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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이 ‘박복한 취향’ 도 구제해 주시길

등록 2005-12-28 17:22수정 2005-12-29 15:25

정이현 소설가
정이현 소설가
저공비행/정이현
‘극장전’ ‘별순검’ 에 가슴 떨려하는…

2005년이 저물어간다. 올해의 끄트머리에 서서 한 해를 돌아보다가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나에게서 뜨거운 사랑과 열광적 지지를 받았던 작품들은, 극소수의 예외를 제외하고는, 거의 대부분 흥행이나 시청률 면에서 바닥을 쳤다. 그 중에서도 홍상수 감독의 <극장전>에 대해 말하려니 눈물이 앞을 가린다.

시사회에서 이 영화를 본 뒤 판타스틱하고 유쾌하며 세상에서 제일 슬프고 또 너무나도 냉혹한 영화라는 감상을 주변에다 떠들고 다녔다. 거기 넘어간 친구를 데리고 한 번 더 보러가기로 했다. 그러나 시설 좋은 멀티플렉스들을 여러 개 가지고 있는 신도시에서 <극장전>을 상영하는 극장을 찾기란 몹시도 어려웠다. 어렵사리 한 군데를 찾아 전화해보았더니 어제 내렸단다. 상영을 시작한 지 채 며칠 되지도 않은 시점이다. 천신만고 끝에 하루에 세 번만 상영하고 나머지 시간엔 다른 영화를 튼다는 한 극장을 찾아냈다. 넓디넓은 극장 안에 관객은 딱 우리 둘.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 둘뿐이었다. 일 없는 개미새끼 한 마리 얼씬거리지 않았다.

그래, 흥행이야 뭐 그렇다 치자. 하지만 연말에 또 한번 상처를 받게 될 줄은 진정 난 몰랐다. 최근 경쟁적으로 개최된 여러 영화제에서 <극장전>이 그야말로 완벽하게 무시당한 것이다. 800만이니 500만이니 하는 어마어마한 관객숫자를 자랑하는 영화들이 작품상과 감독상 등등을 휩쓸어 가며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때, <극장전>이라는 이름은 실수로라도 언급조차 되지 않았다. 감독상이나 작품상까지는 (치사해서) 바라지도 않는다. 하지만 남우주연상은 아깝다. <너는 내 운명>의 황정민이나 <달콤한 인생>의 이병헌이 물론 굉장히 좋은 연기를 보여주었지만 (그리고 내가 이 두 남자배우의 오랜 팬이기는 하지만) 귀엽고 뻔뻔하며 소심하고 추레한 동수라는 인물 그 자체가 되어버린 김상경 역시 ‘공식적인 박수’를 받아야 마땅했다고 이 연사 소리 높여 외치고 싶다.

2005년 나를 행복하게 그리고 동시에 안타깝게 만들었던 작품은 또 있다. 산들바람처럼 살랑살랑 다가와 가슴을 온통 흔들어놓았던 드라마 <떨리는 가슴>. 문화방송의 땜빵용 주말드라마였던 이 근사한 작품 덕분에 봄날이 참 아름다웠다. 아직도 이 도시 어딘가에서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채로 살고 있을 것만 같은 보미네 식구들, 그들의 일상사를 지켜보며 많이 웃고 많이 아팠다. 월요일 아침이면 인터넷에 들어가 생전 처음으로 시청률 조사표 같은 것을 찾아보기도 했다. 7%를 넘지 못하는 시청률을 보고 혼자서 괜히 전전긍긍했다.

모처럼 토요일을 기다리게 했던 <별순검>과, 언젠가 이 지면에다 한풀이를 한 적도 있던 <귀엽거나 미치거나>의 조기종영에까지 이르면 말문이 턱 막히고 뜨거운 것이 복받쳐 오른다. 아, 이 무슨 박복한 취향이란 말인가. 가능하면 많은 사람들과 내가 좋아하는 작품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싶고, 내가 좋아하는 작품이 합당한 대우를 받는 모습을 보고 싶을 뿐인데 이게 정말 과한 욕심이란 말인가.

문화도 산업이다. 물론 지당하신 말씀이다. 그러나 시장추수주의에 지나치게 경도되어 ‘시장’만을 단 하나의 척도로 내세운다면, 문화의 내용은 점점 더 획일화되어 갈 것이다. 그래, 솔직하게 말하자. 문화의 다양성 따위 염려하기 전에 이 나라에서 더 이상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보지 못하게 될까봐, <별순검>같은 새로운 시도의 프로그램을 영영 접할 수 없게 될까봐 진심으로 겁이 난다. <킹콩>과 <태풍>의 틈바구니에서 조용히 개봉하여 단 두 곳의 작은 영화관에서 상영되고 있다는 <브로큰 플라워>같은 영화를, 새해에는 우리 동네 극장에서도 좀 볼 수 있는 방법 어디 없을까?

정이현/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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