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부터 전라도 사람들의 삶과 문화, 자연을 담은 토종잡지 <전라도닷컴> 을 발간해 온 황풍년 편집장.
“대인시장 선술집 난로 위에 큼지막한 주전자를 올려놓고 뜨뜻하게 뎁힌 막걸리 한 사발을 그 모든 분들에게 따라드리고 싶다.”
광주에서 발행되는 ‘토종잡지’ <전라도닷컴> 황풍년(54) 편집장 겸 발행인은 199호 독자 머릿글을 통해 “가을 끝자락이 뭉텅 잘려나간 듯 스산한 날, 막걸리 이야기를 담은 11월 잡지를 펴내는 데 자꾸 가슴이 두근거린다”고 적었다. 2000년 웹진으로 출발한 <전라도닷컴>은 2002년 3월 종이 잡지로 첫선을 보인 뒤 다음달로 통권 200호 발간을 앞두고 있다. <전라도닷컴>은 이제 어느덧 “전라도의 사람, 자연, 그리고 구성진 전라도의 문화를 오롯이 담아내는, 묵은지 같은 잡지”가 됐다.
<전라도닷컴>은 항꾼에(함께) 만든 잡지다. 2007년 11월 경영난으로 한때 폐간 위기에 몰리기도 했지만, “이백번째 걸음을 내디딜” 용기를 준 것은 독자들이다. “가뭄에 단비 같은 광고를 주셨던 분들, 느닷없는 후원금을 보내신 분들, 사무실 임대료를 내주신 독자, 사방팔방으로 잡지를 선물해주시는 분, 귀한 글들을 아낌없이 주셨던 필자님들, 그리고 치열하게 가난하게 부대껴온 동료들…” 황 편집장은 “토종잡지를 애면글면 지켜 온 눈 밝고 맘 따순 독자님들과 후원자, 필자들을 모시는 자리를 마련한다”고 했다.
2000년 웹진으로 출발한 <전라도닷컴>은 2002년 3월 종이 잡지로 첫선을 보인 뒤 다음달 통권 200호를 발간을 앞두고 있다.
200호 발간을 축하하는 잔치마당은 다음달 1일 오후 3~6시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 극장3에서 열린다. 이번 행사는 놀이패 신명이 공선옥 작가의 소설 <꽃 같은 시절>을 마당극으로 판을 연다. 황 편집장은 “귄있고 개미진 전라도 말이 가을 국화처럼 흐드러지고 전라도 어르신들의 꿋꿋한 삶이 빛나는 작품”이라고 소개한다. 배우 지정남과 소리꾼 백금렬씨 진행으로, 축하공연이 이어진다. <전라도닷컴> 애독자인 박원순 서울시장은 독자의 자격으로 ‘전라도 천년! 문화강국의 꿈을 꾸다’에 대해 이야기한다.
“개보아 암시랑토 안해 이런 것이 무거우믄 이 시상을 어치게 산당가.” <전라도닷컴>이 200호 발간 기념 머그컵에 어르신들이 들려주신 ‘말씀’을 새겼다.
<전라도닷컴>은 전라도 입말을 ‘암시랑토’(아무렇지도) 않게 그대로 살린 첫 매체로 꼽힌다. 창간 때부터 입말을 표준어로 바꾸지 않고 그대로 옮겼다. 전 <전남일보> 기자 동료 사이였던 황 편집장과 남인희·신희 자매 기자는 창간 이후 전라도 마을과 들녘, 갯벌을 찾아가 만난 어르신들의 말씀을 받아 적었다. “어르신들의 말 속에 삶이 그대로 담겨 있어요. 모든 것을 측은지심으로 짠하게 보는 그 마음을 표준어로는 도저히 살려낼 수 없었어요. 특히 이 시대에 급격히 사라지고 있는 말도 문화유산이어서 기록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남신희(53) 기자의 회고다.
황 편집장은 “지역말은 지역 사람들의 문화를 가장 정확하게 담아내온 그릇이자 문화 그 자체”라고 말했다. <전라도닷컴>이 2011년부터 ‘아름다운 전라도 말 자랑대회’를 시작해 해마다 이어가고 있는 것도 이러한 미학적 관점 때문이었다.
<전라도닷컴>은 지역 문화콘텐츠를 살리는 길을 ‘싸목싸목’(천천히) 걸어왔다. 그는 2013년 수원 <골목잡지 사이다>, 대전 <월간 토마토>, 인천 <월간 옐로우>, 부산 <함께 가는 예술인> 등 풀뿌리 출판·잡지에 ‘사발통문’을 보냈다. 황 편집장이 뿌린 작은 씨앗은 2016년 지역 출판사 50여 곳이 참여하는 ‘한국지역출판문화잡지연대’라는 작은 나무로 성장했다. 황 편집장은 초대 회장을 맡은 뒤 지난해 제주에서 처음 시작한 ‘한국 지역 도서전’은 올해도 경기 수원에서 성황리에 열렸다. 황 편집장은 “지역의 책들이 살아 있어야 당대의 기록을 완성할 수 있고, 한국 문화의 다양성도 지킬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난 2016년 <전라도닷컴>이 주최한 ‘제6회 아름다운 전라도 말 자랑대회’ 때 찍은 편집진 기념사진. 왼쪽부터 남인희·신희 자매 기자, 황풍년 편집장 등이다.
이제 300회 발간을 향해 길을 떠나는 <전라도닷컴>의 소망은 담박하다. 황 편집장은 “지역에서 문화를 담고 더욱이 이름없는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잡지를 만든다는 것이 돈되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했다. 독자들이 점차 줄고 있지만, “이름없는 할머니들의 이름을 단 한번이라도 불러드리고 그 말씀을 기록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던 첫 마음”을 지키는 것이 그들의 바람이다. 남 기자는 “많은 사람들이 큰 것을 꿈꾸며 살지만 ‘포도시’ (잡지를) 이어가는 것을 희망으로 삼고 있다”고 했다. “어르신들을 만나 ‘어떻게 살아오셨어요?’라고 여쭐 때마다 가장 자주 듣는 말이 ‘포도시 버텼제’라는 표현이었어요. 포도시라는 말은 ‘간신히’나 ‘초라하게’를 뜻하는, 짠하고 눈물겨운 말이 아니라 질긴 생명력을 가진 장한 말이라는 것을 배웠어요.”
정대하 기자 daeha@hani.co.kr, 사진 <전라도닷컴>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