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찬 목소리에 무대 매너로 보는 이들을 홀리는 가수 김연자가 ‘아모르 파티’로 제2의 전성기를 보내고 있다. 지난달 25일 서울 강남의 한 호텔에서 공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박종식 기자 anaki@hani.co.kr
우리 나이로 60살이다. 그런데 “선생님”이 아니라 “언니”라는 말이 먼저 나온다. “하하하. 저도 깜짝 놀라요. 초등학생들도 ‘아모르 누나’라며 달려와요. 얼마 전 서편제 소리 축제에 갔는데 애들이 많더라고요. 뭔 일인가 했더니 ‘아모르 누나’ 보러 왔다’고. (웃음) 기분 좋죠.” 요즘 젊은 세대에게 인기 만점 김연자를 만났다.
2013년에 만든 ‘아모르 파티’가 역주행하며 제2의 전성기가 시작된 건 1년도 더 됐다. 그런데 사그라들 줄 모른다. 최근에는 1974년 <전국가요 신인스타쇼>(티비시)에서 우승한 이후 데뷔 44년 만에 처음으로 대학 축제에도 섰다. 지난 5월 부산대 축제 영상은 유튜브에서 30만뷰를 넘어섰다. “대학 축제에 너무 가고 싶었는데, 막상 오르니 긴장되더라고요. 근데 노래도 같이 불러주고 함성도 질러주고, 이게 젊음의 패기인가 싶었어요.” 이후 대학 축제의 요정으로 떠오르며 섭외 요청이 쏟아지는데, “이미 잡혀 있는 일반 행사가 많아 못 하고 있다”며 아쉬워했다.
■ 아모르 언니, 누나 “매일 꿈같은 시간을 보냈다”는 그는 인기 이유로 “노래의 힘”이라며 작사·작곡가에게 공을 돌렸다. “이디엠(EDM)과 접목해 연령과 상관없이 와닿잖아요.” ‘아모르 파티’는 흥을 끌어올리는 포인트를 정확하게 포착했다. “인생은 지금이야”라며 그가 오른손에 든 마이크를 점점 내리는 동시에 왼쪽 손을 위로 올리는 순간 ‘내적 댄스’를 일발장전한다. 그리고 빵! “아모르 파티~ 다다다 다다다 다다다다다다~♬” 천천히 꼭대기까지 오른 뒤 쏜살같이 내려오는 롤러코스터처럼 한껏 추켜올려진 어깨가 정신 못 차리고 요동친다. 그의 인생 찬가라는데 “자신에게 실망하지마. 모든 걸 잘할 순 없어. 오늘보다 더 나은 내일이면 돼” 등 엔(N)포세대까지 위로하는 현실적인 가사도 공감을 샀다.
처음에는 그도 당황했다. “반주 음악에 피아노 연주만 있었는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멜로디이고 간주인지 모르겠는 거예요.(웃음) 가녹음을 해달래서 그때부터 연습했는데 엇박자가 많아서 너무 어려웠어요. 노래를 부를 때도 박자를 놓칠까봐 속으로 하나,둘,셋 하면서 불러요.” ‘에이 설마~’ 했더니 “지금도 노래하다가 옆에서 잡음 나면 금방 틀린다”며 웃었다.
‘어른’들이 따라부르기 숨도 차고 어려워서 노래가 발표됐을 땐 트로트계에서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반응도 없어서 얼른 접고 ‘밤열차’, ‘쟁이쟁이’를 밀었어요.” 익히 알려진 대로 지난해 <열린음악회>에서 엑소 무대를 기다리던 팬들이 이 노래를 듣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45초만 들어보라’고 올린 것이 역주행 계기가 됐다. 숨은 공로자는 또 있다. “<열린음악회> 피디가 자꾸 ‘아모르 파티’를 부르라더라고요. 노래도 어렵고, 다른 곡을 밀고 있어서 싫었는데, 어쩔 수 없이 불렀어요. 알고 보니 ‘왜 이 좋은 노래를 부르지 않을까’ 의아했다더라고요.”
■ 연자 스트레인지 아무리 좋은 노래도 단명하는 시대에, 2년 가까이 장수하는 데는 김연자 특유의 힘찬 목소리와 에너지도 비결이다. 그의 목소리는 천의 얼굴이다. ‘수은등’을 듣고 있으면 그 간드러짐에 온몸이 산낙지처럼 꼬이지만, ‘아모르 파티’를 부를 때는 그 박력에 홀린다. 정확한 발음도 한몫한다. 그는 “‘난 20대’ ‘난 젊다’라고 생각하면서 한곡 한곡 파워풀하게 열심히 부르려고 한다”고 말했다. 화제가 된 고음부분에서 마이크를 내리는 동작도 목청이 너무 커서 나온 습관이다. “‘아침의 나라에서’를 부를 때인가? 콘서트 할 때 귀를 막는 관객을 봤어요. ‘내 노래가 시끄럽구나’ 싶어서 마이크로 음향을 조절하게 됐어요. 목소리는 줄이고 싶지 않아서.(웃음)”
작은 몸집이지만 무대에 서면 거인이 된다. ‘아모르 파티’에서 코트 자락을 잡고 무대를 빙빙 도는 활기찬 안무에 누리꾼들은 마블의 히어로 닥터 스트레인지와 결합해 ‘연자 스트레인지’라는 별명까지 붙이며 열광한다. “보통 트로트는 그냥 서서 부르는데, 전 무대에서 움직이는 걸 좋아해요. ‘아모르 파티’ 간주가 길잖아요. 아마 심심해서 돈 것 같아요.(웃음).” ‘십분내로’를 부를 때도, ‘까투리 사냥’을 할 때도 그는 턴을 했다. “일부러 계획하고 돈 건 아닌데. 신나서 하다보니 돌게 되네요.(웃음)”
“노래는 해도해도 어렵다”며 끊임없이 도전하는 모습도 닥터 스트레인지처럼 멋지다. 씨름판에 울려퍼지던 ‘천하장사 만만세’, 88서울올림픽을 기념해 발표한 ‘아침의 나라에서’ 같은 노래를 비롯해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엔카부터, 샹송, 트로트, 칸초네까지 습득했다. ‘아모르 파티’는 이디엠과 접목했고, ‘내가 왔다’는 동요 ‘나의 살던 고향은’이 도입부에 흐르는 등 장르의 융합도 시도했다. “트로트 가수라고 트로트만 하고 싶지 않아요. 새로운 곡에 도전하는 걸 좋아해요. 다른 장르와 경계를 허물기 위해 음악 프로그램을 보면서 후배들 노래를 많이 들어요.” <쇼미더머니> 등을 즐겨본다.
1989년 일본 ‘홍백가합전’ 출연 당시의 모습. 방송 화면 갈무리
■ 원조 한류스타 ‘아모르 언니’ 이전에, 김연자는 한류의 원조다. 18살에 일본에 건너갔다가 3년 정도 뒤 한국에 왔고, ‘아침의 나라에서’를 계기로 다시 일본에 진출한 이듬해인 1989년 최고의 스타가 출연하는 <홍백가합전>에 나가 큰 인기를 얻었다. <홍백가합전>에만 89년, 94년 2001년 세번 나갔다. 지금 방탄소년단이 한국어로 전세계에서 노래하듯, 그는 <홍백가합전>에서 한복을 입고 출연해 우리말로 1절을 불렀다. 그는 “제가 잘못하면 ‘한국’이란 말이 꼭 들어가니 항상 공부했다”며 “방탄소년단이 영어도 아니고 우리 노랫말로 불러 사랑받았다는 게 정말 자랑스럽다”고 말했다. 남북 화해 무드와 함께 열린 예술교류의 시작 역시 김연자였다. 2001년 4월 남한 가수로는 처음으로 북한에서 단독 공연을 했다.
데뷔 44년. 그는 “순간순간 열심히 살았다”며 “가수 김연자로서 후회는 없다”고 했다. 초등학교도 들어가기 전 이발소를 하는 아버지가 손님 앞에서 툭하며 노래를 시켰는데 철이 들고 보니 자신이 노래하고 있었다고 한다. “쉬지 않고 노래만 해왔다”는데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10월 한달간 4일 쉬었고, 하루 3~4개씩 행사를 뛰어도 “노래 할 때가 너무 행복하다”고 웃었다. “<무한도전> 등 젊은 친구들이 즐겨 보는 프로그램에 나가는 등 ‘아모르 파티’의 힘으로 꿈을 다 이뤘어요. 제가 이렇게 환영받다니 기적 같은 일이에요. 사랑 받은 만큼 관객들에게 보답하고 싶어요.” ‘망토 언니’는 계속 달린다. 최근 일본 활동 30돌 기념 음반을 냈고, 12월29일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디너쇼를 연다.
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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