다. “<폭풍효자> 다음으로 만든 프로그램이 약속이 다 되었는데 편성이 안되더라. 우여곡절 끝에 한국 스태프는 빠지고 뒤에서 자문만 해주고, 중국 제작진이 제목을 바꾸고 재촬영한 뒤에야 다른 방송사에서 2017년 6월에 방영할 수 있었다.” 이후 만든 두 프로그램 모두 한국 제작진이 기획했지만, 이름을 내걸 수 없었다고 한다. “우리가 만든 작품인데, 우리 이름도 걸 수 없다면 여기 와서 일하는 게 의미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처음에는 그게 왜 방송이 안 되는지 몰랐다고 한다. “한국에서 말하는 것과 달리 한한령은 실체가 없기 때문”이다. “신문출판광전총국(광전총국·중국의 문화·미디어 총괄부처)은 수시로 제작사 대표나 방송사 간부들에게 지시 사항을 메일을 보내거나 누리집에서 알리지만, 한한령은 그런 얘기 자체가 없었다. 또 한국에서 알려진 것과 달리 신문출판광전총국의 지시 사항을 무조건 따라야 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지시가 없었는데도 방송사들이 그렇게 한다는 건 그만큼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가 중국 사람들에게 큰 의미로 다가왔다는 뜻이다.”
그는 최근 한국 언론들이 보도하는 ‘한한령 완화 분위기’도 “잘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했다. “실체 없는 한한령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조금 눈감아주는 것은 있겠지만, 절대 완화된 게 아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기다리면 풀릴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올해는 이게 기다린다고 될 일이 아니라는 걸 감지했다. 적어도 올해까지는 절대 좋아지지 않을 것이다.” ?예전만큼 광고가 붙지 않는 등 최근 중국 콘텐츠 시장의 거품도 빠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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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합작할 시점인데…”
2013년 <아빠 어디가>를 시작으로 <나는 가수다>에 이어 <런닝맨>이 중국에서 리메이크로 큰 성공을 거두자 중국은 한국 콘텐츠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앞다퉈 한국 피디, 작가 등을 데려갔다. 당시 한국에선 ‘인력 유출’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였다. 한국에서 남부러울 것 없던 김 피디가 굳이 중국에 간 이유는 “후배에게 길을 열어주고, 한국 콘텐츠를 글로벌 시장에 알리겠다는 목표”였다. “중국은 자본력이 있으니, 우리 노하우를 알려주며 3년 안에 평균 수준으로 올린 뒤 이후 중국과 합작해 글로벌 시장에 진출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래서 그는 아마추어 수준이었던 중국 제작 현실을 내 일처럼 팔 걷어붙였다. 그가 처음 프로그램 조언자로 중국에 왔을 때는 제작 현장 책임자가 누구인지 등 전혀 체계가 갖춰져 있지 않았다. “피디가, 때론 카메라 감독이, 때론 작가가 큐 사인을 주기도 하더라. 책임자를 두고 현장이 움직여야 한다는 것부터 하나하나 알려줬다.” 그의 예상대로 3년 만에 중국은 카메라 20~30대를 놓고 촬영하고 배우 한명마다 카메라가 붙어 촬영하는 방법을 익히는 등 기술적인 부분을 빠르게 습득했다. “오디션 프로 30%, 연애 프로 30%, 음악 프로 30%로 전부 스튜디오물이었는데 한국 프로그램을 리메이크한 이후 야외 버라이어티가 늘었다.” 그는 “이제는 글로벌 시장을 겨냥해 한국과 합작하며 뭔가를 해야 하는 시점인데, 한한령으로 이 문턱을 넘지 못하는 것은 아쉽다”고 말했다.
2016년 중국 현지에서 선보인 <폭풍효자> 제작발표회 모습. 비앤아르(B&R)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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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여전히 소중한 파트너”
그럼에도 중국은 여전히 중요한 파트너라고 그는 말한다. 자본력에서 세계 어느 시장을 뛰어넘을 수 없기 때문이다. 12부작 <폭풍효자> 제작비는 400억원 정도로 한국 지상파 방송사 예능국의 1년 예산과 맞먹는다. 12회 만드는 데 스태프 600명이 참여했다. “한국에서는 시장 규모가 작고, 뭘 하고 싶어도 제작비 때문에 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한국 피디들의 창의성은 세계 어디에서도 따라올 수 없다. 우리의 노하우와 이 정도 경제 규모를 가진 나라와 합작하면 아시아 콘텐츠도 글로벌 시장에 내다 팔 수 있게 된다.” 그래서 그는 결국 우리 노하우만 빼주고 돌아온 게 아니냐는 일부 의견에 대해서도 “제작 노하우는 별 게 아니다. 우리 제작 노하우는 제작 능력이 떨어지는 나라에 일부러라도 가서 가르쳐줘야 한다. 인도 등 규모가 큰 아시아 시장의 노하우를 평균적으로 올려놓은 다음 합작을 해 우리의 창의력으로 파이를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인들과 동고동락한 지난 3년 반의 시간이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자산이 됐다고 말한다. “중국은 비즈니스 마인드가 강해서 프로그램을 만들면 이걸로 어떻게 돈을 벌어야 하는지 안다. 프로그램 하나를 만들며 파생되는 부가수익이 상당하다. 중국을 통제사회, 예측불가능한 나라로만 생각하며 지레 포기하는데, 오히려 현지에서 보면 중국은 예측 가능한 곳이다. 중국은 서구의 문물이나 한국 등 다른 선진 문물들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고 놔두다가 너무 많아지고 이게 사회에 해로운 영향을 끼칠 정도가 되면, 제재한다. 중국은 사회에 기여하는 좋은 방향으로만 가면 얼마든지 허용한다.”
수많은 이들이 실패하고 돌아간 것과 달리 김영희 피디가 성공한 것도 중국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는 <폭풍효자>를 만들 당시 중국 정부가 당시 공자 사상을 다시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위기를 파악하고, 이를 활용해 효를 중요시하는 콘셉트를 잡았다. 그는 “한국식을 강요하는 게 아니라, 현지화 전략을 쓰면서 우리만의 새로운 기법을 스며들게 하는 식으로 전략을 짜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한한령으로 한국 제작자가 어려움을 겪고는 있지만, 중국은 여전히 한국 창작자를 갈망한다”고 말했다. “제작 기술은 배웠을지 몰라고 중국은 핵심 기술인 기획·실행엔 아직 부족하다. 이미 성공 사례가 있는 프로그램을 따라 만들 수는 있지만,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어내지 못했다. 그래서 여전히 한국 피디들의 창의력을 갈망하고 있다”며 이제는 “한한령이 끝나기를 마냥 기다릴 것이 아니라, 한한령이 완고한 이 시점에서 그들과 합작할 수 있는 여러 방법을 고민할 때”라고 말했다. 그 방안을 놓고 한국에서의 행보를 고심 중이다. 그는 “어떤 방식이 되든 사랑을 준 시청자에게, 한국 예능에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이 될 것이다”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