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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고학계 ‘북한 발굴조사 갈망’ 보는 씁쓸한 눈

등록 2018-08-29 18:26수정 2020-12-27 17:54

[노형석의 시사문화재]

관심사로 떠오른 남북발굴사업
2007~2015년 진행됐던 북한 개성 만월대 고려궁터 남북공동조사 현장의 모습. 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2007~2015년 진행됐던 북한 개성 만월대 고려궁터 남북공동조사 현장의 모습. 국립문화재연구소 제공
역사유산을 지키려는 ‘충정’인가. ‘밥그릇 쌓기’인가.

요즘 국내 고고학계의 관심사로 떠오른 북한 개발 예상지역 발굴조사사업을 둘러싸고 학계 안팎에서 오가는 뒷말들이다. 북한 유적 발굴조사는 올해 남북관계가 급속히 호전되고 경제협력 구상이 현실화하면서 학계가 제기한 현안이라 할 수 있다. 문재인 정부가 한반도 남북을 종단해 에이치(H) 모양으로 개발하는 ‘신경제지도 구상’을 지난해 대선공약으로 강조한 것이 계기가 됐다. 올해도 문 대통령이 광복절 기념사에서 남북 철도와 도로의 연결을 통해 중국과 러시아를 포괄하는 ‘동아시아 철도공동체’를 제안하면서 북한 발굴 논의는 더욱 확산되는 중이다. 경협 활성화로 북한 각지에 도로, 철도 같은 사회간접자본(SOC) 공사가 본격화할 경우 개발 터에 묻혀있을 매장문화유산의 사전 조사·보존을 위해 미리 복안을 갖고 대비해야한다는 게 뼈대다. 하지만 북한의 광범위한 발굴시장을 노린 상업적 의도가 깔려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도 나온다.

지난 23일 한국고고학회 주최로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북한 문화유산공동조사 방안’ 학술회의는 이에 대한 학계의 현재 고민과 속내를 드러낸 자리였다. 회의에서는 개발사업에 앞서 유적 보존에 필요한 북한과의 공동조사 방안을 둘러싼 여러 의견들이 나왔다. 참석자들은 “정부가 북한 개발사업 때 현지 문화유산 사전 조사에 대해 별다른 준비가 없다. 구체적인 대책을 세워야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학회에서 통일고고학특위를 이끌어온 최종택 고려대 교수는 남북 전문가들로 구성된 ‘민족 문화유산 공동발굴조사단’(가칭)을 지난해 한국고고학회가 제안한 자문기구인 ‘남북고고학협회’(가칭)와 함께 꾸리자는 방안도 내놓았다. 그는 “북한 개발사업은 1990~2000년대 남한의 고속철, 4대강 사업 이상의 규모가 예상되는데, 이 과정에서 매장문화유산들이 훼손될 가능성이 크다. 학회 주도로 예산·인사권을 지닌 공단 형식의 조사기구를 만들고 발굴법인(발굴회사), 대학박물관 등을 투입하는 방식을 생각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북한 지역은 일제강점기와 50년대 한반도의 구석기, 청동기 시대를 입증한 선사 유물을 쏟아냈고, 상고사 한사군 논쟁의 온상이 된 매장문화유산의 보고다. 70년대 이래 경제난 등으로 북한 내 발굴사업이 미미했던 정황을 감안하면, 앞으로 대규모 유적들이 드러날 공산이 크다. 실제로, 국내 학계에서는 북한 개발 예상지역의 사전 구제발굴 등으로 반쪽에 그쳤던 기존 남한 고고학계의 연구 한계를 보완하고, 최근 발굴수요 격감으로 운영위기에 몰린 발굴법인(발굴회사)들에겐 새 활로가 될 것이란 기대감을 내비쳐왔다. 23일 회의에서 대학, 발굴법인이 참여하는 남북공동조사단, 남북고고학협회 등의 제안이 나온 배경이다.

하지만 고고학회의 이런 북한 발굴사업구상에 대해 다른 학계 사람들은 물론 고고학계 내부에서도 시선은 싸늘한 편이다. 지난 20년간 국토 개발 바람을 타고 발굴회사들이 난립해 조사비용 덤핑경쟁과 부실발굴, 운영비리 등으로 학문적 위상이 추락해왔고, 지금도 부작용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고고학회 회원인 한 교수는 “국내 발굴시장의 혼탁상과 적폐를 개선하지 않고 북한 발굴시장 개척의 환상부터 꿈꾸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적지않다”고 털어놓았다. 남북 경협의 주도권을 쥔 통일부, 경제부처, 대기업들이 개발터 매장유산 사전 조사에 대한 관심이 거의 없는데도, 학계의 문제의식을 전하고 설득할 창구가 없는 상황도 걸림돌이다. 사전 발굴조사 개념이 없고 조사방식, 제도 등이 다른 북한 학계와의 교감 쌓기도 어려운 과제로 지목된다. 이날 회의에서 토론 좌장으로 나온 최병현 숭실대 명예교수는 “문화유산 보존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정부 차원의 대응 조직을 꾸리고 학계 의견을 적극 수렴해 경협에 반영해야 한다. 학계 스스로 국내 조사현장의 난맥상을 정리하는 노력으로 명분과 발언력을 높이지 않으면 안된다”고 짚었다. 발굴법인과 대학 등의 이해관계가 얽히고설킨 고고학계에서 북한 발굴사업의 꿈을 이루기엔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노형석 기자 nug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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