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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송재정 “‘알함브라’ 출발점은 포켓몬고…호기심이 날 이끌었다”

등록 2019-01-15 20:14수정 2019-01-15 21:08

시트콤에 스릴러, 비극 접목해보고
타임슬립 뛰어넘어 증강현실까지
자신만의 세계관으로 독창성 더하며
‘대체불가’ 작가 인증

“한회 한회 영화 쓴다는 기분으로…
내 작품 메시지는 ‘영웅’ 되는 과정”
송재정 작가. 티브이엔 제공
송재정 작가. 티브이엔 제공
이 모든 것의 시작은 ‘포켓몬고(GO)’ 게임이었다.

“2016년 <더블유>가 끝나고 <인현왕후의 남자> <나인: 아홉번의 시간여행>에 이은 마지막 타임슬립 드라마를 준비했어요. 주인공 유진우가 미래에서 현대로 오는 설정. 그런데 타임슬립을 두번이나 해서인지 욕구가 안 생기더라고요. 좀더 새로운 소재가 없을까 방황하던 차에 포켓몬고 게임 열풍이 일어 여의도 광장에서 해봤죠. <아바타>처럼 엄청난 자본력이 아니더라도, 아이템만 시지(컴퓨터그래픽)로 처리할 수 있다면 드라마로 만들 수 있겠다는 가능성을 봤어요. 타입슬립은 버리고 유진우라는 인물은 그대로 둔 채 증강현실로 넘어왔죠.”

드라마에서 처음 증강현실(AR)을 접목해 한국 드라마를 레벨업했다고 평가받는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티브이엔)을 쓴 송재정 작가는 지난 15일 간담회 내내 차분하게 말했다. 어떻게 이런 시도를 했을까, 많은 사람들이 놀라워하는데, 그는 “원래 게임을 좋아한다. 늘 내가 재미있어 하는 것들을 소재로 삼는다”며 그저 웃었다. 그러나 선례가 없는 획기적인 시도가 통할지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법. 새로운 시도를 “게임을 잘 모르는 이들도 충분히 따라올 수 있게, 이번에는 쉽게 설명하는 데 특히 신경 쓴” 덕분에, 10대 자녀와 부모가 함께 보는 드라마를 완성했다. 14부까지 방영한 현재 시청률은 10%까지 올랐다.

한국 드라마에서 처음으로 증강현실을 접목한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프로그램 갈무리
한국 드라마에서 처음으로 증강현실을 접목한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프로그램 갈무리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으로 송재정 작가는 ‘대체불가 작가’ 도장을 쾅! 찍었다. 작가마다 잘하는 장르가 있지만, 그는 작품마다 시공간을 초월하는 이야기로 새로운 대본을 써왔다. 첫 드라마인 로맨틱 코미디 <커피하우스>(2000년) 이후 쓴 6편 중 4편이 모두 시공간의 경계를 허문다. 작품이 나올 때마다 새로운 시도를 확장해가며 스스로도 레벨업했다. <인현왕후의 남자>(2012)와 <나인>(2013)은 서로 다른 타임슬립물이었고, <더블유>(2016)에서는 웹툰과 현실을 오갔고, 급기야 증강현실까지 왔다. “새로운 것을 찾다보니 시공간의 경계를 허무는 것에 관심이 많다”는 그는 차기작도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에서 자신감을 얻어 게임을 좀더 복잡하게 파고드는 이야기를 해볼까 생각중”이라고 말했다.

판타지를 시도하는 작가는 많지만, ‘송재정표 판타지’는 가상의 세계가 현실에 영향을 미치며 자신만의 세계관을 형성한다는 점이 남다르다. <더블유>에서 창조주와 피조물이 ‘자유의지’를 둘러싸고 투쟁했고,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에서 가상의 현실이 현실의 딜레마를 증강시켜 더 큰 위기로 몰아간다. 그와 함께 작업한 한 드라마 피디는 “판타지를 차용하지만 본질적인 문제를 피해 가지 않으며 어떤 리얼리즘 드라마보다 더 리얼하게 그린다”고 평했다.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역시 증강현실 속 버그가 현실을 압도하는 설정은 최근 케이티(KT) 아현지사 화재로 인터넷이 마비되자 혼란이 일어난 현실 사회와 다르지 않다. “포켓몬고를 하면서 고차원적인 시지를 보게 되면 어떻게 될까, 무섭기도 했어요. 완벽한 엔피시(유저에게 퀘스트 등을 제공하는 게임속 캐릭터)가 나오면 애인도 친구도 필요 없을 것 같은 위압감을 느껴 증강현실을 선택한 이유도 있어요. 아바타를 내세우지 않고 유저인 내가 직접 게임을 하다가 평소 싫어하는 이를 상대로 분노와 살의가 표출됐을 때 무시무시한 일이 일어날 것 같은 두려움을 담았어요.” 판타지를 쓰면서 놓치지 않는 건 “인간의 감정변화를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것”이고 말했다.

창조주와 피조물이 ‘자유의지’를 둘러싸고 투쟁했던 <더블유>. 문화방송 제공
창조주와 피조물이 ‘자유의지’를 둘러싸고 투쟁했던 <더블유>. 문화방송 제공
송재정 작가의 작품은 다음 내용을 예측할 수 없다. 소재의 영향이 있지만, 기존 드라마 작법을 따르기보다 새로운 맥락으로 풀어가기 때문이다. 예능과 시트콤의 오랜 경험이 영향을 줬다. “처음 드라마를 쓸때 엔딩을 16개로 정해놓고 한회 한회 한시간짜리 영화를 쓴다는 기분으로 그 엔딩이 가장 정점에 찍도록 이어나가며 작품을 써요. 예능과 시트콤으로 시작해서 드라마 작법을 정식으로 공부한 적이 없다보니 이상하고 낯선 혼종의 드라마를 쓰는 것 같아요.(웃음)” 많은 작가들이 소설을 즐겨읽는 것과 달리 그는 오히려 “스토리텔링이 있는 소설보다는 인문 서적이나 잡지, 평전, 포털 뉴스 등 잡다한 이야기를 본다”고 말했다. “유진우 캐릭터도 (테슬라모터스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 자서전을 읽다가 출발했다”고 한다.

방송 아카데미를 다니다가 1996년 <폭소하이스쿨>(에스비에스)에서 예능 작가로 데뷔한 이후 <순풍산부인과>(1998)를 시작으로 10년 가까이 시트콤을 할 때 이미 그의 재능이 싹텄다. 시트콤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2000)에서 엄마 캐릭터가 암으로 사망했고, <거침없이 하이킥 시즌1>(2006)에선 거실 바닥에 주검을 숨겨 두는 등 스릴러를 접목했다. <크크섬의 비밀>(2008)에서는 섬에 갇힌 사람들 사이 벌어지는 미스터리를 시도했다. 모두 시트콤에서는 이례적인 시도였다. 그와 작업했던 한 시트콤 관계자는 “시트콤은 여러 작가가 아이디어 회의를 하는데, 늘 한발 앞선 아이디어를 내놨다”고 회상했다. 송재정 작가는 “학창시절부터 만화책과 추리소설을 좋아하고, 게임하고 공상하는 걸 즐겼다”며 “(처음부터 이런 소재를 쓰는 작가가 되려고 했던 게 아니라) 다채로운 호기심을 좇다 보니 여기까지 온 것 같다”고 말했다.

송재정 작가는 <인현왕후의 남자>부터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까지 자신의 작품을 관통하는 메시지는 “영웅”이라고 말했다. “평범한 사람이 말도 안 돼 보이는 여러 과정의 마법과 현실의 공격을 겪으며 사랑을 찾아가면서 진짜 영웅이 되는 과정.” 22년간 다양한 장르간 시행착오를 거치며, 그도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에서 독보적인 인물이 됐다.

남지은 기자 myviollet@hani.co.kr

※그래픽을 누르시면 크게 볼수 있습니다.
※그래픽을 누르시면 크게 볼수 있습니다.

송재정 작가의 범상치 않았던 필모그래피

<예능, 시트콤>

1996년 SBS 예능작가 데뷔

1998년 <순풍산부인과>

2000년 <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시트콤에 ‘비극’ 설정

2002년 <똑바로 살아라>

2005년 <귀엽거나 미치거나>

2006년 <거침없이 하이킥1> 시트콤 스릴러 접목

2008년 <크크섬의 비밀> 미스터리 시트콤

<드라마>

2010년 <커피하우스>

2012년 <인현왕후의 남자> 타임슬립

2013년 <나인> 타임슬립

2014년 <삼총사>

2016년 <더블유> 웹툰

2019년 <알함브라 궁전의 추억> 증강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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