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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조르주 상드는 그림 속 어디에 있을까

등록 2018-11-24 10:01수정 2019-01-05 10:10

[토요판] 이유리의 그림 속 여성
① 단하우저 ‘피아노를 연주하는 리스트’
요제프 단하우저, <피아노를 연주하는 리스트>, 캔버스에 유채, 1840년, 베를린 구국립미술관
요제프 단하우저, <피아노를 연주하는 리스트>, 캔버스에 유채, 1840년, 베를린 구국립미술관
아이들이 어린이집 다니던 시절의 일이다. 어린이집에서 알림문자가 와서 읽어보니, 요즘 아이들이 학예회 준비 때문에 바쁘며, 참고로 ‘7세 형님’ 두 명이 학예회 사회를 본다고 적혀 있었다. 처음엔 내가 잘못 받은 게 아닌가 했다. 나는 딸 둘(당시 4살, 7살)의 엄마이기 때문이다. ‘4살짜리 우리 애에겐 오빠일 텐데. 형님이 뭐야. 남아 부모에게만 보내는 공지가 아닐 텐데’ 투덜거림이 절로 나왔다. 그러다 정신없이 바쁜 보육교사들의 사정이 떠올랐다. 다 챙기긴 힘들었을 테지. 예민하게 굴지 말자.

그리고 7살 딸이 하원했을 때 알림문자가 생각난 나는 지나가는 말로 물었다. “너희 반 남자애 두 명이 사회 본다며?” 그랬더니 아이의 대답이 반전이었다. “아니, 내가 사회자 맡았는데?” 알고 보니 성별 상관없이 상급반 아이는 무조건 형님이었던 것이다. 같은 의미로 한국의 모든 어린이집, 유치원이 상급반을 ‘형님반’으로 아예 보통명사처럼 쓰고 있다는 건 나중에 안 사실이다.

왜 항상 기본형, 디폴트는 남성일까. 이렇게 우리가 흔히 쓰는 말, 심지어 영유아가 쓰는 말에도 ‘남성 중심적’인 단어가 많다는 사실을 깨달을 때마다 잠깐씩 아득해지곤 한다. 이성애자 남성이 지어낸 말이 확실한 ‘죽부인’(竹夫人), 호칭하는 주체가 남성이라는 게 드러나는 ‘유관순 누나’ 등 예를 들자면 많다. 특히 ‘유관순 누나’라는 호칭에서는 여성의 성취를 깎아내리는 듯한 정서도 감지된다. 왜 ‘열사’가 아니고 ‘누나’일까. 반대로 ‘안중근 형’이라는 말은 얼마나 어색한가. 물리와 화학, 서로 다른 분야에서 노벨상을 두 번이나 받은 사람인 ‘마리 퀴리’를 굳이 ‘퀴리 부인’이라고 칭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때문에 오래전 재능이 넘치는 여성들이 구태여 ‘남성 행세’를 했다는 것도 이해 못할 바 아니다. 프랑스의 여성 작가 조르주 상드(George Sand, 1804~1876)만 해도 그렇다. 요제프 단하우저의 <피아노를 연주하는 리스트>라는 작품을 보면, 연주를 경청하는 상드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피아노에 비스듬히 머리를 기댄 채 앉아 있는 드레스 입은 여인이 상드라고 생각되는가? 아니다. 빨간 천이 덮인 의자에 바지를 입고 앉아 있는 ‘남자 같은 자’가 바로 상드다. 그림 속 그녀는 알렉상드르 뒤마, 빅토르 위고, 파가니니, 로시니 등 쟁쟁한 작가, 작곡가들과 함께 나란히 어울리는 모습이다. 상드의 사회적 성취만 보면 이런 장면이 별스러울 게 없다. 그녀는 평생 1000여편의 소설을 썼는데, 데뷔작 <앵디아나>부터 인기를 끌어서 다른 신인 작가보다 10배의 고료를 받을 정도로 프랑스 문단의 최고 스타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드가 처음부터 남성 필명 ‘조르주’가 아닌 ‘오로르 뒤팽’이라는 본명으로 데뷔했다면 어땠을까. 단하우저는 리스트의 음악에 귀를 기울이는 ‘지성’들의 모임에 상드의 모습을 그려 넣지 않았을 것이다.

얼마 전 미국 뉴욕주가 공문서에 쓰이는 단어를 대거 바꾼다는 뉴스를 보고 반가웠던 기억이 난다. 내용인즉슨 폴리스맨(Policeman, 경찰)을 폴리스 오피서(police officer)로, 파이어맨(fireman, 소방관)을 파이어 파이터(fire fighter)로 바꾼다는 것이다. 영어권에서도 남성을 의미하는 맨(man)이 ‘사람’을 뜻하기도 한다는 것에 저항해 성중립적인 단어로 대체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말과 글에 스며든 남성중심문화를 점차 뿌리 뽑다 보면, 우리 사회의 ‘조르주’들은 자신의 원래 이름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겐 더 많은 ‘오로르 뒤팽’ 경찰관과 ‘오로르 뒤팽’ 소방관이 필요하니까. 작가 sempre80@naver.com

이유리 예술 분야 전문 작가. <화가의 마지막 그림> <세상을 바꾼 예술작품들> <검은 미술관> 등의 책을 썼다. 앞으로 ‘이유리의 그림 속 여성’ 코너에서 ‘여자사람’으로서 세상과 부딪치며 깨달았던 것들, 두 딸을 키우는 엄마로 살면서 느꼈던 감정과 소회를 그림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풀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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