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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문화일반

오정희 산문집 ‘내 마음의 무늬’

등록 2006-01-03 17:40수정 2006-01-03 17:40

예순에도 지워지지 않는 ‘유년의 뜰’
해가 바뀌어 세는 나이로 예순이 된 소설가 오정희씨가 산문집 <내 마음의 무늬>(황금부엉이)를 묶어 냈다.

소설가에게 산문이란 일종의 우수리 혹은 낙곡과도 같은 것이어서 웬만한 작가들은 소설집에 맞먹는 분량의 산문집을 보유하고 있게 마련이다. 그러나 과작의 작가 오정희씨에게는 산문 역시 소설 못지않게 버겁고 외경스러운 것인 모양, 이번 책이 그이에게는 겨우 두 번째 산문집이다.

“언젠가부터 글 쓰기 힘들어졌다”

1968년 등단 이후 네 권의 소설집과 짧은 장편 하나, 동화 한 권을 내놓았을 뿐인 작가 오씨는 1998년 단편 하나를 발표한 뒤 2004년에 본격적인 첫 장편을 연재하기 시작했으나 이내 중단했다. 작가는 산문집 서문에서 “어쩌면 나는 단지 ‘좋은 문장가’가 되고 싶은 것인지도 모른다”고 말하는데, 오랫동안 그의 새 소설을 만나지 못한 독자들에게는 이 산문집이 그에 대한 일종의 대체물이 될 수도 있겠다.

이번 산문집에는 ‘소설을 쓰지 못하는 소설가’의 불안과 고통을 토로한 대목들이 많다. “언제부터인가 다른 사람들을 향해 글을 쓰고 말하는 일들이 점점 힘들어지기 시작했다”(62쪽), “삶이 힘들고 섣부르게 말하기에는 너무 복잡 미묘하다는 깨달음 때문이기도 할 것”(63쪽)이라는 고백이 있는가 하면, 그와 반대로 “어느 시인의 표현대로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한’ 인생의 얘기들을 어떤 방식으로 풀어가야 할지 난감하고 한편으로는 부질없다는 생각”(104쪽)을 표출하기도 한다.

유치원에 다니던 무렵 “엄마, 바람은 어디로 가지? 바람은 집이 없나 봐. 나는 바람이 무서워”라고 말해 작가 어머니로 하여금 <바람의 넋>이라는 작품을 쓰게 했던 아들은 이미 장성해서 독립해 나갔고, 남편과 함께 그 빈 자리를 보며 작가는 “빈 둥지의 쓸쓸함과 나이 들어가는 일의 스산함”(12쪽)에 몸을 떤다. 소설가 전상국, 한수산, 이외수, 최수철, 권도옥 등의 고향인 춘천에서 30년 가까이 살면서 겪고 느끼는 일상과 예술 사이의 함수관계, 대학 시절 스승 김동리와 이문구·김병익 등 선배 문인들의 문학과 인품에 대한 흠모, 열 살 무렵 처음으로 자신의 글재주를 칭찬해서 결국 작가의 길로 이끈 선생님의 부음을 뒤늦게 듣고서 떠올린 아득한 자책감 등도 책에서 만날 수 있다. 다음은 오정희 소설의 기원을 설명하는 듯한 산문집의 한 대목이다.

나이들어감의 스산함 녹아

“내 안에는 영원히 자라지 않는 한 어린 계집아이의 모습이 있다. 한없이 이어지는 공원 층계에서 턱을 괴고 쪼그리고 앉아 저물녘의 쓸쓸하고 초라한 거리 풍경을 내려다보며 세상은 이런 것이려니, 모호한 슬픔과 혼돈으로 가득 찬 이곳과 다를 바 없으려니 하는 감상에 빠지거나 어디론가 달아날 궁리로 선창가를 배회하며 외로움과 불안 속에서 생에 눈떠가는 작은 아이.”(34쪽)


최재봉 문학전문기자 b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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