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삶, 나의 예술’ 섹션에서 만날 수 있는 <라구 라이의 사진 인생>. 교육방송 제공
“다큐멘터리의 저변을 확대했다” 15회를 맞은 <이비에스(EBS) 국제다큐영화제>(이아이디에프·EIDF)의 가치에 대해 전문가들은 이렇게 입을 모은다. 영화제가 열리는 1주일 동안 극장 상영과 함께 매일 9~13시간씩 티브이로 다큐를 내보낸다. 티브이에서 다큐를 이렇게 긴 시간 방영하는 시도는 드물다. 20~26일 경기 고양과 서울 홍대 일대에서 열리는 다큐 축제를 앞두고, 심사위원을 맡은 정재은 영화감독과 2017년 <버블패밀리>로 경쟁부문 대상을 받은 마민지 감독 등이 15년의 성과를 돌아봤다.
■ 15년, 세상 흐름을 기록하다 마민지 감독은 “다큐는 현실을 기반으로 우리 사회에 질문을 던진다”고 말한다. <이아이디에프>도 2004년 ‘변혁의 아시아’를 시작으로 차별, 전쟁, 환경 등 매년 굵직한 화두를 던지며 관련 작품들을 소개해왔다. 올해는 ‘멈추지 않는다’를 열쇳말로 다큐 72편(33개국)을 상영하는데, 여성 문제에 방점을 찍었다. 김혜민 프로그래머는 “여성 문제는 오랫동안 계속돼 왔고 지금도 누군가가 투쟁하고 있는 현재진행형”이라고 말했다. #미투운동, 페미니즘 성장 등 달라진 시대를 돌아보게 하는 작품이 많다. 난민 문제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중국 출신 이민자 수잔 이야기 <항구의 여인>(TV-21일 밤 1시55분, 메가박스 일산벨라시타 더부티크-24일 오후 2시30분), 팔레스타인군에 자원하는 소녀의 여정 <왈라의 선택>(TV-20일 밤 12시25분, 롯데시네마 홍대입구-23일 오후 6시30분) 등 자신만의 방식으로 투쟁하는 여성들의 자화상이 담겼다.
경쟁부문인 ‘페스티벌 초이스’를 비롯해 ‘허스토리: 세상과 맞서다’ ‘한국 다큐멘터리 파노라마’ ‘월드 쇼케이스’ 등 섹션을 11개로 나눠 다채롭게 세상의 변화를 담는 것도 15년간 장수한 힘이다. 형건 사무국장은 “올해는 세계 건축 흐름을 짚는 ‘꿈꾸는 도시, 그리고 건축’ 섹션이 특히 눈에 띈다”고 했다. 2004년 첫 여성 프리츠커 건축상 수상자를 다룬 <자하 하디드를 추모하며>(TV-26일 밤 9시35분, 메가박스 일산벨라시타 더부티크-23일 낮 12시30분) 등 4편이다.
‘꿈꾸는 도시, 그리고 건축’에서 선보일 <자하 하디드를 추모하며>. 교육방송 제공
경쟁부문인 ‘페스티벌 초이스’ 출품작. <엄마는 왜 아들을 쏘았나>. 교육방송 제공
■ 국내외 다큐 감독을 발견하다 <이아이디에프>는 1회 129편, 8회 664편 등 해를 거듭할 수록 출품작이 증가해 2013년엔 1000편을 넘길 만큼 꾸준히 성장했다. 초창기에는 좋은 작품을 찾는 데 힘을 쏟았는데, 요즘은 좋은 다큐는 알아서 이곳에 모인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은정 집행위원장은 “특히 유능한 인재를 발굴 지원해 한국 다큐의 발전에 큰 역할을 한 점도 15년 성과”라고 말했다. 1회 대상을 받은 중국 간 차오 감독은 현재 중국 <상하이 티브이> 부사장으로 있고, 2007년 대상을 받은 야마다 카즈야 감독의 <푸지에>는 이후 세계 유명 다큐 영화제인 <선댄스 영화제>에서 상을 받는 등 세계에서도 인정받았다. 마민지 감독은 2017년 <이아이디에프>에서 대상을 타며 다큐 감독으로서 날개를 달았고, 2009년 사전제작지원 프로젝트로 선정됐던 이승준 감독의 <달팽이의 별>은 이후 장편으로 제작돼 <암스테르담 국제다큐영화제> 장편 경쟁부문 대상을 받았다. 정재은 감독은 “극영화만 찍던 내가 2009년 최초로 다큐 피칭(작품 아이디어 프레젠테이션)을 하며 다큐에 대한 감을 잡게 해준 곳도 이곳이었다”고 말했다. 올해는 ‘글로벌 피칭 아카데미’를 마련해 국외 진출까지 지원을 확대했다.
‘허스토리: 세상과 맞서다’ <왈라의 선택>. 교육방송 제공
■ 1년간 발품…TV 다큐 저변 확대로 이어져야 오랜 준비가 알찬 결실의 비결이다. 영화제 1주일을 위해 1년 전부터 준비한다. 올해도 지난해 11월 <암스테르담 국제다큐영화제>를 시작으로 여러 영화제를 돌아다니며 ‘좋은 작품 찾아 삼만리’를 했다. 매년 약 600~1000편을 본다. 시청자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작품을 선택해야 하기에 극장 개봉만 하는 영화제보다 작품 고르기가 두세배 까다롭다. 선정위원 8명이 매의 눈으로 찾아내도 때론 ‘티브이’라는 점이 발목을 잡기도 한다. 형건 국장은 “아카데미 등 큰 영화제를 염두에 둔 감독들이 티브이로 소개되는 것에 부담을 느껴 막판에 출품을 취소하기도 한다”고 했다. 올해 그렇게 아까운 작품을 한편 놓쳤다.
<이아이디에프>가 한국 독립 다큐의 성장을 넘어 티브이 다큐의 저변 확대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기를 바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상파에서 다큐 제작 편수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지상파 편성 비율은 보도, 교양(다큐 포함), 오락(드라마 포함)인데, 오락 부문 편성을 전체의 50% 이내로 제한하는 규정만 있을 뿐 교양 부문에서 다큐의 의무편성 규정은 없다. 정재은 감독은 “<이아이디에프>로 감독이나 작가들이 다큐를 만들어 방송국에 쉽게 제출하고 방영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 마민지 영화감독 <구르는 돌처럼> 여성 감독이 장편 다큐멘터리를 꾸준히 만들고 있다는 점에서 원한다. 정년퇴임을 앞둔 무용가가 10대, 20대들과 8일간 춤추며 젊은 시절을 투영하고 고민하고 특별한 교감을 나누는 내용도 좋다. 박소현 감독. 한국. 23일 밤 9시50분(TV), 23·25일 오후 3시(롯데시네마 홍대입구)
■ 김혜민 프로그래머 <아말> 혁명 이후 이집트에 사는 10대 소녀 아말을 통해 가부장 사회에서 여성의 위치, 정체성 등을 탐구한다. 어린 시절에서 성인기로 넘어가는 6년을 담은 점도 이채롭다. 요즘 화두인 페미니즘을 논쟁적이기보다는 잔잔하게 스며드는 느낌으로 다뤘다. 모하메드 시암 감독. 레바논 등. 21일 낮 12시35분(TV), 25일 오전 10시30분(메가박스 일산벨라시타 더부티크)
■ 이은정 집행위원장 <비비안 웨스트우드> 영국 패션 대모인 비비안 웨스트우드의 성공을 향한 투쟁을 담는다. 남성 중심적 사회에서 그가 어떻게 자기 목소리를 냈는지가 흥미롭다. 로나 터커 감독. 영국. 25일 오후 6시45분(TV), 20일 오후 7시(EBS 스페이스), 23일 오전 10시30분(메가박스 일산벨라시타 더부티크), 25일 오후 1시(롯데시네마 홍대입구)
■ 형건 사무국장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의 비밀> 실력은 뛰어나지만 사고도 치는 스웨덴 축구 선수 즐라탄 이브라히모비치가 세계적인 축구 스타로 거듭나는 여정을 다룬다. 집시였던 부모의 인생 등 몰랐던 이면을 볼 수 있는 ‘성장’이 흥미롭다. 프레드리크 게르텐 감독. 스웨덴 등. 25일 밤 8시10분(TV), 25일 오후 6시30분(메가박스 일산벨라시타 더부티크)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