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베트남의 역량 있는 감독을 발굴하는 ‘제2회 한베 청년 꿈키움 단편영화 수상작 교류 상영회’가 지난 14일 베트남 호찌민에서 열렸다. 아래 사진은 이날 상영한 한국 작품들. 왼쪽부터 <우리가 꽃들이라면>(김율희), <굿 마더>(이유진), <토마토의 정원>(박형남), <아 유 데어>(정은욱). 베트남CGV·CJ문화재단 제공
지난 14일 베트남 호찌민에 한국과 베트남의 영화감독 유망주들이 모였다. 한국 씨제이(CJ)문화재단과 베트남씨지브이(CGV)가 진행한 ‘제2회 한베 청년 꿈키움 단편영화 수상작 교류 상영회’에서다. 앞서 두 단체는 한국과 베트남 감독 지망생을 대상으로 단편 제작지원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시나리오만 보고 나라별 4편씩 선정해 영화로 완성되기까지 전 과정을 지원했고, 이날 총 8편의 공식 상영회와 함께 시상식을 개최한 것이다.
이날 행사는 한국 영화의 새로운 100년을 이끌 세대를 곱씹어보게 했다는 점에서 각별하다.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이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고 아카데미상 후보에 오른 것은 한국 영화의 경사인 동시에, 특정인의 개인 역량에 기대지 않고 제2, 제3의 봉준호가 나올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는 고민도 안겼다. 한베 청년 꿈키움 단편영화 지원 프로젝트 같은 신인 발굴 시스템이 중요한 이유다.
안성기 씨제이문화재단 이사이자 아시아나단편영화제 집행위원장은 “단편은 독립된 장르로도 가치가 있지만 장편영화의 기반이 된다는 점에서 의미 있다. 단편영화 지원은 우리 영화의 미래를 밝게 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다. 지난해 개봉한 한국 영화는 총 697편으로 역대 최대인 9700억원의 매출을 기록했지만 독립예술영화 시장은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2018년 기준으로 개봉 편수는 113편, 관객수는 110만명 수준이다.
지원 부족이 큰 원인으로 꼽힌다. 이번에 선정된 감독 지망생들도 단편영화를 만드는 데 가장 큰 어려움으로 “제작비”를 꼽았다. <토마토의 정원>으로 선정된 박형남 감독은 “단편영화는 제작비 대부분을 감독 개인이 부담해야 해서 쉽게 만들기 힘든 구조다. 제작 지원 프로그램에 응모했다가 떨어져서 영화 제작을 미루는 동료들도 많다”고 말했다. <아 유 데어>로 선정된 정은욱 감독도 “집이 잘사는 경우가 아니라면 대부분 휴학하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제작비를 충당한다. 그래도 부족하다”고 말했다. 제작 지원 프로그램이 중요하지만 활발하게 이뤄지는 곳은 씨제이문화재단과 영화진흥위원회 등 몇곳 정도다.
한국 영화 새로운 100년 앞두고 역량 있는 신인을 발굴하는 시스템에 투자해야 한다는 고민도 나온다. 사진은 지난 14일 호찌민의 영화관에서 열린 시상식과 상영회 장면. 베트남CGV·CJ문화재단 제공
그동안 감독 지망생들은 상업영화 현장에서 수년간 발품을 팔아 배우며 감을 익히고 네트워크를 형성해왔다. 학교 내 동료들끼리의 품앗이 수준에서 벗어나 다양한 현장 경험이 절실하다고 이들은 입을 모은다. 이들은 이번 프로젝트에 선정된 뒤 “시나리오부터 해외 출품까지 지속적인 네트워크로 지원을 받는 느낌이 가장 좋았다”고 말했다. <굿 마더>를 연출한 이유진 감독은 “시나리오가 선정된 뒤 멘토링 과정을 통해 캐스팅, 예산, 후반 믹싱 작업 등 영화 연출 전반에 대해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됐다”고 말했다.
내부 시사를 통해 좀 더 다양한 사람들에게 영화를 선보이는 것도 좋은 기회다. 그동안 단편영화 배급사들은 주로 대학 졸업작품 상영회에 가거나 파일로 작품을 받아 될성부른 나무를 찾아냈다. <우리가 꽃들이라면>으로 선정된 김율희 감독은 “내부 시사를 통해 더 많은 이들에게 영화를 보여주고 더 많은 배급사와 연결될 수 있도록 기회를 열어주는 게 좋았다”고 말했다. 이들의 작품은 한국과 베트남의 유명 감독과 영화인들이 자리한 호찌민의 극장에서 상영되기도 했다.
이런 지원은 작품의 질을 높인다. 이유진 감독은 “배우에게 합리적인 출연료를 지급할 수 있어서 캐스팅에 집중할 수 있었다. 또 전문적인 동시녹음 기사, 후반 사운드팀과 함께 작업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박형남 감독도 “장비 대여료 지급 등의 이유로 시간에 쫓겨 하루에 몰아서 촬영하지 않아도 돼 적정한 체력과 집중력을 유지하며 찍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넷플릭스 등 새로운 플랫폼과도 경쟁해야 하는 시대, 한국 영화 또 다른 100년을 이끌어야 하는 신인 감독들의 고민은 더 깊다. 왼쪽 두번째부터 이번 프로젝트에서 선정된 이유진·김율희·박형남·정은욱 감독. 시상에 참여한 안성기(왼쪽)·정원영(오른쪽) CJ문화재단 이사
이런 작업 환경은 역량 있는 감독들의 실력을 일취월장하게 만든다. 이 대회 첫 회에 선정된 베트남 4편, 한국 5편은 모두 국내외 유명 영화제에서 좋은 성과를 거뒀다. 김덕근 감독의 <나의 새라씨>는 지난해 미쟝센 단편영화제 심사위원특별상을 받았고, 베트남 팜티엔언 감독의 <스테이 어웨이크, 비 레디>는 지난해 칸 영화제 일리쇼트필름 어워즈에서 수상했다. 이번에 선정된 작품도 4월 전주국제영화제를 시작으로 국내외 영화제에 차례로 출품될 예정이다. 박형남 감독은 “국내외 영화제 출품 시 별도의 지원비를 제공하는 것도 힘이 된다”고 했다.
제작 지원을 하는 곳이 많지 않아 경쟁이 치열하다 보니 지원자들이 자신만의 개성을 살리기보다는 누구나 좋아할 만한 이야기에 초점을 맞추는 현실은 풀어야 할 숙제다. 실제로 베트남에서 공개된 한국 작품 4편은 모두 리얼리즘에 기반을 둔 잔잔한 드라마였다. <굿 마더>는 커밍아웃을 한 딸을 둔 엄마의 현실적인 고민을 담아냈고, <우리가 꽃들이라면>은 요즘 화두인 배리어프리를 활용해 영화 마지막 관객이 귀로 듣는 듯한 효과를 준 시도가 돋보였다. <아 유 데어>는 모성을 우주와 이질감 없이 엮었고, <토마토의 정원>은 고등학생들의 풋풋한 고민을 잘 담아냈다. 평범한 메시지를 한발 나아간 시각으로 담담히 풀어낸 점이 돋보이지만 형식의 파괴에서는 아쉬움이 남는다. 오히려 베트남 감독들의 작품이 오히려 형식의 틀을 깨고 기발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상준 씨제이문화재단 사무국장은 “한국 단편이 장르물 보다는 드라마의 양도 많고, 선호하는 분위기인 것 같다”며 “다양성을 위해 장르물과 드라마를 나누어 선정하는 방식 등을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수많은 베트남 관객이 몰려 한국 영화에 대한 뜨거운 관심을 보였다. 이제는 넷플릭스 등 새로운 플랫폼과도 경쟁해야 하는 시대에 한국 영화의 다음 100년을 이끌어갈 신인 감독들의 고민은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호찌민/남지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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