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부터 드라마와 영화, 예능까지 접수하며 만루 찬스를 만든 배우 박서준이 ‘부회장님’으로 시원한 홈런을 날렸다. 지난 7월26일 종영한 <김비서가 왜그럴까>(티브이엔·tvN)가 시청률 1위(동시간대 기준)로 마무리됐다.
극 후반 지지부진한 전개에도 ‘채널 고정’이 가능했던 데는 배우의 힘이 컸다. 전작들에서 파릇한 청춘을 연기하며 취준생 옆집 청년 같은 자연스러움을 보여줬던 박서준에게 ‘부회장님’은 뜻밖의 선택이었다. “영화 <사자> 촬영 앞두고 마침 비는 시간에 제안을 받았어요. 그러고 나서 원작을 봤는데 내가 언제 이런 역할을 해볼 수 있을까, 이렇게 말도 안되는 설정을 갖고 있는 애를 내가 표현하면 어떻게 나올까 궁금증이 생겼어요.” 7월31일 강남구 논현동의 한 카페에서 기자들과 만난 박서준이 작품에 관해 이야기했다.
만화처럼 과장된 캐릭터지만 그는 나르시시즘 가득한 영준역을 하면서 ‘나를 아끼는 법’을 배웠다고 했다. “저는 지금도 칭찬 듣는 게 어색해요. 결과물에 대해서 객관적으로 보려고 애쓰다 보니 늘 부족함만 보이고 나 자신에게 너무 냉정했던 거 같아요.” 영준을 연기하며 자신에게 너무 박하게 대하지 말자고 결심했지만 여전히 ‘대세’ ‘원톱’ ‘전성기’ 같은 칭찬을 듣는 게 편치만은 않아 보인다. “예능 <윤식당>(3월 방영, 티브이엔) 이후에 광고가 많이 들어왔어요. 지난 5월 힘들어 죽겠다 싶을 정도로 빡빡하게 광고 촬영을 하면서 감사한 마음도 있지만 어느 순간에는 위태로운 느낌이 들기도 했어요. 내가 이렇게 관심받을 깜냥이 되나 싶고, 그런데 이런 게 다 하나의 흐름일 수도 있는 거 같아요. 그 흐름에서 얻어진 기회겠죠.”
그럼에도 스스로에게 냉정하고자 하는 노력은 그만그만한 또래 배우들의 경쟁에서 그를 앞서 달려나가게 한 힘일 것이다. 그는 연기에 있어서 단점이나 콤플렉스를 가리려고 하지 않는다. “감정장면 찍는데 낯선 사람이 나를 보고 있다거나 뭔가 어색한 기운이 느껴지면 감정이 확 깨지면서 다시 잡히지 않을 때가 있어요. 또 드라마 찍을 때마다 먼저 찍은 극 초반은 늘 아쉽고 다시 찍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요. 아직 부족한 게 많아서 그렇겠죠.” 오디션 보러 다니던 시절 외모뿐 아니라 말투 때문에 “어눌하다” “애 같다” “남자 같지 않다” 는 지적을 받은 덕에 지금의 모습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고 자평한다.
<김비서가 왜그럴까>를 끝내고 영화 <사자> 촬영이 시작되는 9월 초까지 광고 촬영으로 숨 돌릴 틈이 없다. “쉴 때 뭘 하고 지내나”, “뭘 하고 싶은가”라는 질문에 답이 떠오르지 않을 만큼 바쁜 나날이다. 오디션 보러 다니던 시절 품었던 ‘연기하면서 바빠 봤으면 좋겠다’는 꿈은 이뤘지만 자리가 달라졌을 뿐 고민은 여전하다고 한다. “데뷔 전에 형들에게 들었던 이야기 중에, 지금은 작품 하고 싶다는 고민이 제일 크겠지만 나중에는 뭘 어떻게 채워야 할지가 가장 큰 고민이 될 거라는 말이 있었어요. 이제 오디션을 보러 다니지 않지만 어떤 작품을 선택할까, 어떻게 잘할 수 있을까가 똑같은 무게로 다가오는 것 같아요.”
영화 <청년 경찰>의 김주환 감독과 다시 손잡은 차기작 <사자>는 그게 새롭게 도전하는 오컬트 장르로 안성기와 함께 호흡을 맞춘다. “마블 시리즈를 좋아해서 언젠가 한국형 히어로물 같은 작품도 해보고 싶다”고 한다. 현실 청춘에서 만화 속 부회장님까지 외연을 확장하며 이십대를 성장해온 배우 박서준의 삼십대는 어떤 도약을 할지 차기작 <사자>가 벌써부터 궁금해진다.
김은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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